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DT와 환경운동
(DDT의 인류 구제, DDT의 생물농축 및 피해,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Silent Spring)' , 환경운동, DDT 사용 규제 논란)
김진국
1. 전염병의 창궐
옛날에는 전염병(傳染病, communicable diseases)으로 많은 사람이 죽었다. 그중에 모기(mosquito)가 옮기는 말라리아(malaria, 학질, 말라리아 원충), 황열병(黃熱病, yellow fever, 아르보바이러스), 뎅기열(dengue fever, 뎅기 바이러스), 파리가 옮기는 이질(dysentery, 아메바성 이질, 세균성 이질), 장티푸스(typhoid, 살모넬라 티푸스균-세균), 이(lice)가 옮기는 발진티푸스(typhus fever, 균 Rickettsia prowazekii) 등 절지동물(節肢動物, Arthropoda, 곤충류, 다지류, 갑각류, 거미류)이 매개(媒介) 하는 병에 의해서도 많은 사람이 죽었다. 이들 전염병들은 곤충 등이 욺기므로 곤충 등이 움직일 수 있는 거리 내에서 생활하는 집단에서 대규모로 발생하였다.
이(lice)가 옮기는 발진티푸스(typhus fever, 티푸스 typhus, 균 Rickettsia prowazekii)와 파리, 바퀴벌레 등이 옮기는 수인성 감염(水因性感染, water borne infection)인 이질(dysentery, 아메바성 이질 Amebiasis과 세균성 이질 shigellosis)이 크게 성행하여 전쟁에 크게 패한 것은 1812년 나폴레옹 1세(Napoléon I)의 러시아 침공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전쟁에 60만 명이 참가한 프랑스군은 9만 명만이 살아서 돌아왔다. 그런데 프랑스군 60만 명 중에서 30만 명 이상이 이(lice)가 옮기는 발진티푸스와 불결한 식수 등에 의해 감염되는 이질(dysentery)에 걸려 죽었으며 전투에서 죽은 프랑스군은 10만 명이 조금 넘었다고 한다.
1898년에 일어난 미국-스페인 전쟁(Spanish-American War, 스페인의 식민지인 쿠바의 이해관계로 일어남, 파리조약으로 쿠바는 독립하고, 푸에르토리코, 괌, 필리핀은 미국 영토가 됨)에서 8개월 동안 미군 5642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그중 전사자는 379명이었으며 나머지 대부분의 장병은 ‘황열병(黃熱病, yellow fever, 아르보바이러스 Arbovirus, 모기 매개)’으로 죽었다고 한다.
세계 제1차 대전 중에도 발진티푸스로 많은 사람이 죽었다. 러시아에서 3백여만 명이 발진티푸스로 죽었으며, 폴란드와 루마니아에서도 수백만 명의 사람이 발진티푸스로 사망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도 말라리아(모기), 유행성 발진티푸스(이), 장티푸스(typhoid, 장티푸스균 Salmonella Typhi, 수인성 감염 水因性感染), 이질(파리) 등의 전염병이 창궐하여 많은 병사들이 죽었다.
특히 태평양 주둔 연합군에게 말라리아는 엄청난 손실을 입혔다. 말라리아를 예방하기 위해 기존의 독성이 강한 수은, 불소, 비소 등 무기물을 이용한 살충제 등 여러 종류의 살충제를 사용하였지만 독성이 강하여 많은 부작용을 초래하였다. 그중에서 안전한 모기 살충제로 선택한 것이 인도네시아 산 접촉 살충제인 제충국(除蟲菊, pyrethrum)이었는데 일본이 인도네시아를 점령하여 제충국(除蟲菊, pyrethrum)의 수출을 중단함에 따라 말라리아를 구제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사용할 살충제의 독성을 규제하는 규정을 정하고 그 규정에 맞는 안전한 전염병 예방 약품을 찾던 미국은 스위스 가이기(Geigy) 사(社)로부터 DDT 샘플과 기술을 전수받아 DDT를 생산하였으며 1943년 DDT(dichloro-diphenyl-trichloroethane)가 미군에 공급됨에 따라 말라리아에 의한 피해는 크게 줄어들었다.
전 세계 연합군에게 말라리아(모기), 유행성 발진티푸스(이), 장티푸스와 이질(파리) 등의 퇴치를 위해 DDT를 투입하여 피해를 크게 줄였다.
2. DDT(dichloro-diphenyl-trichloroethane)의 살충력 발견
1939년 스위스 염료제조회사인 가이기(Geigy) 사(社)의 연구원 뮐러(Paul Hermann Muller, 1899 ~ 1965, 스위스, 화학자)가 옷을 좀먹는 해충을 방지하기 위해 물질을 합성하던 중 DDT(dichloro-diphenyl-trichloroethane)의 살충력을 발견하였다.
DDT(dichloro-diphenyl-trichloroethane)는 1874년 독일의 스트라스부르(Strasbourg) 대학에서 박사학위 과정 중이던 자이들러(Othmar Zeidler, 1850 ~ 1911, 오스트리아, 화학자)가 베이어(Adolf von Baeyer, 1835 ~ 1917, 독일, 화학자, 1905년 노벨화학 상 수상) 교수 지도 아래 여러 화학물질을 합성하던 중에 처음으로 합성하였으나 단지 합성이 목적이었으므로 용도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뮐러(Paul Hermann Muller, 1899 ~ 1965, 스위스)는 DDT의 살충효과를 알아보기 위해 콜로라도 감자 잎 벌레(Colorado potato beetle, 학명 Leptinotarsa decemlineata Say)에 적용했다. 그때 스위스에서는 감자를 주식으로 하고 있었는데 콜로라도 감자 잎 벌레가 만연하여 식량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여기에 DDT를 시험적으로 사용한 결과 콜로라도 감자 잎 벌레(Colorado potato beetle)를 효과적으로 퇴치할 수 있었다.
여러 상황에서 DDT의 살충 능력을 시험한 결과 살충력이 매우 뛰어나고 여러 종류의 해충들을 죽이며 또 안정성이 있어 약효가 오랫동안 지속될 뿐만 아니라 사람을 포함한 포유동물에게 해가 없고 특히 생산 비용이 저렴했다. 1940년 뮐러는 DDT의 스위스 특허를 취득하였으며 1942년경 DDT를 상품화하였다.
뮐러는 DDT의 살충 효과를 발견한 공로로 1948년에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였다.
3. DDT(dichloro-diphenyl-trichloroethane)의 합성과 분해 및 작용
DDT는 유기 염소 계열의 물질로 화학식은 (ClC6H4)2CH(CCl3)이다. 강력한 살충효과와 제초효과를 가지고 있다. 상온에서 무색의 고체 결정이며 극성이 없어서 물에 녹지 않는다. DDT는 클로로벤젠(chlorobenzene, C6H5Cl)과 트라이클로로에타날(trichloroethanal, trichloroacetaldehyde, Chloral, 클로랄, Cl3CCHO)을 반응시켜 합성한다.
곤충의 신경세포(뉴런)에 작용하여 나트륨의 세포막 통과를 차단함으로써 살충효과를 나타낸다.
DDT의 반감기(半減期, half-life, half(-life) period)는 2~15년이다.
반감기(半減期, half-life, half(-life) period)가 2년이면 4년이 지나면 모두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2년이 지나면 1/2이 남아있고 4년이 지나면 1/4, 6년이 지나면 1/8이 남아 있는 것을 의미한다.
자연에서 DDT가 분해되는 경로는 휘발, 광분해 그리고 생물 분해 등이 있다. 호수 물에서 DDT의 반감기는 56일이며, 강물에서는 28일이다.
인위적 분해 방법에는 열분해, 소각, 생물학적(미생물 이용) 분해, 화학적(화학물질 투여) 분해 등이 있다.
사람이 DDT에 노출되면 소화기나 폐를 통해 천천히 흡수되며 흡수된 DDT는 부신, 고환, 갑상선 등 지방이 풍부한 신체 장기에 축적된다
사람의 체내에서 DDT(dichloro diphenyl trichloroethane, p, p'-DDT, 1,1,1-trichloro-2,2-bis(p-chlorophenyl) ethane)는 탈염화수소화작용(脫鹽化水素化作用, dehydrochlorination)에 의해 DDE(dichlorodiphenyldichloro-ethylene, 디클로로디페닐디클로로에틸렌, p, p'-DDE, 1-chloro-4- [2,2-dichloro-1-(4-chlorophenyl) ethenyl] benzene)와 DDD(Dichlorodiphenyldichloroethane, 디클로로디페닐디클로로에탄, p, p'-DDD, 1-chloro-4- [2,2-dichloro-1-(4-chlorophenyl) ethyl] benzene)로 변화되며 DDE는 체내에 축적되고, DDD는 DDA(Dichlorodiphenylacetate, 디클로로디페닐디클로로아세테이트, Dichlorodiphenylacetic acid, 디클로로디페닐디클로로아세틱 엑시드, p, p'-DDA, Bis(4-chlorophenyl) acetic acid)로 분해된다. DDA는 비교적 물에 잘 녹아서 일차적으로 소변으로 배출된다.
그래서 DDT는 하루에 1% 정도 소변으로 배출된다.
생물체에는 분해되고 배출되는 양보다 흡수되는 양이 많으면 농도가 증가하는 것이다.
인체에 축적된 DDE는 2중 세포막 사이의 간격을 부풀게 하고 시상하부의 성숙을 촉진하여 중추성 성조숙증을 유발하는 등 호르몬 체계의 이상을 초래하기도 한다.
4. DDT의 인류 구제
DDT는 생산 비용이 낮고 잔류성이 높아 약효가 오래 지속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절지동물을 죽일 수 있으므로 넓은 지역에 대량으로 살포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살충제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유럽은 전쟁 후유증으로 경제가 어렵고 수백만의 난민들이 발생하여 거주 집단이 많이 생겼으며 집단촌에는 환경이 불결하여 큰 전염병이 발생할 수 있었지만 환경위생을 위해 DDT를 살포할 수 있었기 때문에 대규모의 전염병을 막을 수 있었다.
DDT는 환경위생을 위하여 집, 동네, 수풀에 대량 살포했으며, 그리고 식량 증산을 위하여 농장, 축사 등에 비행기 및 트럭으로 광범위하게 대량으로 살포되었다. 그 결과 많은 나라에서는 여러 종류의 해충이 박멸되어 전염병에서 해방되었으며 획기적인 농산물의 증가를 가져왔다.
DDT가 수입되기 전에 우리나라에서는 몸이나 머리의 이(lice)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가정에서는 촘촘한 참빗으로 머리를 빗거나 집안 식구의 모든 옷을 펄펄 끓는 솥에 넣어 이를 죽여야 했다.
DDT가 수입됨에 따라 옷이나 머리에 뿌려 이를 구제하였으며 집이나 채소밭 등에 살포하여 해충을 구제하였다. 우리나라의 해충의 위험은 심각하여 1959년에도 일본뇌염으로 451명이 죽었다. 1979년까지 이(lice), 벼룩(flea), 빈대(bedbug), 모기(mosquito), 파리(fly)들이 들끓어서 거리나 동네에 자동차로 DDT를 살포하곤 하였다.
DDT는 세계의 여러 지역에서 환경위생을 위해 대량으로 살포되어 전염병으로부터 수십억 명의 생명을 구했을 뿐 아니라 농장에 대량 살포하여 작물의 해충을 퇴치함으로써 식량이 증산되어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굶주림으로부터 탈출하게 하였다.
5. DDT의 생물농축(生物濃縮, biomagnification)과 부작용
미국에서는 DDT를 10여 년 동안 광범위한 지역에 대량 살포함에 따라 1957년부터 DDT의 폐해가 점차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DDT는 안정한 물질이므로 독성이 자연에서 분해되는데 걸리는 반감기가 2년에서 15년으로 매우 길어 자연이나 생물에 유입되면 오랫동안 잔류(殘留, residue) 된다.
먼저 자연에 살포되었을 때 분해되어 없어지는 양보다 살포되는 양이 많아지면 축적되어 농도가 높아지며 오랫동안 잔류(殘留, residue) 된다.
더욱이 DDT는 생물에 섭취되면 잘 분해되지 않고 체내의 지질과 잘 결합하므로 체외로 배출도 잘되지 않아 체내에 더욱 축적된다. 그러므로 생태계에 DDT가 유입되면 플랑크톤이나 식물은 물이나 토양으로부터 DDT를 많이 흡수하지만 몸속에서 분해나 밖으로의 배출은 적게 일어남에 따라 이들 생물체에는 물이나 토양에 있는 DDT 농도의 10배 이상의 농도로 축적된다. DDT가 10배 이상 농축된 생산자를 섭취한 1차 소비자도 DDT가 축적된 생산자를 섭취하고는 잘 배출하지 못하므로 생산자 DDT 농도의 10배로 축적된다. 그래서 DDT가 토양이나 수중에 유입되면 이를 흡수한 생산자는 토양이나 수중 농도의 약 10배 이상으로 축적되고 축적된 생산자를 1차 소비자가 먹으면 1차 소비자는 다시 생산자 농도의 약 10배로 축적되며 이렇게 축적된 1차 소비자를 2차 소비자가 잡아먹으면 2차 소비자 몸에는 1차 소비자 농도의 약 10배의 농도가 축적되어 토양이나 수중에 처음 유입된 DDT 농도의 1000배가 넘게 된다. 이와 같이 생태계(生態系, ecosystem) 먹이사슬(food chain, 먹이연쇄)의 상위 단계로 올라갈수록 생물체 내에 DDT 농도의 축적 비율이 증가하여 최종 소비자의 체내 축적량은 토양이나 수중에 처음 유입된 DDT 농도의 수천 내지 수십만 배가 될 정도로 DDT 농도의 농축 비율(濃縮比率)이 높아지는 생물농축(生物濃縮, biomagnification) 현상이 일어난다.
한 예로 미시간 호수에 잔류성 유기 오염물질(Persistent Organic Pollutant: POPs, DDT, PCB, Aldrin, Chlordane, Endrin 등)의 하나인 DDT가 유입되어 뻘의 DDT 농도가 0.014 ppm(백만분의 일)으로 오염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뻘에 살고 있는 갑각류는 뻘에서 DDT를 흡수하여 체내에 0.41 ppm의 DDT를 축적하고 있었고 먹이사슬의 다음 단계인 갑각류를 잡아먹는 물고기는 몸속에 3~6 ppm을, 물고기를 잡아먹은 재갈매기(herring gull) 몸의 DDT 농도는 99 ppm 이었다. 그리고 재갈매기의 알에는 227 ppm의 DDT가 들어있었다.
대표적인 DDT의 피해는 1950년대부터 미국의 국조(國鳥)인 흰머리 수리(American bald eagle) 개체 수가 감소한 것이다.
새의 알껍데기는 DDT에 의해 칼슘 부족 현상이 일어나고 이에 얇아진 알껍데기는 쉽게 깨짐에 따라 새의 알이 부화되지 않았다는 것이 1967년에 밝혀졌다.
1949년 캘리포니아 클리어 호수에 서식하는 해충 각다귀(Crane fly, 파리 목 각다귀과, 모기 모양임)를 없애기 위해 실시된 DDT 방제로 논병아리(grebe, 조류)의 떼죽음으로 이어졌다. 1957년 롱아일랜드에서는 매미나방(gypsy moth)이 뉴욕으로 전파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대대적인 공중 살포를 하였다.
DDT는 분해되어 안드로젠과 같은 유사 호르몬(환경호르몬, 내분비 교란 물질), 출산 장애, 암 발생 등 다양한 독성 증상을 일으킨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많은 양의 DDT를 뿌린 결과 모기가 거의 사라지고 말라리아가 줄었다. 그런데 살포된 DDT를 흡수한 바퀴벌레(cockroach)는 죽지 않았다. 몸에 DDT가 축적된 바퀴벌레를 잡아먹은 도마뱀은 행동이 둔해졌다. DDT가 축적되어 둔해진 도마뱀을 고양이가 잡아먹고 죽어 버렸다. 고양이가 없어지자 쥐가 늘어나 흑사병(黑死病, Plague, pest)의 위협에 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 둔해진 도마뱀이 나방을 잡아먹지 못하자 나방의 유충이 창궐하여 집 서까래를 갉아먹어 지붕이 내려앉기도 하였다. 이뿐만 아니라 어류와 양서류에서도 부작용이 나타났다. 이와 같이 DDT 사용으로 여러 지역의 생태계가 파괴되었다.
2014년 캘리포니아 데이비스 대학의 연구에서 DDT를 임신한 쥐에 노출했을 때, 암컷 새끼는 대사 증후군(metabolic syndrome, 비만, 당뇨병, 고 콜레스테롤)의 위험이 더 증가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DDT가 발암 물질이라는 직접적인 증거는 아직까지 찾지 못했다. 그렇지만 DDT는 쇠고기, 돼지고기의 붉은 고기 등이 속하는 2군 발암 물질(발암 추정물질, probable carcinogen)로 지정되어 있다. DDT와 같이 지용성인 물질은 세포막을 잘 통과하므로 DNA에 접근하여 DNA의 이상 복제를 일으켜 돌연변이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소시지, 햄은 1군 발암 물질로 지정되어 있다.
6.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Silent Spring)'
미국의 작가이며 해양생물학자인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 1907~1964)은 소녀 시절부터 유능한 작가였다. 펜실베이니아 여대에서 문학을 공부하다 전공을 생물학으로 바꿨다. 존스홉킨스대에선 해양생물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래서 레이첼 카슨은 과학적 소양을 갖춘 유능한 작가였다. 1936년부터 연방 공무원으로 15년간 과학자이자 편집자로서 근무했으며, 미국 어류 야생동물 국에서 발간하는 출판물의 편집 책임자가 되기도 했다.
레이첼 카슨은 베스트셀러가 된 '우리 주위의 바다 (The Sea Around Us)'를 비롯해 바다의 신비를 다룬 세 권의 책을 집필했다. '우리 주위의 바다(The Sea Around Us)'는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86주 동안 머무는 등 1952년 논픽션으로 내셔널 북 어워드(National Book Award), 존 버러우즈 메달(The John Burroughs Medal)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레이첼 카슨은 집안이 가난하여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공무원 직업을 가졌던 것이다. 잡지, 신문사 등에 많이 투고도 하였고 집필한 '해풍 아래서(Under the Sea Wind)'가 다큐멘터리 영화화되는 등으로 경제적 여유가 생기자 1952년부터 공무원을 퇴직하고 집필을 전업으로 하였다.
1958년 매사추세츠에 살고 있는 자연 애호가이면서 전 보스턴지 기자인 허킨스(Olga Van Slyke Owens Huckins, 1900 ~ 1968)는 Boston Herald에 "Evidence of Havoc by DDT(DDT 피해의 증거)"라는 제목으로 기고하였다. 그리고 허킨스(Olga Owens Huckins)는 편지로 레이첼 카슨에게 매사추세츠 주립 모기 퇴치 프로그램에 의해 그 지역 공중에서 DDT를 대량 살포함에 따라 집에서 길렀던 새가 모두 죽었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레이첼 카슨은 DDT를 포함한 잔류성 유기 오염물질(Persistent Organic Pollutant, POPs)이 환경에 미치는 위험성을 조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캘리포니아 클리어 호수 등 POPs 오염지역 현장을 직접 답사하고 과학자들의 수많은 연구논문을 조사하여 <뉴요커, The New Yorker, 1925년 창간>지에 3회에 걸쳐 연재하였다. 1962년에 <뉴요커>지의 연재 내용을 한데 모아 '침묵의 봄(Silent Spring)' 이란 책을 출판하였다. 레이첼 카슨은 '침묵의 봄(Silent Spring)'이라는 책에서 DDT를 포함한 POPs의 무분별한 대량 사용으로 생태계나 사람의 건강에 끼치는 영향을 논리적으로 설명하였다. 레이첼 카슨은 POPs의 사용을 전면적으로 금지할 것을 주장한 것이 아니고 무분별하게 대량으로 살포하는 것을 경고한 것이다.
이 책에서 POPs의 위험성을 설명하고 환경과 농업에 쓰이는 POPs가 생물 농축되어 여러 조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으므로 봄이 와도 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는 '침묵의 봄'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1장의 우화로 시작했다.
인간도 생태계의 일원이므로 생태계가 파괴되면 인간도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이 책에는 발암 사례도 있다. 거미를 싫어하는 여인이 집안의 거미를 죽이기 위해 DDT와 석유로 된 에어로졸 살충제를 사용한 후 한 달 동안 구토와 신경불안증을 겪었다. 회복된 후 거듭 사용한 결과 발열, 관절 통증 및 정맥염이 나타났으며 그 뒤에 백혈병으로 죽었다.
이 책은 유려한 문장과 감성적이고 논리적인 설명으로 환경보전에 대한 일반 대중의 열렬한 호응을 얻어 대대적인 환경 운동을 일으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더욱이 이때에 기형아를 출산하게 하는 원인으로 알려진 수면제인 탈리도마이드(thalidomide, 1957, 독일, 수면제, 진정제)를 시판하려고 제약사들이 시도했으므로 사람들의 화학물질에 대한 공포가 극에 달한 시점이라 침묵의 봄은 출판되기 전에 이미 화제가 되어 4만 부가 선 계약되었다.
농약 제조업체들은 카슨을 노처녀 히스테리, 낭만적인 소설가, 살충제보다 더 독한 여자라고 비난하면서 카슨의 글이나 내용을 소개하는 신문, 방송사에는 광고를 끊겠다고 협박했다. 그러나 레이첼 카슨은 이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침묵의 봄'을 출간하였다.
DDT 사용을 옹호하는 학자들과 DDT 생산자들의 레이첼 카슨에 대한 압박이 강하면 강할수록 국민들의 환경운동에 대한 호응은 더욱 커져 100만 부가 출판되었다.
1963년에는 CBS 텔레비전에서 침묵의 봄(Silent Spring)이 제기한 POPs 오염에 대한 문제점 등에 대한 방송 토론이 열렸다. 토론자로 나온 로버트 화이트 스티븐스(Robert White Stevens) 박사는 살충제 사용을 줄이거나 혹은 포기하면 곤충과 질병이 지구를 덮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 이 세상이 암흑시대로 돌아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카슨은 DDT 사용으로 파괴된 생태계를 침착하게 낱낱이 설명했다. 그리고 인간과 자연, 둘 중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정복하거나 지배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말하며 인류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은 바로 스스로를 통제하는 능력의 부재라고 했다.
결국 텔레비전 토론 방송은 카슨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다. 시청자들은 DDT 발명 후 20여 년 동안 사용으로 전염병은 거의 발생하지 않아 전염병의 위험성은 피부로 느껴지지 않지만 현재 나타난 DDT 사용의 부작용은 생생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DDT의 토사구팽인 것이다.
여기에 CBS 텔레비전에서 토론 방송이 방영되던 시간이 고든 쿠퍼(Leroy Gordon "Gordo" Cooper Jr., 1927 ~ 2004)가 우주선 페이스 7호(Faith 7, Mercury-Atlas 9, 수성 20호, 1963.5.)를 타고 지구 궤도에 오르는 모습을 방영하는 시간과 겹쳤다. 텔레비전 방송 토론 중에 우주선 소식이 속보로 전달됨에 따라 우주여행 장면을 보려고 텔레비전을 켰던 사람들까지 토론 프로그램을 보게 되어 1, 000만 명 이상이 카슨의 토론 방송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영향력은 어마어마하게 크게 되었던 것이다.
미국에서 환경문제가 크게 확대됨에 따라 존 F. 케네디(John Fitzgerald Kennedy, 1917~1963) 대통령은 1963년에 환경문제 자문위원회를 설립했다.
1967년 환경운동 단체인 환경 보호 기금 (EDF)은 DDT 퇴출을 반대하는 환경 보호국(EPA)에 소송을 했으며 청문회를 거쳐 승소하였다. 이어서 1969년에 미국 의회가 국가 환경정책 법안을 결의하여 1972년부터 미국에서 DDT, BHC 등 9종류의 농약 사용을 전면 금지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DDT가 퇴출되면 살충제를 사용하지 않을 것처럼 DDT의 대안도 없이 낙인이 찍힌 DDT를 사용 금지시킨 것이었다. 그래서 분해 속도는 빠르지만 DDT보다 독성이 10배 이상 더 강하거나 더 여러 번을 사용해야 하는 해로운 새 살충제를 사용하게 되었다.
분해 속도가 10배 빠른 살충제로 같은 약효를 내기 위해서는 독성이 10배 강해야 하거나 오랜 기간 여러 번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새 살충제의 사용으로 많은 사람이 부작용으로 죽었지만 부각되지 않았을 뿐이다. DDT는 포유류가 먹어도 죽지는 않지만 독성이 강한 새로운 살충제는 실수로 몰라서 조금만 먹어도 죽는 사고가 수없이 발생하였던 것이다.
예를 들어보면 DDT는 LD50(lethal dose for 50% kill, 반수 치사량)이 250mg/kg이지만 유기 인계 살충제인 TEPP(tetraethyl pyrophosphate)는 2mg/kg이다. LD50(반수 치사량)는 독성을 나타내는 단위로 투여된 약물에 의해 절반이 죽는 투여량이다.
카슨도 POPs(Persistent Organic Pollutant) 전체의 유해성을 이야기했지만 국민들에게는 POPs의 대표인 DDT 유해성만 크게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DDT 생산 공장은 특허 기간이 끝나 공장이 15개로 난립되어 있어서 이익을 별로 얻지 못하다가 사용 금지 후 새로운 살충제를 개발한 회사는 특허로 오히려 더 많은 이익을 더 얻게 되었다.
환경보호에 열성적이었던 그녀는 DDT 전면 사용 금지 법안 통과를 보지 못하고 유방암으로 1964년 5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세계적인 환경보호운동에 결정적 영향을 준 환경보호 운동가로 역사에 남았다.
* 살충제 종류
A. 무기 살충제(inorganic insecticide)
독성이 강한 수은, 불소, 비소 등 무기물을 이용한 살충제로 제2차 세계대전 초까지 사용되었으나 강한 독성 때문에 사용이 금지되고 유기 살충제로 대체되었다.
B. 유기 살충제(organic insecticide)
a. 유기 인계 살충제(有機燐系殺蟲劑, organophosphorous insecticide)
효소인 아세틸콜린 에스테라제(acetylcholinesterase) 및 다른 콜린에스테라아제(cholinesterases)의 활성을 방해하여 곤충의 신경을 무력화시킨다.
유기인제는 적용 범위가 넓고 식물체 내에 흡수되어 침투성 효과가 있으며, 약효성분이 신속하게 분해된다.
팔티온, 이피엔, 다이아지논, 메타시스톡스, 말라티온, 스미치온, DDVP, 디프 테렉스 등이 있다.
b. 카바메이트 계 살충제(Carbamate pesticide)
유기인제에 저항성을 보이는 곤충이 나타남에 따라 이에 맞추어 사용하기 위해 1950년대에 개발되었다. 유기 인계와 비슷한 작용을 하며 독성이 약하고 지속성이 짧다. 상품으로는 세빈(Sevin, 카바릴, carbaryl), 바사, 테믹(Temik, 알디카브, aldicarb), 파단(카탑하이드로), 피리모 등이 있다
c. 유기 염소계 살충제(organochlorine pesticide)
DDT는 곤충 신경세포막의 나트륨 채널 개방제로 작용하는데 제2차 세계대전 중 모기 박멸에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그 후에 BHC제, Drin제(Endrin, Aldrin, Dieldrin, Telodrin 등)가 생산되어 해충방제에 큰 공헌을 하였다.
그러나 대량 사용으로 유용한 천적의 살해, 잔류독성 때문에 사용이 완전히 금지되었다. DDT, BHC, Aldrin, Dieldrin, Endrin, Telodrin, Heptachlor 등이 여기에 속한다.
d. 유기비소(organic arsenic) 계 살충제
비소(비석에서 비산 분리)는 사약인 비상의 구성 성분이다.
유기 비소 살충제는 방향족, 지방족 기와 염소, 산소, 유황 등으로 구성된 살충제로 임업, 과수원, 목화밭, 잔디밭, 골프장에 사용되고 있다.
인과 유사하여 인의 대사작용을 방해하고 여러 효소들의 작용을 저해하여 대사 과정을 교란시킨다.
e. 천연산 살충제(天然殺蟲劑, natural insecticide)
천연 살충제에는 식물 성분에서 얻어진 식물성 살충제와 광물에서 얻어진 광물성 살충제가 있다.
광물성 살충제는 독성이 강하여 일찍이 사용이 금지되었으며 식물성 살충제는 우수한 유기합성 살충제의 개발로 인하여 한동안 사용량이 감소되었으나 유기합성 살충제에서 심각한 문제점이 나타남에 따라 사용량이 증가되고 있다. 식물성 살충제로는 피레스로이드 계(pyrethroids, 제충국에서 추출), 로테논계(Rotenone, 데리스 Derris elliptica의 뿌리에서 추출, 사용금지), 니코틴제(담배에서 추출), 리아노이드계(Ryanoids), 피레스룸(Pyrethrum, Pyrethrin 피레스린 피레트린, 제충국 성분, C21H28O3) 등이 있다.
a) 피레스로이드계(pyrethroids)
피레스로이드는 제충국 꽃(Chrysanthemum cinerariaefolium 및 C. coccineum)의 성분인 피레스린(Pyrethrin 피레트린)과 비슷한 성분으로 pyrethroid환을 가진 화학물질이며 분자식은 C22H26O3이다.
pyrethroid계는 가정용 모기 살충제의 주 성분으로, 나트륨 채널 조절제로 작용하며 지속성이 짧고 적용 대상이 넓으며 값이 저렴하다.
이 성분은 햇빛에 의해 분해되는데 햇빛이 안 들어오는 곳에서는 약효가 오래 지속되므로 밀폐된 공간에서 사용하면 문제가 된다.
상품으로 데시스(deltamethrin, 델타메트린, 델타린), 립코드(사이퍼메트린, cypermethrin), 주렁(람다사이할로트린, Lambda-cyhalothin), 화스탁, 타스타(비펜트린, bifenthrin), 스미사이딘(fenvalerate) 등이 있다.
그리고 제충국의 다른 살충제 성분인 시네린(cinerin)Ⅰ의 동족체로 합성된 알레스린(Allethrin, 알레트린, 분자식 C19H26O3)은 광분해 될 때 생성된 산물이 DNA를 손상시킨다고 알려지고 있다.
b) 니코틴 노이듯 계(nicotinoids)
천연 살충제인 니코틴(nicotine, 화학식 C10H14N2)을 성분으로 하며, 곤충의 아세틸콜린 수용체에 작용한다.
c) 리아노이드계(Ryanoids)
남미 식물 Ryania speciosa(Salicaceae)에서 발견된 리아노딘(ryanodine, 화학식 C25H35NO9)를 성분으로 칼슘채널을 방해하여 곤충의 신경을 차단한다.
* 반수 치사량(lethal dose for 50% kill, LD50)
독성물질의 독성 정도를 수량적으로 나타내는 단위로 사용한다.
독성물질에 노출된 실험 군의 50퍼센트를 죽일 수 있는 유독 물질의 양으로 나타낸다.
실험 동물군에 독성물질을 한 번 투여하고 이 주일 동안 죽은 개체를 데이터로 한다.
실험 군 체중 킬로그램(kg) 당 독성 물질의 밀리그램(mg) 단위로 나타낸다(mg/kg).
7. 세계의 환경운동과 환경사건
환경운동의 시작은 1889년 영국에서 왕실 조류보호 협회(RSPB, Royal Society for the Protection of Birds), 영국 왕립 동물보호협회(RSPCA, Royal Society for the Prevention of Cruelty to Animals)가 만들어졌으며 현재는 민간 자선단체로 운영된다.
1892년에 설립된 시에라 클럽(Sierra Club)은 미국에서 서부 개척 시대에 금광개발로 산림지대가 훼손되자 이를 지키기 위해 존 뮤어(John Muir, 탐험가, 작가)가 창립한 미국 최초의 환경운동 단체이다. 존 뮤어는 1890년에 루스벨트 대통령의 요세미티 탐방을 안내하여 요세미티를 국립공원으로 지정하게 하였으며 1892년에 시에라 클럽을 창립하면서 “인간은 자연을 정복해서는 안 된다”라고 주장했다.
1912년 일본 토야마(富山) 현에서 이타이이타이병(Itai-Itai disease) 증세가 나타났다는 기록이 있으며 1957년에 중금속의 중독이라는 가설이 제시되어 1961년에 토야마(富山) 현에서 광산이 배출한 카드뮴이 생물 농축되어 카드뮴 중독을 일으켜 이타이이타이병(Itai-Itai disease)이 발생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1943년에 LA에서 자동차로 인한 광화학 스모그 사건(L.A. smog accident)이 일어났고 1948녀에는 펜실베이니아 주의 스모그 사건인 도노라 사건(Donora smog accident)이 발생했다.
1952년 영국에서 런던 스모그 사건(London Smog accident)이 발생하여 1,000여 명의 사망자가 났다.
런던 스모그(London Smog)는 역전층으로 인해 유독한 가스가 짙은 농도로 지속되어 큰 피해가 발생했으며 그레이트 스모그(Great Smog)라고도 불린다.
1956년 일본의 구마모토현 미나마타시의 신일본 질소비료공장에서 폐수로 방류된 메틸수은(Methylmercury, [CH 3 Hg] +)이 바다에서 생물 농축된 조개 및 어류를 먹은 주민들이 수은에 중독되어 미나마타병(Minamata disease )에 걸렸다.
'세계 자연 기금(WWF : World Wide Fund for Nature)'은 1961년 설립된 세계 최대의 민간 자연보호단체이다. 1961년 9월 11일 세계 야생생물 기금(World Wildlife Fund)으로 창립하여 1989년에 명칭을 변경하였다. 본부는 스위스 글랑에 국제사무국이 위치한다. 야생동물 보호, 생태계 보전과 공해방지, 자연자원의 효과적 이용 등에 활동한다.
1962년에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 1907~1964)의 ‘침묵의 봄(Silent Spring)'이 출간되었고 '침묵의 봄'의 영향으로 1965년 환경운동 단체인 시에라 클럽의 회원 수만 보더라도 두 배로 증가하였다.
1969년 후반 '지구의 친구(Friends of the Earth)'를 창설한 데이비드 브라워(David Brower)는 펠리컨(pelican, 사다새)을 보호하는 데 카슨으로부터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지구의 친구'는 지구환경보호단체로서 현재까지 지구온난화, 방사성폐기물 감시, 수자원 보호 등 환경운동을 펼치고 있다.
1969년에는 캘리포니아의 산타바바라 앞바다에서 기름이 유출(Santa Barbara oil spill) 되어 해안을 오염시키고 생태계를 파괴시킨 사건과 1969년에 카야호가 강 화재 사건(Cuyahoga River Fire, 강을 덮은 산업폐기물인 기름띠에 일어난 화재)이 일어나면서 환경운동이 본격화되었다.
지구의 날(4월 22일)은 1970년 4월 22일, 미국 게이로드 넬슨(Gaylord Anton Nelson 1916~2005) 상원 의원이 환경문제에 관한 범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지구의 날(Earth day, 4월 22일)'을 처음으로 선언한 것에서 유래하며 1970년 첫 지구의 날 행사에는 2,0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참가하여 연설을 듣고, 토론회를 개최하고, 환경을 깨끗이 하기 위한 실천적인 행동을 다짐하였다.
짐 볼런(Jim Bohlen), 벤 메트캐프(Ben Metcalfe), 로버트 헌터(Robert Hunter), 패트릭 무어(Patrick Moore) 등이 1971년에 그린피스(Greenpeace International)를 창립해 반핵, 반 포경 운동을 캐나다에서 시작하여 지금은 국제적인 조직이 되었다.
1972년 6월 5일 스톡홀름에서, 인류가‘하나뿐인 지구(Our Sole Earth)’를 주제로 최초의 유엔 인간 환경회의가 개최되었으며 유엔 인간 환경선언(The United Nations Declaration on the Human Environment, 스톡홀름 선언)을 하였다. 이날을 환경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보전을 다짐하는 세계 환경의 날(World Environment Day, 6월 5일)로 제정하였다.
1978년 프랑스의 브리태니포트샬 해안 5km지점에서 미국의 아모코 석유회사(Amoco Oil Company) 소유의 22만 톤급 유조선 아모코카디즈호(Amoco Cadiz)가 암초에 충돌하여 160만 배럴의 원유가 유출되어 해안 200km를 오염시키는 사고가 일어나 그 지역의 해양생물이 거의 멸종되는 아모코카디즈호 기름 유출 사건(Amoco Cadiz oil spell)이 일어났다.
1979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서스쿼해나 강 가운데 있는 스리마일 섬 원자력 발전소(Three Mile Island Nuclear Generating Station, TMI)에 사고가 발생했다.
1984년 인도 마디아프라데시주 보팔시의 살충제 공장에서 독가스(메틸이소시안, CH3NCO) 누출로 2,800여 명이 사망하였고 20만 명 이상의 피해자가 발생하였다.
1986년 구 소련 때 우크라이나 공화국 수도 키예프시 남쪽 130km 지점에서 최악의 체르노빌 원전사고(Chernobyl nuclear accident )가 일어나 28명이 급성질환으로 사망했고 6,000명 이상이 갑상선암에 걸렸으며, 이로 인해 15명이 더 사망했다.
미국 최악의 환경재앙은 1989년 알래스카 주에서 유조선 엑손 발데스 호가 산호초에 부딪쳐 침몰한 사건(Exxon Valdez oil spill)으로 26만 배럴의 원유가 바다로 유출되었다.
세계에서 최악의 해양 환경 참사는 영국의 시추선 딥워터 호라이즌 호(Deepwater Horizon)가 2010년 4월 19일 멕시코 만의 유정에서 폭발해 노동자 11명이 목숨을 잃고 490만 배럴이 유출된 것이다.
2011년 일본에서 대지진에 의한 쓰나미(지진 해일)로 인해 후쿠시마 원전 사고(福島原電事故, 복도 원전 사고, Fukushima Daiichi nuclear disaster)가 일어나 핵연료가 용융하고 수소가 발생, 폭발하여 원자로 격벽이 붕괴되어 다량의 방사성 물질이 누출되었다.
2015년 중국 동북부의 물류 허브 톈진(天津) 항에 있던 위험물 적재 창고에서 대형 폭발(Tianjin explosions)이 일어나 1,0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으며 폭발 사고 이후 치명적인 독성가스인 시안화나트륨이 검출되었다.
2020년 레바논의 수도인 베이루트의 항구에서 일어나 베이루트 폭발사고(Beirut explosions)는 압수 보관 중이던 질산암모늄 2,750톤 이상이 폭발하여 대략 사망자 192명, 부상자 6천여 명에 이르렀다.
8. 우리나라 환경운동과 환경사건
우리나라에서 환경운동을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단체를 운영할 재정이 자립되어 있지 않고 참여하는 전문가가 부족하다.
환경문제는 과학기술 산업의 부산물로 발생하는 것이 대부분이므로 첨단의 전문가가 참여해야 하는 것이다. 비전문가가 전문 업체를 입으로만 감시할 수는 없다. 그래서 많은 전문가를 자원봉사로 지원받는다.
자원봉사는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나 자원봉사는 봉사 자체로 즐거움이 있지만 자원봉사자도 사람이라 적어도 칭찬이라도 받기를 바란다.
재정이 독립되지 않아 일부는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으며 환경운동 단체의 간부들 중에는 감시해야 할 업체로부터 찬조(?)를 받아 운영비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비판자가 돈으로 얽혀 있으면 자유롭게 비판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세상에 이름이 나면 다른 분야에 한 눈을 파는 것이 일상인데 이 분야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어쨌든 현장에서 묵묵히 일하는 환경단체 회원들의 노력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는 몇 개의 환경단체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는 60~70대에 산업의 발전이 일어났으며 이에 따라 환경오염도 뒤따랐다.
60~70년대에는 환경오염의 피해에 대해 지역적으로 보상을 받아 내는데 그쳤다.
가. 공해문제 연구소
1982년 5월 사회 민주화 운동을 하던 종교단체를 중심으로 ‘공해문제 연구소’라는 최초의 전문 운동 단체가 결성되었다.
나. 소비자 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
1983년에 창립된 소비자 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은 소비자 상담, 에너지 및 환경정책 조사연구, 여성문제, 교육자료 간행, 상담 서비스 등을 하는 시민단체이다.
다. 반공해 운동 협의회, 공해 추방 청년운동 협의회
1984년 12월에는 대학생과 청년을 중심으로 ‘반공해 운동 협의회’가 결성되고, 1987년에는 ‘반공해 운동 협의회’가 '공해 추방 청년운동 협의회’라는 이름으로 공식적으로 창립되었다.
라. 공해 반대 시민운동 협의회
1986년에 ‘공해 반대 시민운동 협의회‘가 주부들을 중심으로 창립되었다.
마. 경제정의 실천 시민 연합
1989년 출범한 경제 정의 실천 시민 연합은 '경실련'으로 불린다.
바. 환경정의 시민 연대
1992년에 환경정의 시민 연대가 설립되어 "무엇이든지 부족하면 아껴 쓰기보다는 새로 만들어 해결하면 된다는 생각이 환경오염의 주원인이며 이러한 환경오염에 대한 책임과 깨끗한 환경을 누릴 권리는 우리 모두가 평등하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환경운동 단체로, 모든 사람들의 평등한 환경권을 추구하는 운동을 진행하고 환경정책 자료와 시민참여마당을 제공한다.
사. 환경운동연합
1993년에 환경운동연합이 환경오염 방지, 산업구조의 친환경적 개조를 목표로 설립되었다. 한국공해문제 연구소가 중심이 되어 공해 반대 시민운동 협의회와 공해 추방운동 청년협의회 등과 통합하여 공해 추방운동연합을 만들었고 1993년에 다시 부산 공해 추방 시민운동 협의회, 광주 환경운동 시민 연합, 목포 녹색 연구회 그리고 1991년 3월 발생한 낙동강 페놀 오염 사건을 계기로 결성된 마산 창원 지역 및 대구 지역 환경단체 등이 참여하여 환경운동연합을 결성하였다.
아. 쓰레기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운동 협의회
1997년에 쓰레기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운동 협의회가 창립되었다.
쓰레기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 정책대안을 제시하고 환경친화적인 쓰레기 관리와 재활용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시민의 모임이다.
자. 바다 가꾸기 실천운동 시민 연합
1999년에 바다 가꾸기 실천운동 시민 연합이 결성되었다.
차. 환경 수호 운동연합회
1999년에 환경 수호 운동연합회가 창립되어 전국 23만여 명의 회원과 함께 환경보전 운동을 위해 뜻을 같이하는 순수한 자연 사랑의 실천자들이 모여 항상 밝고 활기찬 모습으로 살맛 나는 환경 세상을 가꾸어 간다.
이들 중 일부 환경단체의 특징은 공해의 주범을 군사독재 정권과 독점재벌, 그리고 다국적 기업으로 규정하고 반공해 운동의 주체는 민중이라고 규정하는 등 반공해 운동을 민주화 운동의 한 부문운동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나라의 환경운동은 순수성이 결여된 이념적 정치성을 가진 사람들이 주도함에 따라 환경문제의 본질과 괴리되어 국민적 공감이 반감된 부분이 많다.
우리나라는 세계 환경의 날(World Environment Day)인 6월 5일을 1996년부터 법정기념일로 지정했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큰 환경사건은 다음과 같다.
* 1991년 낙동강 페놀 오염 사건
1991년 경상북도 구미시에 있는 두산전자에서 페놀 기판 제작 과정에 사용되는 페놀 원액이 저장 탱크에서 페놀수지 생산라인으로 통하는 파이프가 파열되어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1991년 3월 14일과 4월 22일 두 차례에 걸쳐 각각 페놀 30여 톤과 1.3 톤이 두 번에 걸쳐 낙동강으로 유출되어 부산까지 내려갔다.
대구 강정 취수장으로 유입된 페놀 오염물은 정수 처리 과정에서 사용한 염소와 반응을 일으켜 클로로페놀로 변하면서 심한 악취를 유발하였다. 거의 일주일가량 오염된 물을 마신 대구 시민에게 두산은 1만 1,036건 10억 1,800만 원을 배상하였으며 국민들 사이에 두산 제품의 불매운동이 일어났다.
* 1995년 시프린스호 기름 유출 사고
1995년 7월 23일 전라남도 소리도 앞바다에서 호남정유(현 GS칼텍스) 사의 키프로스 선적 14만 톤 급 유조선 시프린스호가 암초에 부딪혀 5천여 톤의 벙커 A/C유와 원유가 바다에 유출되었다. 이 사고로 선원 1명이 실종되었으며 남해 여수시 여천 앞바다에 기름이 오염되어 큰 재해를 일으켰다.
* 2007년 태안 기름유출 사고
2007년 12월 7일 서해안 태안 앞바다에서 홍콩 선적의 유조선 허베이스피리트(Hebei Spirit)와 삼성물산 소속 삼성 1호 크레인 부선이 충돌하여 유조선 탱크에 있던 총 12,547㎘의 원유가 태안 해역으로 유출되었다. 태안군의 양식장, 어장 등 170km의 해안에 8천여 헥타르가 원유에 오염되었으며 이를 방제하기 위해 50만 명이 넘는 국민이 지원자로 참여하여 원유를 걷어냈지만 많은 피해를 주었다. 더욱이 원유가 뭉친 타르 덩어리가 바다 밑에 가라앉는 등 후유증이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9. DDT 사용 규제
1969년 세계 보건기구(WHO)는 “DDT는 말라리아를 퇴치하는 중요한 살충제로 DDT 독성으로 인하여 한 명의 인명도 손상 없이, 전 세계에서 최소 20억 명의 목숨을 구하였다. DDT 살포 요원들이나, 살포지역 거주민들 중에서 어떠한 증상도 관찰되지 않았으므로 DDT는 안전하다"라고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그러나 1969년에 미국 의회가 국가 환경 정책 법안을 결의하여 1972년부터 미국에서 DDT, BHC 등 9종류의 농약 사용을 전면 금지하였다.
DDT의 사용이 금지됨에 따라 멸종 위기에 있던 흰머리 수리(American bald eagle)의 개체 수가 다시 늘어났다.
DDT의 안전성에 대한 많은 경고에도 불구하고 DDT가 인간에게 암을 일으킨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찾지 못했다. 그러나 인간과 같은 포유동물은 피부로 접촉할 경우에는 특별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지만 생물농축으로 DDT가 농축된 음식을 섭취하면 DDT가 몸에 축적되어 몸속에서 에스트로겐과 같은 내분비계 교란 물질로 작용할 수 있다고 한다. DDT는 조류에서 유해성이 나타나 1970년대에 대부분의 국가에서 DDT를 농약으로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였다.
UN 환경계획(the United Nations Environment Programme)은 2001년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열린 잔류성 유기 오염물질(Persistent Organic Pollutant: POPs) 회의에서 DDT를 포함한 12개의 잔류성 유기 오염물질(POPs)의 생산 및 사용을 금지하는 협약을 채택했으며 현재는 160여 개 국가가 서명했다.
이와 같은 협약의 체결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말라리아가 창궐하여 수백만 명이 죽는 인도와 남부 아프리카 국가에서는 모기 퇴치를 위해 DDT를 대체물질이 개발될 때까지 세계 보건기구(WHO)의 안전지침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제한적으로 허용되었다. 세계 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WHO)는 2014년까지 DDT 사용의 30%를 줄이고 2020년까지는 완전히 금지시킨다는 목표를 세웠다.
DDT 사용 금지는 정치적으로는 승리를 거두었으나 근본적인 처방은 되지 못하였던 것이다.
현재 미국에서는 살충제의 사용량이 증가하여 한 해 6~7천 마리의 조류가 죽는 등 잔류성 유기 인계 살충제의 부작용이 나타나 유기 인계 살충제도 사용이 금지되었다.
DDT는 지금까지 발명된 살충제 중에서 포유류에 독성이 약하고 가장 생산비가 저렴하며 약효가 탁월하고 오래 지속되며 다양한 절지동물에 사용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값이 싸고 약효가 탁월함에 따라 광범위한 지역에 무차별 대량으로 사용되었고 안정하여 약효가 오래 지속되는 잔류성의 장점이 오히려 생물 몸에 농축을 일으키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생산비가 높았다면 무차별 대량 살포가 불가능하였을 것이고 이에 따라 농축되는 양도 적었을 것이다.
레이첼 카슨은 POPs을 무분별하게 대량으로 살포하는 것을 경고한 것이지 완전히 사용하지 말 것을 주장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10. DDT 사용 제한에 대한 논란
노먼 볼로그(Norman Borlaug, 1914 ~ 2009, 녹색혁명의 아버지, 미국, 1970년 노벨 평화상 수상)는 DDT 등의 살충제 사용은 단점보다 더 많은 장점이 있다고 하였으며 여론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지속적 사용을 지지했다. 볼로그는 레이첼 카슨의 작품과 개성을 가장 존경했지만, '침묵의 봄(Silent Spring)'에서의 DDT의 효과는 부정확하게 묘사되었다고 한탄했다.
스리랑카에서는 1948년부터 1962년까지 DDT를 정기적으로 사용하여 연간 250만 명이 넘어가던 말라리아 환자 수가 연간 31명으로까지 줄었다. 그러나 DDT 사용을 금지한 후 5년도 지나지 않아 말라리아 환자 수가 다시 연간 250만 명으로 늘어났다.
설령 DDT가 발암물질이라 하더라도 암에 걸려 사망하는 숫자보다는 말라리아에 걸려 사망하는 숫자가 더 많을 것이기 때문에 현재에도 일부 국가에서는 말라리아 예방을 위해서 DDT를 사용하고 있다.
국제 원조에 크게 의존하지 않는 개발 도상 국가는 자국 예산으로 말라리아 예방을 위해서 DDT를 사용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라 할 수 있다. DDT는 위험성이 있지만 약효가 뛰어나고 값이 싸기 때문이다.
인도는 살충제 DDT의 가장 큰 소비국이며 DDT를 생산하는 국가이다. 세계적인 금지에도 불구하고 DDT는 인도, 중국, 북한 등 여러 나라에서는 환경 위생용뿐만 아니라 농업용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1980년부터 대부분의 나라에서 DDT 생산이 거의 없다.
그런데 최근에 태어난 신생아의 혈액에서도 DDT가 검출되고 있다. 이는 오랫동안 토양에 잔류해 있던 것이 엄마의 몸속에 흡수되었거나 엄마의 몸에 축적되어 있던 POPs들이 태반을 통해 태아에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유 속에도 POPs가 들어 있다는 것이다.
또 지방조직 속에 축적된 것이 혈액으로 빠져나와 순환기를 돌면서 여러 주요한 장기에 도달한다. 특히 이 POPs는 강력한 지용성이라 세포막을 통과하여 세포 내로 침투한다. 세포 속으로 들어온 POPs는 독성으로 작용할 뿐만 아니라 환경호르몬으로 작용한다. 환경호르몬이란 외부에서 들어온 화학물질이 인체 내의 호르몬과 유사한 작용을 하는 물질들을 말한다.
어떤 화학물질이 체내로 들어와서 호르몬 작용에 영향을 미치면 우리 인체의 대사와 면역체계는 심각한 혼란을 겪게 된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동물의 지방조직이나 혈액에도 이 POPs들이 검출되고 있다. 이에 따라 환경론자들은 POPs의 사용을 막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특히 환경론자들은 아프리카에서의 DDT를 사용을 금지하기 위해 DDT를 사용하는 나라에 원조를 하지 못하도록 정부나 구호단체에 압력을 가하였고 이에 따라 DDT 생산 공장은 수요가 거의 없어졌으며 환경론자의 압력에 굴복하여 폐업하였다.
이에 DDT 사용 제한을 반대하는 학자들의 반발로 논란이 일어났다. DDT 사용 제한에 반대하는 학자들은 DDT 사용을 금지함에 따라 가난한 나라의 국민이 말라리아에 걸려 수많이 죽는다고 말한다. 세계 인구의 10%가 말라리아로 고생하고 있으며 말라리아로 인해 아프리카의 어린이들이 1분에 한 명씩 꼴로 죽는다는 것이다.
2007년 미국 국립보건원(NIH) 그와츠(Robert Gwadz)는 DDT 사용 금지로 2,000만 명의 아프리카 어린이들이 죽었다고 보고했다. 언론에서는 죽어가는 수백만 명의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생명보다 수십 마리의 울새(robin)나 흰머리 수리의 죽음을 더 크게 보도한다.
현대에는 많은 종류의 살충제가 개발되어 사용 중에 있다. 분해성이 빠르고 독성이 강한 살충제지만 단가가 DDT보다 5~10배 높아 가난한 나라에서는 대량으로 살포할 수가 없다. 지금까지 DDT 만큼 저렴하고 약효가 뛰어난 살충제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원조를 하는 서구의 나라들은 환경론자의 입김에 따라 DDT를 사용하면 원조를 하지 않겠다고 한다.
가난한 국가는 돈이 없으므로 DDT를 생산하는 공장을 세울 능력이 없으며 서구의 DDT 생산 공장은 수요가 없어 폐쇄되었다. 로버트(Donald Roberts)와 트랜(Richard Tren) 박사는 '탁월한 분말(The Excellent Powder) : DDT의 정치적 과학적 역사(DDT's Political and Scientific History)'라는 책에서 "DDT 발명 이전(1939년)에는 말라리아, 황열병, 발진티푸스 등으로 수백 년간 고통받아오던 서구의 나라들이 엄청난 DDT를 살포하여 이들 전염병들을 퇴치하고는 환경문제를 이유로 아프리카, 아시아 그리고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에게는 DDT의 혜택을 받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라고 주장한다.
부르스터(Charles Frederick Wurster, 1930 ~ , 미국, 환경학자, DDT 퇴출에 기여) 박사는 “인구수의 증가가 모든 문제들의 원인이다. 지구에는 인구수가 너무 많으며, 어느 정도 인구수를 줄여야 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말라리아로 인한 죽음은 인구수를 줄이는 최적의 방법 중 하나이다.”라고 말하였다 한다.
영화 분야에서 하이테크 스릴러(hightech thriller)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크라이턴(Michael Crichton, 1942 ~ 2008, 미국)은 극단적 환경론자들이 벌이는 국제적 음모를 파헤친 테크노 스릴러 소설(techno-thriller novel)인 '공포의 제국(State of Fear, 2004)'에서 “DDT 사용 금지로 히틀러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였다”라고 말한다.
한편 존 벌로(John Berlau, 미국)는 2007년 출판된 '광적 환경론자(Eco-Freaks) : 과도한 환경론은 당신의 건강에 위험하다(Environmentalism is Hazardous to your Health!)'라는 책에서 편협한 극단적 환경론자들과 다른 정치적 이유를 가진 서구 나라들의 관료들이 하나로 뭉쳐서는 환경오염이라는 문제를 앞세워 가난한 국가를 대상으로 인종청소(人種淸掃, ethnic cleansing) 또는 집단학살(genocide)을 자행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2015년 모기에 의해 매개되는 지카(Zica) 바이러스가 남미의 브라질을 중심으로 새로 나타나 세계 여러 나라에서 창궐하였다.
지카(Zica)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소두증(Microcephaly, 小頭症)은 치료방법이 현재까지 없다.
그래서 소두증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지카(Zica) 바이러스를 옮기는 모기를 박멸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기를 박멸하기 위해서는 넓은 지역을 방역해야 하는데 방역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 그래서 위험성은 있지만 생산 비용이 낮고 잔류성이 높아 약효가 오래 지속되는 DDT를 사용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DDT를 다시 생산하여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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