잡글

우리나라의 벼 재배

진국 2017. 9. 14. 10:14

                 김진국

현재 세계에서 재배되고 있는 벼의 대부분은 Oryza sativa 종이고 아프리카의 극히 일부 지역에서만 Oryza glaberrima 종이 재배되고 있다.
 Oryza sativa의 기원은 동남아시아에 남아있는 Oryza balunga라고 추정되며 서부 아프리카에서 재배하는 Oryza glaberrima는 그 기원이 다르다.
약 8,000년 전에 재배가 시작된 Oryza sativa의 발상지는 동남아시아의 기온이 높고 다습한 지역인 것으로 생각되나 인도라고도 하고 양자강 유역이라고도 하였다.
야생종이 세계의 넓은 지역에 분포하고 있으므로 어디에서 경작종으로 개발되었는지 알기 어렵다.
열대지방에서 재배종으로 개발된 종은 열대 지방으로, 온대지방에서 개발된 종은 온대지방으로 전파되었을 것이다.
그러던 중 1993년 중국의 후난 성에서 11,000 ~ 13,000년 전의 볍씨가 발견되어 중국 기원설이 굳어져 갔으나 2003년 우리나라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 소로리에서 구석기시대인 13,000 ~ 15,000년 전의 볍씨 127알(유사 벼, 기원종-자포니카종과 인디카종)과 수확 농기구인 홈날연모(notched tool)가 같이 발견되었다.
소로리에서 발견된 볍씨는 야생벼와 재배 벼 사이의 것으로 사람의 손에 의해 선택적으로 채집됐으나 직접 재배되지는 않은 순화 벼(domesticated rice, 재배 벼)라는 것이다.
소로리에서 발견된 볍씨와 수확 농기구로 보아 우리나라의 쌀농사 기원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곳 중의 하나라는 것을 주장하게 된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벼(인도어 브리히, 중국 남부 네이 니 넵 누안), 나락(낱알, 인도어 니바라, 신라 봉록 라록), 쌀(씨알, 인도어 사리,  퉁구스어 시라), 이팝(니밥) 등의 말 어원이 인도, 중국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수 있다.
물에 쌀을 넣어 끓여 만든 밥은 훈민정음해례본에 飯(반)을 밥으로 쓴다고 되어 있으며 뫼, 메(제사상의 밥), 수라(몽고어 湯 탕), 진지라고 쓰기도 하였다.
 현재 세계에서 재배되는 대부분의 벼는 Oryza sativa 종의 아종인 자포니카(Oryza sativa L. subsp. japonica K.), 자바니카(Oryza sativa L. subsp. javanica M.) 인디카(Oryza sativa L. subsp. indica K.)의 변종이거나 품종이다.
 우리나라의 벼 경작은 우리나라 역사와 같이할 정도로 오래되었다.
우리 민족은 쌀을 많이 생산하기 위해 몇 천년을 노력해 왔다.
벼는 기온이 높고 물이 풍부하며 평탄한 지역에서 재배된다.
산지가 많고 평지가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벼농사를 짓기 위해 들판은 물론이고 하천에는 뚝을 쌓아 하천부지를 개간하고 산지를 깎아 다락 논을 만들었다.
벼는 상당히 더운 곳이나 추운 곳에서도 자라고 물이 부족한 곳에서도 자라기는 한다. 그러나 단위 생산량을 높이기 위해서는 물이 풍부하고 기온이 높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벼를 재배하기 위해 필요한 기온이 높은 기간이 길지 않은 지역과 어떤 해(년)는 기온이 낮아 피해를 입히기도 한다.
그래서 기온이 낮은 곳에서는 못자리(苗板, 묘판, seed bed)를 조금 일찍 만들어 활대를 꼬자 세우고 비닐을 쉬워서 냉해를 방지하는 보온 못자리를 설치하기도 한다.
이렇게 적기에 맞추어 벼를 심어야 생장 기간이 길어져 충분히 자라고 춥기 전에 수확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벼를 너무 일찍이 심으면 추워서 죽을 것이고 너무 늦게 심으면 생장 기간이 부족하여 열매가 충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옛 날에는 모내기(이양기) 철에 비가 오지 않아 늦게 모내기를 하면 생장 기간을 맞출 수 없어 할 수 없이 논에 벼 대신에 메밀 등 대체 작물을 심었다.
그리고 벼가 꽃이 피는 기간에 비가 길게 오면 수분이 잘되지 않아 벼 이삭에 알갱이가 생기지 않고 한 여름에 기온이 상당 기간 낮으면 벼가 냉해를 입게 되며 가을에 햇빛이 쪼이는 날 수가 부족하면 벼알이 영글지 않아 쭉정이가 된다.
 우리나라는 비가 벼 농사철인 여름에 집중해서 내리므로 벼 재배가 그런대로 가능하다. 그런데 비라는 것은 오는 날짜도 내리는 양도 정해진 것이 아니다. 강수량이 적어 논에 물이 부족하면 물을 끌어들이거나 퍼 올려야 한다. 특히 두레박(용두레, 파래)으로 물을 퍼서 마른 논에 대는 것은 고역이다. 그것도 끌어올 물이 근처에 있을 때 가능한 것이었다. 그래서 벼농사는 하늘이 도와야 한다.  
벼가 자라는데 물이 많이 필요하지만 그보다 보온을 위해 물이 많아야 한다. 벼는 밤에도 온도가 내려가면 생장이 느리므로 논에 물을 충분히 가두어 밤에 온도가 내려가는 것을 막는 것이다. 논에서 물이 나가는 곳을 물꼬라 하는데 논의 물의 양을 알맞게 조절하기 위해서 논두렁을 보수하고 물꼬를 자주 보고 관리해야 하는 것이다. 논에 물을 끌어 오기 위해서 내에 보를 막거나 못을 조성해야 하고 또 이들을 잘 관리해야 한다.
이와 같이 벼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물과의 전쟁이었던 것이다.
벼를 재배하기 위해서는 이른 봄에 물공급이 원활하고 바람이 세지 않아 따듯한 논을 골라 못자리(苗板, 묘판)를 설치하여 벼 모종을 기른다.
모내기를 할 논을 쟁기로 갈고 물을 대어 써레로 평평하게 고른 다음 못줄을 대고 모내기(移秧, 이앙)를 한다.
벼논에 비료를 주고 김매기를 하며 물꼬를 잘 돌봐야 하며 벼 이삭이 팰(出穗, 출수) 때쯤이면 피(barnyard millet, 벼과, 구황작물)를 뽑고 익으면 베서 묶어 볏단으로 만든다.
소 등에 질매(갈마)와 걸 채(옹구)를 얹은 다음 그 속에 볏단을 가득 싣고는 집으로 옮겨 탈곡을 하고 풍구(風具, winnowing machine , 사람이 돌리는 큰 선풍기)로 부쳐 알곡만 골라 덕석에 널어 말린 다음 나락뒤주에 저장하는 것이다.
이렇게 벼농사를 짓는 데는 힘든 일이 많지만 이들은 사람의 힘으로 가능한 일이라 노력하면 되지만 강수량과 기온 및 일조량은 사람의 힘으로는 조절이 불가능한 것이었다.
이렇게 힘들고 불확실한 벼농사를 왜 우리 조상은 고집스럽게 지어왔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주식으로 할 수 있는 곡식 중에서 맛이 가장 좋고 건강에도 가장 좋았으며 이에 따라 쌀값이 가장 높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자연환경이 벼농사를 짓기에 좋지는 않지만 가능했기 때문이다. 옛날에 병자에게 미음을 끓여 먹였다. 그러나 밀가루 죽을 끓여 먹였다는 이야기는 들어 보지 못했다. 병자에게 먹이는 음식은 먹기 좋고 소화가 잘 되며 건강에 좋아야 한다. 몇 천 년 동안 경험적으로 쌀이 건강에 가장 좋고 계속 먹어도 질리지 않고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쌀(현미)의 주성분은 녹말(전분)과 섬유소(셀룰로오스)이다. 그리고 지방과 단백질, 무기염류(미네랄) 등이 소량 들어 있다.
씨눈(배아)과 쌀겨(속겨, 겨층, 米糠, rice bran, 왕겨가 아님)에는 비타민 B1, B2, B6, 엽산이 많이 들어있고 비타민E, 토코트리에놀, 옥타코사놀, 불포화 지방산 등이 소량 함유되어 있다.
세계적으로 현재 재배되고 있는 벼의 종은 대부분이 오리자 사티바 종(Oryza sativa.L. )이고 그중에서 인디카 아종(O. sativa L. subsp. indica K.)이 전 세계 쌀 생산량의 90%이다. 안남미로 불리는 인디카는 쌀알이 길쭉하고, 끈기가 없다. 우리가 먹는 오므라이스, 카레라이스 등에도 이용된다.
한국인과 일본인이 주로 먹는 자포니카 아종(O. sativa L. subsp. japonica K.)은 낟알이 짧고, 기름지고 찰기가 많다. 중국 동북 3성, 유럽, 동남아 대륙, 윈난 성 등에서도 일부 재배된다.

* 논 200평에서의 벼 생산량(부피와 무게)

현재는 일반적으로 논 200평에서 벼로는 약 480kg 정도 수확하며 이것을 쌀로 도정하면 약 320kg(20말, 4 가마니, 360L)이 된다.
1 섬이란 단위는 지금과 옛날이 다르다. 지금은 10말이 한 섬이고 옛날에는 15말(平石)과 20말(全石)이 한 섬이었다. 가마니는 알제 때 들어왔으므로 조선시대에는 사용되지 않았다.
현재는 벼 1말(18L, 대두)은 12kg,  쌀 1말(18L)은 16kg이다.
벼 1 가마니(5말, 90L)는 60kg, 쌀 1 가마니(5말, 90L)는 80kg이며 벼 1 섬(10말, 180L)은 120kg, 쌀 1 섬(10말, 180L)은 160kg이다
벼나 쌀을 물에 넣으면 가라앉는데 벼 18L가 12kg인 것은 벼 알이 말속에 쌓일 때 공간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는 1마지기(150평) 당 벼 한 섬(15말, 270리터)이 생산되었고 해방 후에는 두 섬(20말, 360리터) 정도 생산되었다. 1950~60년대에 쌀이 모자라 식량 부족으로 문제가 많았으며 수입을 한 적도 있었다.
 미국이 가난한 국가의 공산화를 막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가난한 국가의 식량 증산을 위해 재정적, 기술적 지원을 했다. 이에 한국도 육종학자(허문회 교수)를 필리핀에 파견하여 통일형 벼를 육종했다. 우리나라 기후에 맞는 다수확 품종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였다. 필리핀에서 먼저 생산량이 많은 다수확 품종으로 육종된 인디카(다수확 품종)와 우리나라의 자포니카(우리나라 환경)를 교배하여 단위 생산량은 많으면서 우리나라 환경에 알맞은 품종을 육종하고 자 하였으나 이들 아종 간의 간격이 커서 교배가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먼저 대만의 인디카와 일본 자포니카를 교배하여 인디카와의 간격을 좁힌 품종을 만들어 다시 다수확 인디카(IR8)와 교배시켜 육종한 것이 통일형 벼(IR667)이다.
통일형 벼는 한국 기후에 알맞고 생산량이 많은 다수확 품종이다.
1마지기(200평) 당 벼 여섯 섬(60말, 1,080리터)까지 생산되었다고 한다. 지역에 따라 환경에 맞지 않아 실패하기도 하고 이삭이 쉽게 부러져 수확이 제대로 되지 않아 정부로부터 보상을 받는 등 문제도 있었다.
통일형 벼 쌀의 맛과 특성은 인디카와 같았으므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었다. 그래서 부자들은 재래종의 일반미를 비싸게 사서 먹고 가난한 사람은 통일형 쌀을 사서 먹는 이상한 현상이 되었다.
이에 통일형 벼 육종으로 기술을 습득한 우리나라 연구진들은 계속 육종을 이어 나가 맛도 있고 생산량도 많은 품종을 개발하였다.
그동안 댐을 만들고 보와 관개수로를 정비하여 안정적으로 물을 공급하게 되었으며 비에만 의존하던 천수답(봉천)은 밭 등으로 전환하여 벼농사 대신에 특용작물로 대체하였다. 근래에는 풍작이 계속되고 식생활의 개선으로 쌀 소비가 줄어들어 쌀이 남아돌게 되었다. 그래서 넘쳐나는 쌀을 저장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금의 우리나라 농촌은 여러 문제를 가지고 있지만 많은 문제 중 가장 큰 문제는 자작 농가가 소유한 논이 10마지기(2,000평)를 넘지 않는 소규모이다. 이렇게 된 것도 해방 후 농지개혁으로 자작 농가가 농지를 소유하게 한 결과이다. 그 이전에는 대부분이 소작농이었거나 자작농이 있어도 소유한 농지가 많지 않았던 것이다. 이렇게 농가가 소규모이기 때문에 쌀값이 낮아지면 농촌 가계의 경제가 무너지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쌀값을 높게 유지하려는 정책을 쓴다. 그 결과 발생되는 문제는 우리나라 쌀값이 국제 쌀값보다 너무 높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농가는 소유한 농토가 적다. 그래서 단위 면적 당 생산량을 높이기 위해 집약형 농업을 하므로 생산비가 많이 들어간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인건비가 비싸고 일 년에 한 번만 생산하는 일기작이다. 이에 비해 쌀 생산국인 동남아, 중국, 미국 등은 인건비도 싸고 3기 작도 가능한 동남아, 인건비가 싼 중국과  대단위 농장을 운영하는 미국의 쌀값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국제 쌀값에 비해 우리나라 쌀값은 다섯 배 이상이나 높다. 중국과 미국 등에서는 우리 쌀과 같은 자포니카 종을 일부 재배하고 있다. 그래서 수입을 개방하면 막을 방법이 없다. 식량 주권 문제가 걸려있어 단순한 경제 원리로 해결할 수도 없다.

나라에서는 농촌을 살리기 위해 농업의 기계화, 농가의 농지 확대, 대체작물을 권장하는 등의 예산을 지원을 한다. 그러나  농지가 적고 노령화된 농가에서는 기계를 일부 농사에 사용할 뿐이고 적은 농지를 계속 소유하고 있으므로 기계로 농사를 전담할 수 있는 대농이 탄생할 수 없다. 그 결과 젊은 사람이 없는 일부 지역에서는 지역의 유력인사가 자제 명의로 정부의 예산 지원을 받는 농업 사업을 시작하고는 사업이 여의치 않자 사업을 단보로 돈을 빌려 도시의 부동산이나 주식에 투자하여 돈을 날려버리거나 횡령하니 정부의 지원을 헛되게 하고 농촌에 빚만 늘려 놓는 지역이 비일 비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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