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

멘델과 유전법칙

진국 2011. 5. 31. 16:52

멘델과 유전법칙

김진국

1. 멘델의 생애

멘델(Gregor Johann Mendel, 그레고어 요한 멘델, 오스트리아, 1822~1884)은 오스트리아의 하인첸도르프(현재 체코의 힌치체) 지방에서 가난한 농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멘델의 아버지는 과수원 일을 했으며, 멘델도 어릴 때부터 식물을 가꾸는 데 취미를 가지고 아버지의 과수원 일을 도왔다. 1834년부터 1840년까지 중고등학교 과정을 다녔고, 1840 ~ 1843년 올뮈츠(지금의 체코의 올로모우츠)의 철학연구소에서 대학 진학을 위한 보충교육을 받았다. 멘델은 향학열이 높았으나 가난으로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교사가 되기 위해 교원 자격시험을 보았으나 자격증을 획득하지 못하였다.
1843년 21세 때에 주위의 권유로 브륀(현재는 체코령 브루노)의 수도원의 사제보가 되었으며, 선배 수사로부터 교배에 관한 초보 지식을 배워 수도원에서 수행되고 있던 식물 교배 연구를 계속했다. 1847년에는 수도사(신부)로 임명되었으며, 1849년에는 중등학교 보조교사로 그리스어와 수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공부를 계속하고 싶어 1850년 빈 대학교의 자연과학부에 입학시험을 치렀지만 불합격되고 정규교사 시험에도 불합격되었다.
멘델은 1851년, 29세 때부터 3년간 대수도원장의 추천을 받아 빈 대학교의 겨울학기 청강생이 되었으며(1851 ~ 1853), 자연과학, 수학분야의 강의를 듣고 폭넓은 지식을 얻었다. 여기서 진화론의 선구자의 한 사람인 프란츠 웅거(Franz Joseph Andreas Nicolaus Unger, 1800 ~ 1870, 식물학, Austria) 교수의 강의를 들었는데 이것이 멘델의 잡종 연구에 동기가 된 것이 아닌가라는 추측을 하고 있다. 그리고 크리스티안 도플러(Christian Johann Doppler, 1803 ~ 1853, 물리학, 오스트리아)에게 물리학과 수학을 배웠다.
그래서 멘델은 후에 물리학 논문에서 사용하는 수학적, 통계적 방법을 자기의 논문에 적용하였던 것이다.
1853년에는 빈의 동식물 학회에 가입하게 되고, 1854년 ‘완두콩의 해충에 관한 연구’를 학회에서 발표하였다.
멘델은 1854년부터 1868년까지는 브륀에 있는 기술고등학교에서 자연과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기술고등학교에서 과학에 깊은 관심을 가진 동료들과 1862년 브륀에서 자연과학학회를 창립했으며 멘델은 이 모임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았었다.
멘델은 수도원과 학교의 도서관에 있는 중요한 과학서적들을 많이 접했으며 특히 아버지의 과수원과 농장에서 일했던 경험들 때문에 농학, 원예학, 식물학에 관한 책을 많이 보았다. 멘델이 구입한 책 중에는 찰스 다윈의 연구 논문도 있다. 진화론은 유전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그래서 멘델과 다윈의 관계에 관심이 많다. 그런데 멘델과 다윈은 서로의 연구물을 본 적이 있지만 영향은 별로 주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멘델은 7년간(1856~1862) 연구하여 1865년에 ‘식물의 잡종에 관한 연구’ 발표했으나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1868년에는 수도원의 대수도원장((大修道院長, abbot)으로 선출되었으며 1872년 공포된 교회 과세법에 반대, 정부와 대립하여 전 재산을 몰수당하는 등 수도원 일에 매진하게 된다.

2. 식물 잡종 연구

멘델은 1856년부터 1863년까지 7년 동안 수도원의 작은 정원에서 완두를 기르면서 여러 가지 형질의 완두를 서로 교배하여 얻은 29,000여 개의 완두콩을 얻어 형질 조사를 했다.
키, 꽃의 색, 내부 작용, 완두콩의 모양 등을 형질이라 하고, 큰 키와 작은 키, 둥근 것과 주름진 것과 같이 조금의 차이가 있는 관계를 대립형질(對立形質, allelomorphic character)이라 한다.
멘델은 완두콩 중에서 키가 큰 것과 작은 것, 꽃이 피었을 때 색이 있는 것과 없는 것, 씨의 색과 모양, 줄기에 꽃이 피는 위치, 콩꼬투리의 모양 등 7가지 대립형질에 대해 실험하였다.
그는 완두의 대립형질이 완두의 자손에 계속 나타나는 것은 유전자(遺傳子, gene, 유전의 기본단위) 때문이라는 이론을 세웠다. 즉 멘델 이전에는 여러 가지 성질이 서로 관계하므로 하나의 형질은 여러 유전자가 혼합 작용하여 나타난다고 생각하였으나, 멘델은 몇 년간 완두를 교배 실험하여 나타나는 형질을 관찰한 결과 하나의 형질은 1쌍의 유전자에 의해 나타난다고 가정하고 실험한 것이다.
멘델은 실험 결과로 볼 때 유전자(유전 단위)가 형질을 발현하는 데는 간단한 통계 법칙을 따른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 법칙의 기본원리는 잡종의 세포 안에는 양친 중 어느 한쪽에서 온 유전자와 다른 한쪽에서 온 유전자가 들어 있다는 것이다. 즉 한 형질을 결정하는 유전자는 1쌍이며 이는 하나는 아버지로부터 다른 하나는 어머니로부터 받은 변이체(대립유전자)라는 것이다.
이 잡종 세포에 있는 1쌍의 유전자(대립유전자, 對立遺傳子, allele)는 생식세포를 생성할 때 각각 생식세포(밑씨, 화분, 정자, 난자)로 분리되고 수정을 통해서 1쌍의 유전자(대립유전자, allele)가 다시 만나 자손이 생성된다는 것을 멘델의 제1법칙 또는 분리의 법칙(law of segregation)이라고 한다.
또한 그는 대립형질들이 여러 쌍 있을 경우, 이러한 형질들은 모든 가능한 조합을 이루므로 독립적으로 자손들에게 전해진다고 했다. 즉 2개의 대립형질이 유전될 때 분리 법칙이나 우열의 법칙에 서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가 기른 완두콩의 여러 변종들에서, 그는 독립 유전의 법칙에 따라 7쌍의 대립형질들이 무작위로 재조합된다는 것을 관찰했으며, 이러한 원리를 통계적으로 검증하고, 실험을 통해 확인했다. 그래서 멘델은 모든 유전자는 각각 따로 독립하여(분리하여)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현재 멘델의 제2법칙, 즉 독립의 법칙(law of independence)은 서로 다른 연관 그룹(서로 다른 염색체)에 있는 유전자에만 적용된다.
또한 멘델은 대립유전자 간의 우열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내어 우열의 법칙(law of dominance)이라 하였다. 이것은 잡종일 때 대립유전자 중 하나만 작용하여 대립형질 가운데 1가지 형질만 나타낸다는 것이다. 나타나는 형질을 우성 형질, 나타나지 않는 형질을 열성 형질이라고 했으며, 관찰한 7쌍의 형질에 모두 우열관계가 나타났으므로 우열의 법칙으로 결론지었으나 현재는 모든 대립형질에 적용되지는 못한다는 것이 확인되었다(중간유전).
이와 같이 완두를 실험 재료로 연구한 실험 결과를 통계적으로 처리하여 정리한 이론과 설명을 2편의 논문으로 발표했다. 1865년에 ‘식물의 잡종에 관한 연구, Versuche über Pflanzenhybriden’라는 제목의 논문을 자연과학학회에 발표했으며 다음 해에 자세하게 기록하여 학회 회보에 발표했다. 이 논문은 유럽과 미국의 주요 도서관에 보내졌지만 어느 지역에서도 조명을 받지 못하였다. 멘델의 논문을 자연 과학회에 받아들인 대표적인 학자인 칼 빌헬름 폰 네겔리(Karl Wilhelm von Nägeli, 1817~1891, 뮌헨 대학교 교수, 스위스, 식물학자)조차도 멘델과 주고받은 편지 내용으로 미루어보아 멘델의 논문에 실린 수학적, 통계적 논리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이후 멘델은 한차례 더 논문을 발표하였지만 생물학계에 알려지는 인물이 되지 못하였다.

3. 멘델의 유전법칙 재발견

세상에 알려지지 못했던 멘델의 논문은 1900년 우연히 비슷한 연구(연구에 멘델의 논문을 참고한 사람도 있음)를 하고 있던 네덜란드의 휴고 드 브리스(Hugo Marie de Vries 1848 ~ 1935), 독일의 칼 에리히 코렌스(Carl Erich Correns, 1864 ~ 1933), 오스트리아의 에리히 폰 체르마크(Erich Tschermak von Seyse, 1871 ~ 1962) 등에 의해 재발견되었다.
멘델의 논문이 처음부터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 중의 하나는 논문이 수학적, 통계적으로 처리되었고 내용이 장황하여 일반 생물학자들이 이해하여 받아들이기에는 난해하였으며 논문에는 우리가 사용하는 유전, 유전자, 대립형질 등의 용어를 사용하지도 않았으므로 유전에 관한 논문 인지도 알 수 없었다. 멘델의 논문을 일반 생물학자들이 쉽게 이해하고 유전법칙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은 윌리엄 베이트슨(William Bateson, 영, 1861~1926)이 영어로 번역하고 쉽게 해석하여 유전법칙으로 확인한 후에야 가능하게 되었다. 베이트슨은 1906년 런던에서 열린 ‘제3차 국제 식물 잡종 연구 콘퍼런스’에 자신이 해석한 멘델의 유전법칙을 발표하였으며 그 이후 관련 학문이 유전학이란 이름을 얻게 되었다.
1909년 덴마크의 빌헬름 요한센(Wilhelm Johannsen, 1858~1927)은 멘델이 인자라고 불렀던 것을 유전자(gene)로 대체하였고 변이체는 대립유전자로 대체하였다.
이런 관계로 현재에 이르러 원 논문이 새로 해석됨에 따라 일반 과학자들이 베이트슨의 해석본에 의해 알고 있는 멘델이론이 원 논문과 다른 것도 있다고 밝혀지고 있다.
멘델의 유전법칙이라고 부르는 이 체계는 20세기 초에 검증, 확인되었다.
1902년 서턴(Walter Stanborough Sutton, 1877 ~ 1916, 미국, 유전학자)은 메뚜기 생식세포의 감수분열을 관찰하여 유전자가 염색체에 있다는 염색체설(chromosome theory)을 발표하였다. 이어서 1915년 토머스 모건(Thomas Hunt Morgan, 1866~1945, 미국, 유전학자)이 유전자설(Gene theory, 각 유전형질을 결정하는 한쌍의 대립유전자는 각각 상동 염색체의 동일한 위치에 있다는 설)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그의 제자 캘빈 브리지스(Calvin Blackman Bridges, 1889 ~ 1938, 미국, 1928, 거대 염색체의 유전자 지도 작성, 유전자 중복의 초파리 돌연변이체 발견)가 1916년 초파리에서 염색체 비분리(Nondisjunction)를 발견하고 이를 이용하여 염색체에 특정 유전자의 위치를 밝혀 유전자 설의 증거로 제시하였다.
멘델의 법칙은 이렇게 이어져 유전학이라는 생물학의 기본 원리 중의 하나가 되었으며 나중에 유전학뿐만 아니라 진화학, 발생학, 생리학, 생화학, 의학, 농학, 사회과학 등을 이해하는 데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4. 재료로 완두콩(pea)을 선택

멘델이 실험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연구 소재로 완두콩을 선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완두는 기르기 쉽고 빨리 자라며, 꽃잎이 닫힌 구도라 자가수분과 인공수분이 상대적으로 쉬우며, 7가지 형질 모두 대립형질이 뚜렷하고 우열관계가 확실하다. 또 실험으로 선택한 형질이 각각 서로 다른 염색체에 존재하여 독립의 법칙(모든 유전자는 서로 분리되어 있어 각각의 대립형질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법칙)을 찾을 수 있는 생물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멘델이 관찰 대상으로 삼은 7가지 형질 유전자 중 일부는 같은 염색체 위에 존재한다. 형질 7가지에 대해 실험하였는데 완두의 염색체는 7쌍(2n=14)뿐이다. 그러데 실험이 독립의 법칙이 성립할 수 있게 된 것은 일부 유전자 중에는 같은 염색체에 두 형질을 나타내는 유전자가 존재하지만 두 유전자 사이의 거리가 멀어서 거의 대부분 교차 현상이 일어나므로 마치 독립된 염색체 위에 존재하는 것처럼 결과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또 나중에 밝혀진 사실 중에 완두콩깍지의 모양을 결정하는 유전자는 두 쌍이 관여하는 다인자 유전이었다. 초파리(2n=8)로 독립의 법칙을 실험하면 일부 대립형질끼리는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이 발견되었다. 초파리처럼 대립형질끼리 서로 영향을 주는 것이 많은 생물을 실험 재료로 삼지 않고 완두콩을 실험재료로 선택했다는 것이 유전법칙이 탄생한 열쇠가 되었다.

5. 피셔(Ronald Aylmer Fisher)의 데이터 의혹 제기

1936년 피셔(Ronald Aylmer Fisher, 1890 ~ 1962, 통계학, 유전학, 영국)는 멘델의 노트에서 완두콩 실험 데이터를 이론상으로 나오는 숫자와 카이제곱 검정이란 통계 검정법으로 검사해보니 지나치게 숫자들이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을 보고 데이터에 의혹을 제기하였다. 멘델이 자신의 학설을 위해 숫자를 맞추었을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이 주장의 경우 카이제곱 검정이 이런 데이터를 검정할 때 적합하지 않다는 점과, 멘델의 실험 노트에서 추가 실험 데이터가 발견되면서 조작이 아니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카이제곱 검정(Chi-Square Test) : 칼 피어슨(Karl Pearson, 1857~1936, 통계학자, 우생학자, 영국)이 개발하였으며 카이제곱 분포(표준 정규 확률변수를 각각 제곱한 것을 합해서 얻어지는 분포)를 이용한 것으로 두 범주형 변수가 서로 관계가 있는지 독립인지를 판단하는 통계적 검정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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