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식물

감자

진국 2019. 7. 24. 11:14

1. 감자

감자는 종자식물군 속씨식물문 쌍떡잎식물강 가지목(쌍떡잎식물 통화 나물목) 가지과 가지속에 속하는 초본이며 학명은 Solanum tuberosum L.이다. 감자 재배종의 게놈은 4 배체(4X)이며 염색체 수는 2n=4X=48이다. 영어 포테이토(potato, 감자)의 어원은 고대 페루에서 감자를 파파(papa)라고 불렀던 데서 기원한다. 감자가 남미에서 유럽으로 전해지면서 파파(papa)가 파타타(patata)로 바뀌게 되었는데 이것은 유럽인들이 멕시코,  카리브해 지역(Caribbean)에서 바타타(batata) 혹은 타이노(Taino)라고 불리던 고구마를 먼저 가져와 바타타(batata)라고 부르고 있었는데 새로 들여온 감자가 고구마와 비슷했기 때문에 감자를 파타타(patata)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이 파타타가 지금의 포테이토(potato, 감자)로 변화되었다.
남미 페루, 칠레 등 안데스 산맥 지방이 원산지이며 7,000여 년 전부터 남미에서 재배되어 주식으로 이용되었다.
땅 위의 줄기는 높이가 60 ∼ 100cm이고 줄기의 단면은 둥글지만 각져 있으며 특별한 냄새가 난다. 땅속에 있는 줄기의 눈에서 가는 줄기가 나오고 그 끝에 양분이 저장되어 비대해진 덩이줄기(괴경, 塊莖, tuber)가 되는데 이 덩이줄기가 우리가 먹는 감자이다. 먹는 감자는 뿌리가 아니고 덩이줄기(괴경, 塊莖, tuber)인 것이다.
덩이줄기인 감자에는 오목하게 팬 곳에 눈이 있고, 따듯한 곳에 놓아두면 그 눈에서 작고 어린싹이 돋아난다.
줄기에 붙어 있는 잎은 대개 3 ∼ 4쌍의 작은 잎으로 된 겹잎이고 작은 잎 사이에는 다시 작은 잎이 붙어있다.
6월경에 줄기의 잎겨드랑이에서 긴 꽃대가 나와 취산 꽃차례를 이룬다. 꽃은 지름이 2 ∼ 3cm이고 5갈래로 얕게 갈라진 별 모양의 화관을 이루며 색깔은 엷은 자주색 또는 흰색이다.
열매는 토마토 모양과 비슷하지만 작고 씨앗은 영글지 않는다.
그리고 감자줄기에 무성생식으로 생겨난 주아(珠芽, bulbil)라는 씨앗이 맺히기도 하지만 주아(珠芽, bulbil)로 재배하면 재배기간이 너무 길기 때문에 이용하지 않는다.
감자는 씨앗으로 재배되지 않고 영양번식(무성생식의 일종)의 하나인 삽목으로 번식하는데 덩이줄기인 감자를 나누어서 땅에 심으면 덩이줄기인 감자 눈에서 새싹과 뿌리가 나게 된다. 그래서 새로 생성된 감자는 심은 감자를 복제한 것이므로 유전자가 같다.
감자 덩이줄기의 싹이 돋는 눈 부분은 알칼로이드(alkaloids)의 일종인 솔라닌(solanine, C45H73O15N)이 들어 있다. 이것에 독성이 있으므로 싹이 난 감자는 주의해야 한다.
그리고 감자를 햇빛에 노출시키면 껍질에 솔라닌(solanine, C45H73O15N)이 많이 생성되므로 햇빛에 노출된 감자도 위험하다.
감자를 햇빛에 노출시키면 세포 속의 백색체가 엽록체로 변화되기 때문에 감자가 녹색이 된다.
감자의 녹색은 엽록소 때문이므로 독은 아니지만 녹색으로 변했다는 것은 그 부분이 햇빛에 많이 노출되었다는 것이므로 껍질에 솔라닌(solanine, C45H73O15N)이 많이 생성되었다고 볼 수 있으므로 껍질의 녹색 부분도 먹으면 위험하다.

2. 감자의 원산지 남미

감자의 원산지는 페루 남부와 볼리비아 북동부 지역이며 처음으로 경작된 것은 7천 년 전이라 한다.
남미지역에는 감자가 동그란 것, 길쭉한 것, 울퉁불퉁한 모양도 있고 색도 붉은색, 파란색, 보라색, 검은색 등 수백 종의 야생종이 있다.
감자는 어떤 환경에서나 잘 자라지만 건조하고 서늘한 고산지역에서 더 잘 자란다. 벼, 밀 등이 자라기 힘든 척박한 환경에서 오히려 더 잘 자라는 것이다. 단위 면적당 생산량도 매우 높다.
감자는 옛날에 저장하기 어려웠다. 특히 남미 고산지대에서는 밤낮의 일교차가 커 수분이 많은 감자를 저장하기에 어려웠지만 원주민들은 감자를 얼려서 건조하는 방법을 개발하여 오래 동안 보관하였으며 주식용도뿐만 아니라 화폐 대용으로 이용하였다.

3. 유럽으로 감자 전파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 1522년 스페인 탐험가 피사로가 안데스 산지의 감자를 유럽에 처음 전했다. 그러나 감자는 유럽에서 처음에는 식용으로 쓰이지 않았다.
그때 유럽에서는 감자를 먹으면 나병이나 천연두, 매독에 걸린다는 소문이 돌았다. 감자의 눈이 이들 병 증세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감자를 심은 땅은 황폐되어 농사를 못 짓게 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교회는 성경에 감자의 기록이 없고 감자의 보라색 색깔(연한 노란색, 흰색, 보라색, 주황색, 초록색 감자도 있다.)이 관능적이며, 감자를 심을 때 시체를 땅에 묻듯 묻어야 나는 작물이라는 이유로 악마의 작물이라고 했다.
감자를 상온에 둘 경우, 싹이 돋아나는데 이 싹에는 솔라닌(Solanine)이라는 독소가 있어서 먹으면 식중독에 걸린다. 그래서 자라난 싹을 제거하고 먹어야 하는데 이것을 몰랐던 주민들이 모르고 먹었다가 식중독에 걸렸던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감자는 처음 전래된 이후 오랫동안 독초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감자가 속하는 기지과 식물은 독성을 가진다. 감자뿐만 아니라 토마토, 고추 등에도 독이 있지만 독이 없는 부분을 먹고 있는 것이다.
감자 싹에 독이 있다는 사실을 탐험가들은 남미에서 가져올 때부터 알았으며 그래서 감자를 왕실과 귀족들에게 화초로 진상했다. 그 후 감자를 식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많은 시도를 했지만 맛이 없어서 감자(처음 감자는 개량된 현재 감자보다 작고 맛도 다름)는 그 뒤로 200년 이상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식용으로 사용하지 않았으며 돼지 사료 등으로 쓰였다.
단지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일랜드는 영국의 수탈로 식량이 부족하여 감자를 식용으로 이용하였던 것이다. 1588년(영국 해군의 스페인 무적함대 격파) 폭풍우에 난파한 스페인 군함에서 흘러나와 아일랜드 해안으로 밀려온 감자를 아일랜드에서는 재배작물로 이용하기 시작하였다. 아일랜드 사람들은 경작 면적이 적고 황폐한 땅에서도 기존의 밀에 비해 감자는 수확량이 많아 가족과 가축을 충분히 먹일 수 있고 상대적으로 적은 노동력으로 재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8세기 초 영국을 비롯한 유럽 각국에서 갑작스러운 흉년이 들기 시작하자 대체 작물로 감자를 선택했다. 오래전부터 아일랜드인들이 감자를 재배하여 식용하고 있으나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감자는 기후가 나쁘거나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고 단위면적당 생산량이 높은 구황작물이었다. 그래서 유럽의 왕들은 다른 작물이 흉작일 때 감자 재배를 장려하거나 강제했다. 또 농민에게 전시 등에 대비하여 대부분의 밀을 거둬가고 감자를 농민들의 부족한 식량을 보충하게 할 목적으로 강제한 것이다. 그러나 농민들은 감자를 악마의 식물로 인식하고 있었으므로 감자 재배를 싫어했다. 그래서 프랑스의 앙투안 오귀스탱 파르망티에(Antoine-Augustin Parmentier, 1737~1813, 농경학자, 나폴레옹 정권 당시 보건부 장관)는 루이 16세로부터 받은 황무지에 감자를 심어 놓고는 "이 귀한 농작물을 훔쳐가면 죽인다."라고 써붙여 놓고 낮에는 병사를 두어 지키다가, 밤에는 훔쳐가기 쉽게 밭을 지키지 않았다. 많은 백성들이 감자를 훔쳐 먹으면서, 감자는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맛이 다를 리가 없건만 훔쳐먹은 자들은 맛이 있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그래서 혁명 전후 프랑스에서 감자가 유행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 파르망티에는 빈민들에게 음식을 나눠 줄 때 특별히 감자로 만든 수프를 배급하기도 하고, 왕실 연회 때 감자로 만든 요리들을 대거 올려서 홍보하는 등의 방법도 사용했다. 그리고 앙투아네트는 감자꽃을 머리 장식으로 사용하여 널리 퍼뜨렸다. 이후 프랑스 감자 요리 이름으로 아히 파르망티에(Hachis Parmentier)가 사용되었다.
프러시아 왕국(독일)의 프리드리히 2세는 1774년 대흉작이 들자 감자를 구황작물로 심으라는 명령을 전국에 내렸다. 이에 독일 전역에서 엄청난 반발이 일었다. 맛이 없어서 개도 안 먹는 감자를 사람이 먹으라고 강제한다는 것이었다. 농민들은 전국에 보급된 씨감자를 불태우면서 강렬하게 저항했다.
그러자 프리드리히 2세는 프랑스의 성공사례를 본떠 왕실 경작지에 감자를 심고 왕이 먹는 작물이라고 표지를 세우고는 근위병들에게 지키게 하여 농민들이 왕이 먹는 값 비싼 감자를 먹고 싶어 하도록 유도하고 밤에는 방치하여 감자를 몰래 훔쳐갈 수 있도록 했다. 이런 노력 덕에 독일에서도 감자에 대한 인식이 크게 달라졌다.
그러나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는 감자를 심지 않으려 저항하는 농민과 강제로 심게 하려는 지주 간의 다툼이 잦았다. 세르비아 같은 곳에서는 감자를 심지 않겠다고 저항하는 농민들을 붙잡아 곤장을 치기까지 했다. 농민들 입장에서 감자를 심고 이것이 주식이 되면 더 많은 밀을 수탈당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강하게 저항했던 것이다.
그리고 감자 재배만 강요하고 감자에 이용에 대한 정보를 주지 않아 감자를 먹는 것이 아니라 감자잎을 따서 먹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19세기 중엽부터 유럽에서는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는데 이를 인구 혁명이라 한다. 산업혁명으로 19세기 중엽부터 새로운 형태의 산업사회로 진행될 때에 감자를 증산하여 식량으로 충분히 공급하였기 때문에 인구 혁명이 일어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인구 200만의 아일랜드에서는 식민통치를 하던 영국이 아일랜드의 농민들이 수확한 대부분의 밀을 수탈했지만 감자가 도입된 이후 영양분의 공급이 충분하여 19세기에는 반세기 만에 인구가 4배로 증가하여 800만이 되었다.
그런데 아일랜드에서는 1845년부터 퍼진 '감자 마름병(감자역병균, 부동편모조류인 난균, Phytophthora infestans (Mont.) de Bary, 1845년 아일랜드, 1846년 스코틀랜드에서 발생)'으로 감자가 흉작이 되었다. 다른 나라와는 달리 식량을 감자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아일랜드에서는 10여 년 사이에 400만 명 넘는 사람이 굶어 죽었다. 그럼에도 영국 정부의 곡물 수탈은 더욱 심하여 아일랜드의 경제는 완전히 붕괴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수많은 아일랜드 사람들은 미국과 중남미로 이민하였다.
이 시기에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감자 품종을 다양하게 심지 않고 같은 한 가지 품종을 심었다. 그래서 모든 감자가 동시에 같은 병에 걸려 흉작이 되고 나라 전체가 대기근으로 이어진 것이다. 감자잎 마름병은 곰팡이와 닮은 부등편모조류의 일종인 난균(卵菌, oomycetidae)이 전염되어 증식한 것으로 잎의 끝부분과 줄기 부분에 짙은 반점이 생기는 것이다. 또한 감자 덩이줄기(감자)의 색깔이 매우 짙어지며 2차 감염에 의해 썩는 냄새가 심해진다.
2003년 감자와 유사한 종인 솔라눔 불보카스타눔(Solanum bulbocastanum, 멕시코의 야생 감자)으로부터 감자 마름병 저항성 유전자 RB 등이 분리되었으며 교배 육종 프로그램에 의해 저항성 유전자를 작물용 감자의 유전체에 이식하는 데에 성공하였다(Junqi Song, James M Bradeen, S Kristine Naess, John A Raasch 등). 
미국의 원주민은 인디언 감자(아피오스, Apios, 콩과 덩굴식물, 학명 Apios americana, 2n=2x=22, 칼슘, 사포닌, 단백질 성분 풍부, 생것 100g당 175kcal, 일본에서 많이 재배됨)를 경작하였다. 현재 미국에서 재배하는 감자는 인디언 감자도 아니고 남미로부터 들어온 감자도 아니며 영국에서 다시 가져간 종자로 역 수입된 것이다. 1613년 영국 제국은 식민지였던 버뮤다로 감자를 보냈던 것이다.

4. 밀레 만종의 괴담

프랑스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Jean Francois Millet, 프랑스, 1814 ~ 1875)의 대표작인 '만종(L'Angélus)'에는 남성과 여성이 경건한 자세로 기도하고 있으며 그 아래 놓인 바구니는 본래 영아의 시신이 그려져 있었지만 주변 만류로 덧칠해서 감자를 그려 놓았다는 루머가 있다. 하지만 이것은 살바도르 달리( Salvador Dali, 에스파냐 초현실주의 화가, 1904 ~ 1988)가 그림을 감상하고 추측으로 이야기한 것이 괴담으로 퍼진 것이다. 사실 출품 당시에도 밀레의 만종은 제목과 다르게 지나치게 무거운 배경이 강조되어 있었고, 감자 또한 교회에서는 땅에서 나오는 시신의 상징물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이 그림은 이미 장례식을 암시한다는 평론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밀레 본인도 그림 '만종'의 창작 동기는 '꼬박꼬박 기도드리던 불쌍한 노동자들'이라고 생전에 밝힌 바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감자로 그린 것이지 영아의 시신에 덧칠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오래전에 확인되었다.

5. 우리나라의 감자 보급

우리나라 남부지방에는 18세기에 일본에서 들어온 고구마가 널리 보급되었으며 50~60년 뒤 19세기에는 중국에서 북부지방에 감자가 들어와 빠르게 전파되었으며 이어서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고구마는 추위에 약해서 북부지역에 별로 전파되지 못하였고 대신 감자는 극한지방 제외한 모든 지방에서 자라기 때문에 전국에 빠르게 전파된 것이다. 감자는 식량이 부족했던 우리나라에서 여름의 구황작물로 고구마는 겨울의 구황작물로 각광을 받았던 것이다.
우리가 부르는 감자라는 이름은 중국에서 사탕수수나 고구마를 일컫는 감저(甘藷)에서 온 것으로 추정된다. 처음에 고구마를 감저(甘藷)라 했지만 감자가 들어오자 감자와 고구마가 비슷하여 둘 모두 감저(甘藷)라고 했다. 그러다가 감자가 널리 많은 농가에서 재배됨에 따라 감저(甘藷)는 감자를 의미하게 되었고 고구마는 대마도에서 들어온 명칭인 고구마를 사용함에 따라 구별되었다. 그 증거로 아직도 제주도 방언에서는 감저(감자)가 고구마를 뜻하고 감자는 지슬이라 한다. 중국에서는 땅속의 감자가 ‘말에 달린 방울들이 모여 있는 것같이 생겼다’는 뜻에서 감자를 마령서(馬鈴薯)라고 불렀다.
감자는 온대의 고산지대(고랭지)에서 많이 재배되는데 낮에는 광합성이 잘 일어나고 밤에는 온도가 낮기 때문에 호흡률이 낮아 당분을 많이 축적할 수 있어, 춥고 건조한 곳에서 더 맛있는 감자가 생산된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감자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수미감자는 1961년 미국 위스콘신 대학에서 개량한 감자 종자이며 1978년에 수입, 보급되었다. 병충해에 강할 뿐만 아니라 적응력과 수확량이 좋아 전국적으로 재배된다.

6. 감자의 성분과 이용

감자의 성분은 덩이줄기에 수분 75%, 녹말 13 ∼ 20%, 단백질 1.5 ∼ 2.6%, 무기질 0.6 ∼ 1%, 환원당 0.03mg, 비타민 C 10 ~ 30mg이 들어 있다.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 중에는 밀가루보다 더 많은 필수 아미노산이 함유되어 있다. 지방은 거의 없다. 그리고 생감자 100g은 열량 80 cal에 해당한다.
이와 같이 감자는 녹말(20 ~ 25% 아밀로오스와 75 ~ 80% 아밀로펙틴의 혼합물)과 단백질, 비타민C 등이 풍부하고 계속 먹어도 부작용이 없으며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고 생산력도 무척 높아 식재료로 널리 이용되고 있으며 옛날에는 구황작물로도 많이 이용되었다.
감자는 전분(녹말, 20 ~ 25% 아밀로오스 amylose와 75 ~ 80% 아밀로펙틴 amylopectin의 혼합물) 성분의 함량에 따라 분질(粉質) 감자와 점질(粘質) 감자로 구분된다.
분질(粉質) 감자(starchy potato, mealy potato, floury potato)는 수분과 당분이 적고 전분(녹말, 20 ~ 22%) 성분이 많으며 녹말 중에서도 아밀로오스(amylose) 성분이 많아 요리를 했을 때 쉽게 부서지고 익히면 분이 많아 탑탑하다. 구이용으로 많이 이용되며 당분이 적어 튀김용으로도 적당하다.
점질(粘質) 감자(waxy potato)는 수분, 단백질, 당분이 많고 전분 성분이 상대적으로 적다. 수분이 많고 전분 성분(16 ~ 18%)이 낮으며 녹말 중에서도 아밀로스가 적어 요리를 했을 때 잘 부서지지 않고 촉촉하다.
감자는 껍질을 벗겨 놓아두면 아미노산인 티로신(tyrosine)이 산화효소인 티로시나아제(tyrosinase, 티로시네이스)에 의해 공기 중의 산소와 결합하여 산화되는 등 여러 반응을 거쳐 멜라닌(melanin) 색소를 형성하여 갈색으로 변한다. 물에 담가서 산소를 차단하거나 열을 가해 효소를 파괴하면 갈변을 막을 수 있다.
감자는 음식 재료나 감자칩 등 식용으로 이용되고 감자녹말은 알코올의 원료, 당면의 원료, 공업용 원료로 이용되는 외에도 가축의 좋은 사료가 된다.
감자를 먹기 위해서는 껍질을 깎아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어려움이 많았지만 현대에는 감자에 고온, 고압의 증기를 쬐어 껍질이 떨어지게 하는 방법이 개발되어 쉽게 해결되었다.

7. 감자의 단점

감자는 병충해에 약해서 한 해 농사를 완전히 망칠 수도 있다. 또 감자는 교배를 통해 유전자가 다양해지는 것이 아니고 감자(씨감자)의 눈을 떼어 심기 때문에(삽목, 무성 생식, 복제) 단일종으로 되어 있어서 치명적인 전염병이 돌면 모든 감자가 전멸하고 만다.
감자는 70%가 물이기 때문에 무게가 무거워 운송이 어렵고 또 쉽게 얼거나 썩게 되므로 저장이 어렵다.
감자를 쉽게 운송할 교통기관이 없는 지역에서 감자는 생산지에서 바로 소모해야 할 식품인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 때문에 주식 작물로 재배하기는 어렵고 부식이나 구황작물 정도의 기능을 할 수 있을 뿐이었다. 또 영양적으로는 쌀이나 고구마에 비해 칼로리나 탄수화물 함량은 현저히 낮은 편이나, 감자의 혈당지수(GI 90)가 밥과 비슷하고 고구마(GI 55)보다는 높아 혈당으로 빨리 전환되기 때문에 에너지로 소모되지 못한 당분이 지방으로 축적되기 쉬운 편이다.
요리에서 감자는 전분이 많기 때문에 맑은 국물을 내기 어렵다. 카레같이 점성이 필요하고 자극이 강한 요리를 할 때에는 이것이 장점이 되기도 하지만, 맑은 국에 넣고 끓이면 끓일수록 전분 때문에 국물이 텁텁해진다.
감자같이 지하에서 나오는 작물을 중심으로 발전한 농경문화를 근재농경문화(根栽農耕文化, taro, 토란, 참마, 빵나무, 바나나 등 뿌리와 지하경 등을 주식으로 하는 문화, 근재농경 根栽農耕 : 동남아시아가 기원지로, 바나나, 얌, 타로, 사탕수수 등 뿌리와 지하경을 이용한 영양번식작물의 재배)라고 하는데, 주로 미크로네시아, 멜라네시아, 폴리네시아 등의 태평양 지역에 발달했다. 이 문화 지역에서는 주 작물로 감자류의 일종인 타로, 참마, 빵나무, 바나나 등을 재배했는데 모두 감자처럼 쪄먹는 식물이었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런 작물은 열량 대비 부피가 너무 커서 대규모 수송과 저장이 어려워 이들을 한 곳에 모아 축적할 수 없으므로 나라의 부가 집중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들을 식량으로 하는 나라는 강력한 중앙집권 정치체계나 대국가의 형성이 어려웠다는 것이다.

감자.hwp


감자.hwp
0.03MB

'동식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구마(sweet potato)  (0) 2019.07.24
무화과  (0) 2011.12.01
민들레  (0) 2011.11.22
쇠뜨기(horsetail)  (0) 2011.11.18
포도(葡萄, grape)  (0) 2011.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