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글

등불(light, lamp), 등잔, 호롱불

진국 2017. 11. 1. 10:33

                           김진국

1. 등불

 어두운 밤을 불로 밝히는 것은 무서움을 떨치게 하고 활동이 가능한 환경으로 만들어 주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원시인들도 밤에 모닥불을 피워서 거주지를 밝히고 이동할 때는 횃불을 사용했을 것이다.
등(燈)은 불을 켜기 위한 모든 장치로 등잔(燈盞), 촛대(燭臺, 촉대) 등을 뜻하고 등불(light, lamp)은 불을 켜서 어두운 곳을 밝히는 모든 것을 뜻한다.
등불에서 연료가 연소하여 불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연료는 기체가 되어야 하고 온도는 인화점 이상이어야 하며 산소가 충분히 공급되어야 한다. 그래서 고체나 액체 연료는 먼저 열을 받아 기체가 되고 온도가 인화점 이상이 되었을 때 산소와 결합함으로써 불꽃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온도를 낮추거나 산소, 연료의 공급을 끊으면 불이 꺼지며 온도나 산소 공급이 충분치 않으면 불완전 연소가 일어나 그을음(soot) 등이 발생한다.
양초 불을 예로 든다면 성냥불을 켜서 양초 심지(wick)에 갖다 대면 심지 주변의 양초가 녹아 모세관 현상으로 심지를 타고 오르며 불꽃 가까이 이른 양초 액체는 불꽃의 열에 의해 기화하고 온도가 인화점 이상으로 높아지면 인화되며 불이 붙은 이후에는 양초 불의 열에 의해 양초가 녹아 심지를 타고 올라 기화되고 인화점 이상이 되어 연속적으로 불꽃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양초 불은 양초 심지(wick)가 타서 없어지는 속도를 불꽃의 크기 그리고 양초 길이가 불꽃에서 타서 줄어드는 비율에 맞추어 심지의 굵기와 재질을 정해 놓은 것이며 호롱불이나 호야 등은 심지(wick)를 올려 밖으로 드러난 심지 부분을 길게 하면 불꽃이 커지고 더 밝아지며 심지를 내려 밖으로 드러난 심지 부분을 짧게 하면 불꽃이 작아지지만 너무 올리면 불완전 연소가 심해져 그을음이 많이 난다.
호롱불이나 호야 등은 원천적으로 불이 붙을 수 있는 부분을 제한해 조절할 수 있으므로 불의 밝기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불이 날 위험을 줄인 장치인 것이다.
 실내에서 등불(light, lamp)을 켜기 위해서는 알맞은 연료가 필요한데 적은 양으로도 오래 타고 연기나 그을음이 생기지 않으며 불이 날 위험이 없어야 한다.
옛날부터 기름이 적은 양으로도 오래 동안 불꽃을 피울 수 있었으므로 등불의 연료로 사용되었다.
동물성 기름은 포화지방이라 고체이므로 쏟을 위험이 없고 타면서 연기나 그을음이 적게 발생되므로 고급 연료였으나 구하기가 어려웠다. 식물성 가름은 불포화 지방이라 액체이므로 쏟기 쉽고 또 탈 때 불완전 연소로 연기와 그을음이 많이 난다.
1960년대 초까지 밤에 호롱불을 켜고 생활했다.
 호롱은 양철로 만들어졌는데 몸통인 기름통은 알코올램프같이 주둥이가 가늘게 되어 있으며 위 뚜껑은 빨대 모양의 짧은 대롱이 붙어 있어 가느다란 심지를 그 속에 끼웠으며 위 뚜껑을 아래 기름통에 덮었는데 꽉 끼이게 만들어져 있었다. 등유를 넣고 뚜껑을 꾹 눌러 닫으면 호롱이 넘어져도 기름은 거의 새지 않았다. 넘어져도 빨리 바로 세우면 불이 날 위험은 거의 없었다.
등롱(燈籠)은 촛불(등, 燈)이나 등잔불이 바람에 꺼지지 않도록 주변을 감싼 바구니(롱, 籠) 모양의 기구이다.
그런데 호롱(壺籠)을 사전에 찾아보니 등잔(燈盞, light, lamp)과 같다고 되어 있다.
한자 용어인 것 같은데 호롱이라는 한자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아마 호롱도 호롱불이 바람에 꺼지지 않도록 주변을 감싼 바구니(롱, 籠) 모양의 기구를 의미하였을 것이며 등롱(燈籠)을 등(燈)으로 줄여 쓰고 호롱은 바구니(롱, 籠) 의미를 생략하고 호롱불만을 의미한 것이라 생각된다.
 나무로 만든 등잔대(등잔 받침, 등잔걸이, 호롱 받침, 호롱 걸이, 등경, 등가, 유경) 위에 양철로 만든 호롱을 놓았다. 호롱을 놓는 등잔대 부분이 홈이 파져 있어 등잔대에 놓은 호롱은 등잔대가 넘어지지 않으면 떨어지는 일은 없었다.
궁궐 같은 곳에서는 등잔대가 매우 높은 것도 있는데 이런 등잔불을 얹어 놓았던 받침대를 등 울이라 한다.
기름은 등유(燈油, 석유, kerosene, 파라핀 오일 paraffin oil, 액체 파라핀과 고체 파라핀은 다름)를 사용했다.
저녁이 되면 성냥불을 켜서 호롱의 심지(wick)에 붙였다. 2평 정도의 방에 호롱불을 하나 켜면 사람 얼굴을 겨우 알아볼 정도였으며 책을 읽으려면 호롱불 가까이 가야 했다. 그래서 후에는 심지가 2개인 호롱도 있었다. 양 촛불 1개를 켰을 때 보다 더 어두웠다. 밝게 하려고 심지를 올리면 그을음이 발생하여 천정을 까맣게 그을렸다.
촛불 1개의 밝기를 1촉(candela, cd), 즉 약 1와트(W)이니 호롱불은 1와트(W)의 밝기도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 동네에서 협의 결정하여 집집마다 전등 1 ~ 2개를 달아 놓고 물레방앗간에 발전기를 설치하여  저녁에 2 ~ 3시간씩 발전하여 전기를 보내주었다. 그 밝음은 딴 세상을 열어 주었다.  전기는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에너지로 생산되는데 물레방아 회전이 고르지 못해서인지 전기용량이 부족해서인지 전기의 질이 불량하여 전등이 밝았다가 어두웠다가 하였지만 호롱불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2. 등잔(燈盞, light, lamp)과 초(燭, 촉, candle)

옛날의 등불은 조개껍질이나 돌그릇 등에 동식물 기름을 담아 불을 붙이는 것이었다.
이때 불이 잘 붙지 않고 그을음이 많이 생기며 기름이 많이 소비되어 불편함이 많았는데 어떤 계기로 심지(wick)를 사용하게 되어 등불에 큰 발달이 일어났다.
심지(wick)를 사용하면 심지를 통해 기름이 모세관 현상으로 상승하여 열을 받아 쉽게 기체화되고 공기와 접촉으로 많은 산소가 공급되어 완전연소가 일어나 그을음이 생성되지 않았으며 불이 쉽게 붙고 꺼지지 않아 계속 잘 타오르게 되었으며 심지의 굵기와 길이에 따라 불꽃의 크기도 조절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심지(wick)를 사용함에 따라 식물성 액체 기름은 등잔(燈盞)을 사용하여 불을 켜게 되었으며 동물성 고체 기름은 그릇이 별로 필요 없게 되어 초(燭, 촉)로 만들어 불을 켜게 되었다. 이들 역사적 기원은 몇 천 년이 된다.
  그 후  초(燭, 촉)는 궁궐이나 고관대작이 사용했으므로 서민은 양초(洋燭, 양촉, candle, 캔들)가 들어오기 전에는 별로 사용하지 못하였다.
초(燭, 촉)를 만드는 재료는 쇠기름(牛脂, beef tallow), 양기름(mutton tallow), 밀랍(Beeswax) 등 상대적으로 인화점이 낮은 고체 동물성 기름이 사용되었으나 사용할 수 있는 양이 부족하였고 녹는점이 높아 여름에는 녹아내려서 사용에 어려움이 있었다. 초의 심지는 솜으로 꼬아서 만들었다.
 동양에서의 등불(light, lamp)은 입구가 넓은 등잔(燈盞)을 많이 사용하였다.
등잔(燈盞)이란 술잔과 같은 종지 모양으로 입구가 넓은 질그릇, 사기그릇, 놋그릇 등이 있다. 이 그릇에 식물성 기름을 담고 솜으로 만든 심지를 기름에 담가 그릇의 가 쪽에 기대어 붙여놓고 불을 붙이는 것이다.
등잔에 기름을 넣어 심지에 불을 붙여 등잔불을 켜서는 등잔대에 올려서 사용하였다.
섣달 그믐날 밤에 방뿐만 아니라 정지(부엌), 우물가, 통시(화장실) 등 집안 곳곳에 불을 밝히자니 호롱 수가 부족하여 할머니께서 종지와 들기름을 이용하여 등잔(燈盞) 불을 만들어 곳곳에 가져다 놓으시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옛날의 등잔 기름은 구하기 쉬운 들기름(들깨 기름, 소자유, 蘇子油, 蘇子楢, 법유, 法油, perilla oil), 아주까리(피마자, 蓖麻子, castor) 기름 등 식물성 기름이 사용되었다.
등잔 기름으로 사용하는 식물성 기름(동식물유는 인화점이 250℃이하로 하한 값은 없지만 파마자유 229℃, 참기름 262℃ 등으로 인화점이 높음)은 반건성유나 불건성유로 휘발성이 낮아 심지 밖의 기름으로 불이 번지지는 않아 위험이 없었다.
그런데 옛날에 일반 서민은 기름을 구할 경제적 능력이 되지 않아 밤에 조명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극히 짧은 시간 동안만 등불을 켜거나 특별한 날에만 등불을 켤 수 있었으며 석유가 수입되면서 서민들도 호롱불이나 양초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스, 로마 램프 등 서양의 램프(Lamp)는 옛날부터 위쪽 입구가 넓은 등잔이 아니고 위에 구멍이 있는 항아리 모양(壺形, 호형) 이었다(예. 로마 램프, 알라딘의 램프, Alladin's Lamp).

3. 등유(燈油, kerosene, 석유, 등유, 燈油, kerosene, 파라핀 오일 paraffin oil, 액체 파라핀과, 고체 파라핀은 다름)의 개발

 석유(石油, Petroleum, 원유)는 몇 천 년 전부터 약이나 연료로 사용되었지만 거친 혼합물이었으므로 사용하기에 불편하여 상품화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미국의 투자 전문 변호사인 조지 비셀(George Henry Bissel, 1821 ~ 1884)이 1853년 시커먼 석유로 조명용 램프의 연료로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라 석유투자회사를 차리고 바닥에 드러난 시커먼 석유를 예일대 화학 교수인 실리만(Benjamin Silliman, Jr, 1816~ 1885)에게 보내어 성분을 분석하여 램프 연료로 적합한지를 실험해 줄 것을 의뢰하였다.
1855년 실리만은 석유에서 비등점에 따라 다양한 물질을 분리했으며 물질마다 다양한 영역에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고 고래기름보다 더 좋은 램프 기름이 될 수 있는 성분이 있다는 결과를 얻었다.
조지 비셀은 1855년 에드윈 드레이크(Edwin Laurentine Drake, 1819 ~1880)에게 석유 탐사와 채굴을 의뢰하였으며 드레이크는 천신만고 끝에 여러 곳을 탐사하여 1859년에 유정을 20m 정도 파서 처음으로 석유를 발견하여 채굴하였던 것이다.
채굴된 석유(원유)를 분별 증류하여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으며 세계로 전파되었다.

* 원유(原油, crude oil, 석유 石油, Petroleum)의 분별증류

원유(原油, crude oil, 석유 石油, Petroleum)를 가열하여 끓는점에 따라 분류(분별 증류) 하면 석유 가스(petroleum gas, 30℃ 이하), 가솔린(gasoline, 30 ~ 85℃), 나프타(naphtha, 85 ~ 180℃), 등유(kerosene, 180 ~ 240℃), 경유(輕油, Diesel, light oil, 240 ~ 340℃), 윤활유(lubricating oil, 300 ~ 570℃), 중유(重油, heavy oil, 340℃ 이상), 아스팔트(asphalt) 순으로 분리된다.

* 파라핀(paraffin, 고체)

  파라핀은 중유(重油, heavy oil)의 여러 성분 중의 하나이며 중유(重油)를 냉각시켜 석출된 것을 여과해서 얻는다.

* 유동 파라핀(liquid paraffin, 액체)

유동 파라핀(liquid paraffin)은 액상 파라핀, 바셀린유(Vaseline, 바셀린, 상표명), 화이트유(white oil)라고도 하며 끓는점이 높은 윤활유(lubricating oil, 330 ∼ 390℃)의 여러 성분 중의 하나로 윤활유를 재증류한 다음 여과하여 얻는다.

4. 호롱

우리나라는 1876년경에 일본으로부터 석유(등유, 燈油, kerosene)가 수입되었고 뚜껑에 심지 꽂이가 있는 사기 등잔(沙器燈盞)이 대량으로 수입되었다. 그런데 이 사기 등잔(沙器燈盞)은 잔(盞) 모양이 아니고 서양의 램프(Lamp)에서 유래한 항아리(壺, 호) 모양이었다. 그래서 이것을 호롱(壺籠)이라고 불렀다는 설이 있다.
호롱의 심지(wick)는 솜이나 한지 등을 이용하였고 기름은 등유(燈油, kerosene, 석유, 파라핀 오일)를 사용하였다.
잔(盞) 모양의 옛 등잔(燈盞)에 석유(등유, 燈油, kerosene, 파라핀 오일 paraffin oil, 액체 파라핀과 고체 파라핀은 다름)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등유는 불이 붙을 위험이 낮지만 초기 등유는 석유(石油, petroleum)의 분리가 불완전하여 등유(kerosene, 석유, 파라핀 유)의 안정도가 낮아 사고의 위험성이 높았다.
등유(燈油, kerosene. 석유, 파라핀 유)는 식물성 기름(동식물유는 인화점이 250℃이하로 하한 값은 없지만 파마자유 229℃, 참기름 262℃, 면실유 188℃ 등으로 인화점이 높음, 식물성 기름 327℃)보다 인화성(제2석 유류인 등유의 인화점 38 ~ 74℃, 에탄올의 발화점 14℃보다는 높음)이 강해 넓게 노출되어 있는 등잔(燈盞)에 석유를 사용하면 노출된 부분 전체에 불이 붙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위험하고 증발되어 줄어들기 때문이다. 호롱은 가는 심지 꽂이에 심지가 극히 일부분만 노출되어 있으므로 식물성 기름보다 인화성이 높은 등유(인화점 38 ~ 74℃)를 사용하여도 불꽃의 크기가 작고  일정하게 제한되어 위험이 거의 없다.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호롱(壺籠) 은 재료를 바꾸어 양철로 제작되고 밑의 기름통과 위의 심지 꽂이 뚜껑이 꽉 쪼이게 만들어졌으므로 넘어져도 기름이 유출되어 불이 날 위험이 사기 호롱보다 줄어 들었다.
 
5. 등롱과 호롱

건물 밖에서는 바람 때문에 촛불이나 등잔불을 그냥 사용할 수 없다.  촛불이나 등잔불을 밖에서 사용하기 위해서는 바람막이가 필요하다. 그래서 불을 켠 초(燭, 촉)나 등잔, 호롱을 담아 외출하거나 밖에 내어다 걸 수 있도록 만든 것이 등롱(燈籠)이다. 보통 우리는 이것을 등(燈)이라 한다.
등롱은 촛불(등, 燈)을 넣어 두는 바구니(롱, 籠)라는 뜻으로, 촛불이 바람에 꺼지지 않도록 주변을 감싼 기구인 것이다. 초롱과 등롱은 같은 말이다.
보통 등(燈)은 판자로 아래,  위판을 만들고 위판은 가운데 거을음과 공기가 배출되도록 구멍을 내었으며 옆면은 사각이나 육각으로 나무 뼈대와 창문을 만든 다음 한지로 창과 창문을 붙였다. 그 속에 호롱불을 넣어서 외출할 때 사용했다.
촛불이나 등잔을 넣은 등을 등롱(燈籠), 혹은 초롱(예;靑紗燭籠, 청사초롱)이라 하듯이 호롱은 등(등롱, 燈籠)에 호롱불을 넣은 것이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호롱은 실외 등(등롱, 燈籠)을 의미하는 용어지만 실내 등이나 실외 등(등롱, 燈籠)을 구별하지 않고 사용한 것이라 생각된다.
나중에는 철제에 창을 유리로 가린 등도 있었다. 실내에서는 가린 등보다는 가리지 않은 호롱불이 더 밝았으므로 호롱불을 등잔대에 올려놓고 사용했다.

* 청사초롱(靑紗燭籠, 청사촉롱)
청사초롱(靑紗燭籠, 청사촉롱)은 쇠나 쪼갠 대나무로 틀을 만들고 푸른 비단천과 붉은 비단천으로 상, 하단을 두른 통 속에 촛불을 넣은 등롱(바람막이가 있는 등불)이다. 조선 후기에, 궁중에서는 왕세손이 사용하였고, 일반에서는 혼례식에 참석하러 가는 신랑의 길잡이 등롱으로 사용하였다.
촉(燭, 촛불 촉)이 초로 음이 변화되었다.
 
6. 남포등(램프, 호야)

 서양에서 호롱(壺籠)을 유리통(등피)으로 감싸서 호롱과 등을 합쳐 일체형으로 만든 것을 램프(lamp), 남포등(lamp, 호야 ; 등피-일본어)이라 한다.
램프(lamp)는 종류가 많지만 가정에서 사용하는 등유 남포등은 면으로 납작하게 짜서 만든 심지가 사용되었으며 톱니바퀴로 심지를 올리고 내릴 수 있도록 돌릴 수 있는 손잡이가 옆구리에 붙어 있었다.
이 같은 램프(lamp)는 18세기부터 사용되었으며 램프(lamp)라는 용어는 횃불(lampas)이라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다.
기름 램프(oil lamp)로는 아이메 아간드(프랑수아 피에르 아메데 아르간드, Francois-Pierre-Amédée Argand, 1750 ~ 1803, 스위스 제네바)가 1780년에 발명한 아간드 램프(Argand lamp)가 있었는데 그 전의 오일램프(oil lamp) 보다 뛰어난 성능을 발휘했으며 1850년 석유램프가 나오기 전까지 프랑스, 미국 등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7.  양초의 발달

 서양에서는 양초의 재료로 쇠기름(牛脂, beef tallow)을 사용했었는데 18세기에 들어 고래를 잡는 포경 산업이 발달하자 고래에서  채취한 경랍(鯨蠟, spermaceti)이 새로운 재료로 사용되었다. 경랍은 그을음이 적게 나고 냄새가 좋아서 양초 재료로 최고의 인기였다. 경랍은 향유고래의 머리 부분에 있는 기름을 냉각시킨 뒤 압착하여 만든 고체 물질이다. 이때에 미국이 고래 사냥에 제일 적극적이었으며 고래의 씨가 말라갈 정도였다.
 1823년에는 쇠기름이나 식물성 기름에서 스테아린(stearin)을 추출해 양초를 생산함으로써 양초가 더욱 단단해지고 불이 더 밝아졌으며 연기나 냄새도 줄어들게 되었다.
 1850년대에 석유에서 파라핀을 분별 증류하여 양초 재료로 사용하게 됨으로써 양초가 대중화되었으며 고래도 살아남게 되었다.

8. 전등의 출현

전등의 역사는 140년 정도 되었다.
 1866년 지멘스(Ernst Werner von Siemens, 에른스트 베르너 폰 지멘스, 1816년 ~ 1892, 독일, 발명가, 물리학자)가 처음으로 전자석 발전기(Dynamo)를 제작하였다. 그리고 1879년에 미국의 토머스 에디슨(Thomas Alva Edison, 1847 ~ 1931, 미국, 발명가)이  백열전구를 발명하고 이어서 1882년 직류발전기를 만들어 증기기관으로 돌리는 화력발전소를 설립하였으나 상업용으로 채택되지 못하였다. 테슬라가 교류 발전을 개발하여 에디슨의 직류 발전과 경쟁하였는데 1903년 모든 전력회사가 교류 발전을 채택하게 됨에 따라 교류를 이용한 전등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1887년 전기가 도입되어 경복궁에 전등이 설치되었으나 시골에는 1970년대가 되어서야 전기가 공급되었다.
 
9. 등불(등잔, 초, 호롱, 남포등)의 사용법

 호롱,  등잔, 초 등으로 불을 밝히는데 그 원리는 심지(솜을 꼰 것, 실 묶음)에 액체인 기름(초는 열에 녹아서 액체가 됨)이 모세관 현상으로 올라오면 먼저 연소로 발생한 열을 받아 기화된다. 기화된 기름이 주위의 산소와 혼합되어 먼저 연소로 발생한 열에 의해 연소(빠른 산화)가 일어나 빛을 내는 것이다.
인화성이 약한 동, 식물성 기름은 불이 피어 있어도 온도가 높은 심지 끝에만 불이 붙어 타지만 주위에는 온도가 낮고 휘발된 기름이 없어 기름이 노출되어도 불이 잘 붙지 않는다. 그래서 입구가 넓은 등잔(燈盞)을 사용해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인화성이 강한 석유(등유)는 열이 가해지면 주위에 기름이 휘발되어 있어 심지뿐만 아니라 노출된 기름에도 불이 붙을 수 있으므로 심지만 일부 노출시키고 기름은 열에 노출되지 않도록 만든 호롱이나 남포등(lamp)에 사용하여야 하는 것이다. 옛날에는 부싯돌(hard rock, 석영 재질의 돌, 쑥과 수리취 잎을 말려서 비빈 것을 차돌에 붙여서 잡고 쇠 조각으로 차돌 모서리를 빠르게 밀어내듯이 치면 불꽃이 튀어 쑥에 불이 붙음)이나 화로나 부엌 아궁이에 재로 묻어둔 불씨로 불을 켰으며 성냥(石硫黃, 석류황, match)이 들어온 후에는 성냥불로 붙였다. 심지가 타서 줄어들어 불이 밝지 못하면 심지를 올려서 사용한다. 호롱은 불이 켜져 있을 때는 바늘 끝으로 심지를 돋우고 불이 꺼졌을 때는 뚜껑을 열어 밑에서 심지를 밀어 올린다. 불을 끌 때는 입으로 불어서 끈다.
남포등(램프, 호야)은 톱니가 심지에 부착되어 있어 톱니 축 손잡이를 돌리면 심지의 높낮이가 조절된다. 남포등(램프, 호야)의 불을 켤 때는 유리통을 손으로 붙잡아 올리고 불을 켜고 끌 때는 심지 조절 손잡이를 돌려 심지를 내려서 끈다.

* 등불과 관련된 속담

A. 등잔 밑이 어둡다(燈下不明, 등하불명, The foot of the candle is dark. 양초 밑이 어둡다.)
등잔불이나 촛불은 등잔대, 촛대 등에 의해 바닥에 세워져 있음으로 밑이 가려져 어둡다. 전등불은 천장에 매달려 있음으로 위쪽이 가려져 어둡다.

B. 바람 앞의 등불(風前燈火, 풍전등화)

C. 장님 등불 쳐다보듯(宵鏡觀燈, 소경관등)

서로 아무 관계없이 지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아무리보아도 그 진미(眞美)를 알아볼 능력이 없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등불(light, lamp), 등잔, 호롱불.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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