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

밴팅의 인슐린(insulin) 추출

진국 2017. 3. 14. 09:43

                                           김진국

 이자(췌장, 膵臟, pancreas)는 소화 분비기관으로 배 속의 간보다는 밑에 그리고 창자보다는 위에 있다.
 이자(췌장)는 소화효소인 아밀레이스, 트립신, 라이페이스,  그리고 위산을 중화시키는 탄산수소나트륨을 생성하여 십이지장으로 내 보낸다. 이들을 이자액(췌장액)이라 하며 소장에서 소화를 돕는다.
 또 이자(췌장)에서는 호르몬인 인슐린과 글루카곤을 생성하며 이들 호르몬은 혈관으로 분비되어 이동되는데 간과 온몸에서 혈당량 조절에 관여한다.
인슐린은 이자(췌장)의 랑게르한스섬(Langerhans’island)의 β 세포에서 생성되어 혈관으로 분비되어 온몸으로 이동하게 된다. 인슐린은 간에서 포도당을 글리코젠으로 전환시켜 저장하게 하여 혈액의 혈당량을 낮춘다. 또 인슐린은 세포막의 포도당 투과성을 높이는 작용을 한다. 이 작용으로 세포는 포도당을 흡수하여 에너지원으로 쓸 수 있고 혈관 속의 혈당량을 낮출 수 있게 된다. 혈당량을 높이는 호르몬은 글루카곤 외에도 아드레날린, 당질 코르티코이드, 티록신 등이 있지만 혈당을 낮추는 호르몬은 인슐린밖에 없다.
 호르몬(신경은 전기적으로 신호를 전달, 호르몬은 물질로 신호를 전달)인 인슐린을 연구하기에 어려웠던 점은 극소량으로 작용하고 혈액에도 극소량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기술이 부족한 옛날에는 탐지할 수도 없었고 추출할 수도 없었다.
 당뇨(糖尿)란 혈당량이 너무 높아지면 신장(콩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여 포도당을 오줌으로 버리는 현상이다.
인슐린이 생성되지 않거나 인슐린이 분비되어도 작용하지 못하면 혈액 속의 포도당을 쓸 수 없어 혈액의 포도당 농도가 높아진다. 또 글루카곤, 아드레날린,  당질 코르티코이드, 티록신 등이 과다 분비되어도 할당량이 높아진다. 혈당량이 너무 높아지면 포도당을 오줌으로 버리게 되는데 오줌으로 포도당을 버릴 정도면 혈당량이 매우 높다는 것이므로 이런 상태가 지속되어 오랫동안 계속 혈당량이 높은 상태로 유지되면 모세혈관이 막히는 등의 부작용으로 신체 각 기관의 손상과 기능 부전을 초래한다. 특히 눈의 망막, 신장, 신경에 나타나는 미세혈관 합병증과 동맥경화, 심혈관 질환, 뇌혈관질환과 같은 거대 혈관 합병증이 서서히 생긴다. 이를 당뇨병(糖尿病, Diabetes melitus)이라 한다.
 당뇨병(Diabetes melitus)에 대한 연구는 독일인 의사 파울 랑게르 한스(Paul Langerhans, 1847 ~ 1888, 병리학자)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1869년 랑게르 한스는 당뇨병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이자(췌장)에서 점으로 보이는 여러 개의 섬(island) 모양의 세포를 발견하였다. 현재에는 이 섬(island) 세포를 발견자의 이름을 따서 '랑게르 한스 섬(Langerhans’ island)'이라 부른다. 발견 당시 랑게르 한스는 이 섬(island) 세포가 어떤 작용을 하는지는 알지 못했다.
1889년 슈트라스부르크 대학교의 요제프 폰 메링(Joseph von Mering, 1849 ~ 1908)과 민코프스키(Oskar Minkowski, 1958 ~ 1931)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였다. 개에서 이자(췌장)를 제거하자 갑자기 오줌의 양이 많아지고 그 오줌에 파리 떼가 들끓었다.
그래서 두 과학자가 이 개의 오줌을 조사한 결과 당분이 높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 결과로 그들은 이자(췌장) 내 세포들이 혈당을 조절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오줌으로 당분이 빠져나가는 증상을 '이자(췌장) 당뇨'라고 명명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당시 세계의 많은 의사들에게 흥미로운 실험 결과로 큰 관심을 불러 모았다.
 1901년 오피(Eugene Lindsay Opie, 1873 ~ 1971, 미국, 의사, 병리학자, 결핵연구)는 진성 당뇨병은 랑게르한스섬과 관련이 있으며 이자관을 묶으면 소화에는 문제가 발생하지만 혈당량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을 밝혔다.
1906년 조지 루트비히 주엘저(George Ludwig Zülzer, 1870 ~ 1949, 유대계 독일, 의사)는 이자(췌장) 추출물로 개의 당뇨병을 치료하는데 일부 성공을 거두었다.
1909년에 메이어(Jean De Meyer, 1878 ~ 1934, 생리학자, 벨기에)는 혈당을 조절하는 물질이 이자의 랑게르한스섬에서 분비될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혈당을 조절하는 가상의 물질의 이름을 인슐린(insuline, insula, 섬)이라 하였다.
1916년 니콜라에 파예스쿠(Nicolae Constantin Paulescu, 1869 ~ 1931,  루마니아, 생리학자)는 소금물에 소의 이자 물질을 추출(pancreine)하여 당뇨병에 걸린 개를 치료하였다.
1916년 샤르피 샤퍼(Edward Albert Sharpey-Schafer, 1850 ~ 1935, 영국, 생리학자)도 이자(췌장)에서 생성되는 물질이 없으면 당뇨병이 발생한다는 이론을 세우고 그 물질을 인슐린이라고 명명하였다.
그러나 당뇨병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미량의 물질을 추출할 방법을 찾지 못하여 더 이상 연구를 진행할 수 없었다.
 캐나다 정형외과 의사인 프레더릭 밴팅(Frederick Grant Banting, 1891 ~ 1941)은 1916년에 토론토 대학교(University of Toronto)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917년부터 1919년까지 제1차 세계대전에 군의관으로 참전, 전공을 세워 십자 훈장을 받았다.  군 제대 후 개인병원을 개업했으나 손님이 없어 벌이는 시원치 않고 시간은 많았다. 그래서 1920년부터 웨스턴 온타리오 대학교(University of Western Ontario, UWO)에서 강의를 시작하였다. 프레더릭 밴팅(Frederick Grant Banting, 1891 ~ 1941)은 절친한 친구가 당뇨병으로 숨지자 이를 계기로 당뇨병 연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던 중 1920년 10월 30일, 프레더릭 밴팅(Frederick Grant Banting, 1891 ~ 1941)은 이자를 완전히 막아서 선세포(분비세포)를 위축시키면 당뇨병이 발생한다는 논문을 발견했다.
그는 이자관을 묶은 후 이자에서 소화효소와 혼합되지 않은 당뇨병 조절 물질을 얻어야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밴팅은 1921년부터 토론토 대학교(University of Toronto)에서 약리학을 강의하였다. 강의하는 기간에 이자에서 당뇨병을 조절하는 물질을 추출하기 위한 연구를 하기로 결심하고 연구에 적당한 실험실을 토론토 대학에서 빌리기로 계획했다.
그는 토론토 대학 생리학 교수이며 당뇨병의 권위자인 매클라우드(John James Richard Macleod, 1876 ~ 1935) 박사에게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매클라우드 박사는 연구 방법에도 익숙하지 않고, 아이디어 외에는 생리학 지식이 부족한 프레더릭 밴팅의 제안을 거절하였으나 거듭되는 요청에 자신이 휴가를 가는 8주 동안 실험실과 실험 장비를 사용해도 좋다는 허락을 하였다.
 그리고 실험 재료로 개 10마리를 지원해 주었고 자기의 대학원 학생 2명을 조수로 추천해 주었다. 프레더릭 밴팅은 조수로 1명만 필요하였으므로 대학원생 두 명은 동전 던지기로 전, 후반기로 나누어서 조수로 일을 하기로 하고 동전을 던진 결과 전반기를 미국에서 유학 온 찰스 베스트(Charles Herbert Best, 1899 ~ 1978)가 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이 동전 던지기가 결과적으로는 베스트에게는 큰 행운이 된다. 프레더릭 밴팅과 그의 조수 베스트는 개를 대상으로 실험하였는데 92번째 개에서 성공하였다.
 이자(췌장)는 소화를 돕는 이자액(췌장액)과 혈당량을 조절하는 호르몬을 같이 생성하는 기관이다.
실험 과정을 보면 먼저 개의 이자(췌장)를 제거하였더니 개는 혈당량이 조절되지 않아 고혈당이 되었다.
그래서 개의 이자(췌장)에서 추출한 물질에 혈당량을 낮추는 물질이 있다면 개의 이자(췌장)에서 추출한 물질을 이자(췌장)가 제거된 다른 개에게 주사하면 혈당량이 낮아질 것이라고 가정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하였으나 혈당량이 낮아지지 않았다. 이자(췌장)에서 추출한 물질의 농도가 낮아서 주입한 개의 혈당량이 낮아지지 않았다고 생각하여 이자 추출물질의 농도를 높이는 방법을 연구하게 되었다.
개의 이자(췌장)에서 십이지장으로 연결되는 이자관(췌관)을 묶어 차단하고 이자(췌장)에서 혈액으로 분비되는 혈관은 그대로 연결된 상태로 놓아두었다. 이자관(췌관)을 차단한 이유는 이자(췌장)에서 생성된 이자액(췌장액)이 배출되지 못하면 소화액을 합성하는 췌장 부분이 퇴화되어 소화액이 합성되지 않으므로 찾고자 하는 물질의 농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이자(췌장)에서 추출한 물질을 이자(췌장)가 제거된 다른 개에게 주사하여 개의 혈당량이 낮아진다면 추출물에 혈당량을 낮추는 물질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행착오와 끈질긴 노력으로 실험을 계속한 결과 92번째 개에서 성공하였다.
개의 이자(췌장)에서 십이지장으로 연결되는 이자관(췌관)을 묶어 차단하고 이자(췌장)에서 혈액으로 분비되는 혈관은 그대로 연결된 상태로 놓아두었더니 소화액을 생성하는 세포들은 죽었으나 랑게르한스섬은 그대로 있었다.  
이자(췌장)의 랑게르한스섬을 절취해서 추출한 물질을 췌장을 제거한 고혈당의 개에게 주사한 결과 혈당이 낮아지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프레더릭 밴팅과 베스트는 이 물질명을 이자섬(pancreatic islet)의 섬(islet)에서 따와 아일레틴(isletin, ailetin)이라 하였다.
 실험은 매클라우드 박사의 휴가 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성공했으며 휴가에서 돌아온 매클라우드 박사는 처음에 실험 결과를 믿지 않다가 실험 결과를 확인하고 물질명을 인슐린(메이어가 명명한 insuline에서 insulin으로 수정)이라고 명명하였는데 섬(island)의 라틴어인 인슐라에서 유래된 것이다.
계속되는 실험에 많은 양의 인슐린이 필요했으므로 개 대신 인슐린을 많이 분비하는 소를 이용하였다. 이때 소의 인슐린이 개의 인슐린과 같은 작용을 한다는 것을 확인함으로써 호르몬은 종 특성이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리고 1921년 말에 사람에게 임상 실험을 하기 위해서는 정제된 인슐린이 필요했지만 이들은 생화학자가 아니었으므로 정제할 능력이 부족했다.
그래서 매클라우드(John James Richard Macleod, 1876 ~ 1935) 박사는 그와 함께 일하던 생화학자 제임스 콜립(James Bertram Collip, 1892 ~ 1965, 생화학자, 앨버타 대학교 재직, 부갑상선호르몬 Parathyroid Hormone PTH 발견)을 실험에 합류시켜 사람에게 사용 가능한 인슐린을 정제하였다.
 1922년 1월 이 두 과학자는 실제 당뇨병을 앓고 있는 14세의 레너드 톰슨(Leonard Thompson)를 대상으로 소의 이자(췌장)에서 추출한 물질을 투여한 결과 당뇨병으로 인한 고통스러운 증상이 급격히 호전되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이 사실은 당뇨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런데 매클라우드(John James Richard Macleod, 1876 ~ 1935) 박사의 사주(使嗾)에 의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제임스 콜립은 정제된 인슐린에 대한 특허 출원을 독자로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밴팅에게 그가 정제한 인슐린을 이용하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매클라우드 교수가 인슐린 추출 성과를 뺏어가려 한다고 생각하고 있던 밴팅과 갈등을 빚었으며 인슐린 정제에도 어려움이 있어 연구팀에서 떠났다.
그 후 매클라우드(Macleod), 밴팅(Banting), 베스트(Best) 및 콜립(Collip)은 인슐린 특허를 공동으로 출원하였다.
밴팅은 1922년 토론토 대학교(University of Toronto)에서 의학박사(醫學博士, Doctor of Medicine, M.D.) 학위를 받았다.
 밴팅은 인슐린을 추출한 공로로 1년 뒤인 1923년에 실험 장소를 제공한 매클라우드 교수와 함께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으로 수상하였다.
  그런데 프레더릭 밴팅은 자신과 베스트가 노벨상을 수상해야 된다고 생각했으므로 매클라우드가 수상한 것에 불만이었다. 그래서 프레더릭 밴팅과 베스트는 노벨상 수상 직 후 매클라우드 교수가 노벨상을 수상한 것에 대해 정식으로 이의를 제기하였다. 프레더릭 밴팅은 언론을 통하여 매클라우드 교수는 실제로 실험실만 제공하였을 뿐이고 실험이 한창일 때에는 고향인 스코틀랜드에서 장기 휴가를 보내고 있었다고 강하게 불만을 토로하였다.
 그러나 노벨상 위원회는 매클라우드 교수의 연구 지도를 인정하였고 노벨상 공동 수상은 번복되지 않았다. 그러자 화가 난 프레더릭 밴팅은 그의 조수인 베스트에게 노벨상금의 절반을 나누어주었고 더 나아가 인슐린과 관련된 특허 권리를 토론토 대학교에 1달러에 제공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매클라우드 박사도 콜립에게 노벨상금의 반을 나누어 주었다.
  캐나다 정부는 노벨상 수상 기념으로 밴팅 연구소를 설립하였고 밴팅은 연구소 소장이 되었으며 후에 베스트 연구소도 설립되었다. 토론토 대학교는 인슐린 제조권을 제약회사인 '일라이 릴리 앤드 컴퍼니(Eli Lilly and Company, 미국)'라  회사에 넘겨주고 그 대신 '인슐린 위원회'를 만들어 인슐린의 생산을 표준화하고 관리, 감독하는 역할을 하였다. '일라이 릴리 앤드 컴퍼니(Eli Lilly and Company, 미국)'는 1923년부터 소에서 인슐린을 추출하기 시작하여 오늘날 세계적인 바이오 제약회사로 발전하였다.
호르몬은 거부반응이 없으므로 동물 인슐린을 사람에게 사용해도 부작용이 없다.  
그런데 그 시절에는 인슐린 생산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일반 사람들이 사용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프레더릭 밴팅(Frederick Grant Banting, 1891 ~ 1941)은 1941년 제2차 세계 대전에 지원하여 항공 의학을 연구하였으나 비행기 사고로 죽었다.
 1955년 프레더릭 생어(Frederick Sanger, 1918 ~ 2013)는 51개 아미노산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폴리펩타이드인 인슐린 분자의 정확한 형태를 규명함으로써 인슐린을 합성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생어는 인슐린 분자 규명으로 노벨 화학상, DNA 염기서열 조사 방법을 개발하여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였음).
인슐린의 세부 구조는 21개의 아미노산과 1개의 이황화결합으로 이루어진 A 사슬과 30개의 아미노산으로 이루어진 B 사슬이 두 개의 이황화결합으로 연결된 형태로 분자량은 약 5800이다.
 1963년에는 헬무트 잔(Helmut Zahn, 1916 ~ 2004, 독일 화하자), 파나요티스 카츠야니스(Panayotis G. Katsoyannis, 1924 ~ 2019, 미국 생화하자)에 의해 인슐린을 화학적으로 합성할 수 있게 되었고, 1969년 도로시 호지킨(Dorothy Hodkins, 1910 ~ 1994)이 X선 회절 사진으로 인슐린 3차 구조를 밝혔으며 1978년 허버트 보이어(Herbert Boyer, 1936 ~ , 미국의 생명공학자)와 스탠리 코헨(Stanley Cohen, 1935 ~ , 미국 유전학자)은 유전자 재조합으로 인슐린을 합성하였고 1980년 유전자 재조합 세균을 이용하여 값이 헐하고 사람에서 정상적으로 작용하는 인슐린(insulin, Humulin)을 개발하였다. 동물에서 인슐린을 추출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인슐린 유전자를 세균(細菌, bacteria)의 유전자에 재조합시키고 유전자가 재조합된 세균을 증식한 다음 세균이 생성한 인슐린을 추출함으로써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고 값이 내려가게 된 것이다.

밴팅의 인슐린.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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