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글

봇물 싸움

진국 2012. 5. 23. 17:14

봇물 싸움
                                                     
                                                                    김진국

 찌는 날씨가 계속되는 7월은 농촌에서는 일손이 바쁜 계절이다.
 나는 어린 시절을 고향에서 조부모님 밑에서 보냈다. 그때의 일들은 지금도 모두 생생하게 기억한다. 7월이 되면 할아버지를 떠올리며 생각나는 이야기를 적어보려 한다.
우리 동네 앞으로 큰 내가 서쪽에서 동쪽에 걸쳐있고 냇물이 굽이굽이 흐른다.  
이 냇물을 따라 옆으로 군데군데 들판이 펼쳐있고 들판 저 안쪽의 산 아래에는 여기저기에 동네가 흩어져 있다.
대가천의 어떤 곳에는 물이 깊어 돌아나가는 소(沼)가 되기도 하고 어떤 곳은 여울져 물살이 반짝이며 빠르게 흘러 내려가고 있었다.
 여름이 되면 동네 아이들은 소들을 뒷산에 올려놓고 냇가로 내려와 깊은 곳에서 멱 감고 고기도 잡곤 했다. 냇가에는 하얀 모래가 길게 쌓여 반짝이는 곳도 있고 주먹 크기만 한 돌들이 쌓여 언덕을 이룬 곳도 있었다. 볕에 달구어진 모래나 돌들을 밟으면 따끔따끔하여 발을 디디기도 어렵지만 싫지는 않았다.
 옛날부터 내를 끼고 있는 동네에서는 이 냇물을 논으로 끌어들여 농사를 지었으므로 물 걱정 없이 농사를 잘 지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때에는 산골 처녀가 내를 끼고 있는 동네로 시집을 가면 쌀밥을 먹을 수 있다고 내를 끼고 있는 동네로 시집오기를 선호했다는 말이 있었다.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냇물을 논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냇물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동네 위쪽을 흐르는 내를 막는데 이를 보(洑, 논밭에 물을 대기 위하여 
자그마하게 둑을 쌓고 흘러가는 물을 잡아 두는 곳)라 했다. 내를 비스듬히 가로질러 보를 설치하여 물을 동네 쪽으로 흐르게 하고 이어지는 봇도랑을 만들어 동네 들판으로 물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현재에도 옛날 보가 있던 자리에 보가 있는데 콘크리트로 만들어져 튼튼하고 물도 세지 않지만 옛날에는 큰 돌로 대충 쌓고 흙으로 틈새를 매웠으므로 흘러내려오는 물의 반 이상이 밑으로 새어 나갔다. 그래도 냇물이 많았으므로 농사짓기에 충분한 물이 공급되었다. 가끔 물이 부족하게 되면 동네 사람이 만든 보계 모임의 계원이 모여 보나 봇도랑을 보수하곤 하였다.
 우리 동네에서 내 건너편에 있는 윗동네에는 외갓집이 있었다. 두 집 모두 벼농사를 지어 여러 아들과 손자를 도시에 유학 보내고 있었다.
 어느 여름엔가 가뭄이 심하게 들었다.
 냇물을 이용하지 못하는 봉천(천수답)에는 물을 퍼 올려 가뭄이 든 농작물에 물을 댄지도 오래되었고 퍼 올릴 물도 없어졌다.
냇물도 줄어들어 보와 농수로를 보수하기 위해 동네 분들이 보 막기에 동원된지도 여러 날이 되었다.
 이쯤 매일 아침이면 보소임이 “보 막으로 나 오이소.” 하고 윗동네 아래 동네로 다니시면서 외쳤다. 보 막는 날이면 한 집에 장정 한 명씩 필히 참석해야 하며 참석하지 않으면 골을 메었다. 우리 집은 할아버지가 연로하시고 아버지는 도시에 나가 계셨으므로 머슴이 참여했다.
가뭄이 점점 심해지자 보를 막고 농수로를 보수해도 동네 논에 공급되는 물의 양은 점점 부족해져 갔다. 보에도 대부분 물이 말라 모래 바닥이 드러나고 보의 바로 위에만 물이 조금 고여 있는 상태로 되었기 때문이다. 윗동네 보에서는 물이 전혀 내려오지 않고 내의 위쪽에서 모래 바닥으로 스며든 물이 하류로 내려옴에 따라 다시 냇바닥으로 나와 냇물을 이룬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온 동네 남자들은 보 위쪽 냇바닥을 파고 도량을 내면서 올라가는 굴세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말라빠진 냇바닥을 굴세 작업으로 도랑을 파고 올라가면 웅덩이에 갇혀있던 물이나 모래 속에 스며들어 있던 물이 쉽게 내려올 수 있었다.
논에서 일해야 할 사람들이 모두 굴세 작업에 매일 참여하게 되고 새끼 참이니 점심이니 모두 보로 날라졌다.
굴세 작업이 계속 진행되어 내를 따라 3 ~ 4백 미터나 올라가니 어느덧 외갓집 동네에서 막아 놓은 보  바로 아래에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외갓집 동네 보 위쪽에서 굴세 작업을 하던 외갓집 동네 장정들이 모두 내려와 우리 동네 장정이 굴세 작업하는 것을 못하게 막았다. 보에 너무 가까이 굴세 작업을 하면 봇물이 아래로 스며들어 빨리 빠져나간다는 이유에서였다.
우리 동네 장정들은 물러나려고 했다. 그런데 감독하려 오셨던 할아버지는 물러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셨다. 할아버지의 독려에 장정들은 굴세 작업을 계속했고 그래서 크게 충돌이 벌어졌다. 장정들은 윗동네 장정들과 싸움을 하면서 굴세 작업은 계속해나갔다. 우리 동네 장정 수가 많았기 때문이다. 장정들은 싸움에 이겼다는 승리감을 만끽하면서 열심히 일했다.
 농사가 천직인 할아버지께서는 가뭄 때 한 방울의 물은 곧 쌀이요, 쌀이 곧 생명이었다.
 저녁이 되어 장정들이 동네로 돌아오자 싸움 이야기는 온 동네에 퍼졌고 싸움의 중심에는 할아버지가 계셨다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보통 때 사람들 앞에 잘 나서지 않으셨으므로 이 같은 할아버지의 행동은 사람들에게 의외로 받아들여졌다. 그것도 저쪽 편에 외할아버지가 계시는 곳에서다. 사람들은 경탄했다.
 그날 밤에 비가 내려 더 이상은 보를 막으러 가지 않아도 되었다.
 모두가 농사에 바빠 그 일을 잊어버리고 계절은 지나 풍성한 가을 거지를 하였다.
 그리고 어느 겨울날이었다.
 사랑방에 외할아버지께서 오셨다고 인사를 드리라고 하셨다. 사랑방에 들어가니 외할아버지와 외갓집 동네 여러 어르신들이 방이 좁아서 못 앉을 정도로 가득히 앉아계셨다. 인사를 드리고 나와 왜 이리 손님이 많이 오셨는지 여쭈어보니 외갓집 동네 어르신들이 지난여름 봇물 싸움에 대한 사과를 받으러 오셨다는 것이다. 사랑방으로 술상과 점심이 날라지고 시끌벅적한 이야기 소리와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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