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국
1. 라이소자임(lysozyme)의 발견
1922년에 영국 세균학자 알렉산더 플레밍(Alexander Fleming, 1881~ 1955)은 라이소자임을 발견하였다. 라이소자임은 세포의 리소좀(lysosome)에서 분비되는 단백질로 된 효소로서 세균의 세포벽을 분해하는 작용을 한다.
세균(bacteria)의 세포벽을 구성하는 펩티도글리칸(peptidoglycan)은 N-아세틸글루코사민(N-acetylglucosamine)과 N-아세틸무람산(N-acetylmuramic acid)이 β-1,4 글리코시드 결합(Glycoside linkage)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라이소자임은 β-1,4 글리코시드 결합을 가수분해함으로써 세포벽을 터틀려 세균을 죽인다.
라이소자임은 우리 몸에서 분비되는 눈물, 콧물, 침 등의 점액에 들어 있으며 우리 몸을 침입하는 세균에 대항하는 1차 방어 작용을 한다.
플레밍은 관찰하고 있던 황색 세균 배양접시에 감기에 걸려서 콧물을 떨어뜨렸다. 다음 날 그는 배양접시를 관찰하던 도중 황색 세균의 콜로니(군체)의 한쪽에 황색이 없고, 그 부분의 황색 세균은 반투명으로 변한 것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그 주위에는 분해 중인 황색 세균이 보였다. 플레밍은 자신이 떨어뜨렸던 콧물 속에는 황색 세균을 분해시키면서 인간에게는 해가 없는 물질이 들어있다고 생각하였다. 황색 세균은 마이크로코쿠스 리소데익티쿠스(Micrococcus lysodeikticus)라는 독성이 없는 세균이었다.
콧물에 있는 이 항균 효소를 라이소자임(lysozyme)이라고 이름 지었다. 라이소자임은 전염병, 인플루엔자 예방에 효과가 있고 그람 양성균과 그람 음성 균인 대장 균, 살모넬라 등의 세포벽을 분해하지만 독성이 강한 균에는 항균성이 약해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2. 페니실린(penicillin) 발견
항생제(생물이 생성한 물질의 항균제)인 페니실린(penicillin)은 1928년 영국 세균학자 알렉산더 플레밍(Alexander Fleming, 1881 ~ 1955)에 의해 발견되었다.
플레밍(Fleming)은 세인트 메리 병원에서 상처를 감염시키는 황색 포도상 구균(Staphylococcus aureus)에 관한 연구를 하기 위해 실험실에서 포도상 구균을 배양하고 있었다.
1928년 플레밍이 여름휴가 중 9월 1일에 교수로 임명되어 9월 3일 첫 출근한 실험실로 축하하러 온 동료인 스튜어트 크래독(Stuart Craddock), 프라이스(Daniel Merlin Pryce)와 함께 휴가 중 방치된 여러 배양접시들 중 하나의 배양접시에 나타난 특별한 현상을 관찰하게 되었다. 포도상 구균이 득실거리는 배양접시에 곰팡이가 오염되어 있고, 곰팡이 주위에는 둥그렇게 세균의 콜로니(colony, 群體)가 없었다(菌落, 군락).
여름휴가를 계속하다가 9월 말에 돌아온 플레밍은 여러 번 재실험을 하여 같은 결과를 관찰하고 플레밍은 큰 충격을 받았다. 라이소자임 발견할 당시 현상과 같았기 때문이다.
이 배양접시를 보고 플레밍은 푸른 곰팡이가 포도상 구균을 죽이는 물질을 생성하여 분비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이 내용은 플레밍 자신이 늘 갈망하여 찾던 세균(박테리아)을 죽이는 물질을 발견한 것이었다.
플레밍 실험실의 세균 배양접시를 오염시킨 푸른 곰팡이는 라투슈가 곰팡이로 알레르기 백신을 연구하던 플레밍 연구실의 아래층 연구실에서 온 것이었다.
600여 종이나 되는 푸른 곰팡이 중에서 페니실린(penicillin)은 Penicillium notatum(현재는 penicillium chrysogenum으로 분류됨) 종에서만 생성된다. 그리고 세균(박테리아) 중에도 페니실린에 반응하는 종도 있고 반응하지 않은 종도 있다. 플레밍의 포도상 구균 배양접시에 Penicillium notatum이 오염되어 콜로니가 사라졌다는 것은 확률적으로 일어나기 쉽지 않은 큰 행운이었다.
플레밍은 프라이스와 처음에 같이 연구를 진행하였으나 1928년에 곧 프라이스는 다른 연구실로 가고 플레밍이 외로이 연구하던 중에 스튜어트 크래독(Stuart Craddock)이 참여했고 1929년 1월에는 프레드릭 리들리(Frederick Ridley) 등이 참여했다.
플레밍 팀은 Penicillium notatum을 배양하여 사람에게 주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불순물을 제거하고 멸균 능력을 지닌 페니실린을 분리해 내려는 연구를 여러 과학자와 계속 진행했다. 많은 양의 Penicillium notatum 을 수프 형태의 배양액에 배양하고 배양이 끝난 용액을 여과해 맑은 액을 얻었다. 이 액체를 산성 물질로 처리한 다음 수분을 없앤 뒤, 다시 알코올을 처리하여 미지의 물질을 얻었다.
이 물질은 포도상 구균, 스트렙토코쿠스, 디프테리아 바실러스 균에는 살균 효과가 있었지만 살모넬라티푸리움(장티푸스균)과 인플루엔자 바실러스에는 효과가 없었다. 그리고 이 항균효과는 오래 유지되지 않았다.
플레밍은 세균을 죽인 그 물질 이름을 ‘페니실린’이라고 1929년 3월에 명명하였는데 푸른곰팡이 속(Penicillium)에서 유래하였다.
푸른 곰팡이를 현미경으로 보면 털이 많으므로 페니실린(penicillin)은 “가는 털이 많다는 뜻이다.
그러나 크래독, 리들리 등은 생화학자가 아니었으므로 순수 페니실린 추출에 실패하였고 크래독과 리들리 등은 떠났다.
1929년 5월 플레밍은 곰팡이에서 얻은 물질의 항균력이 우수하기는 하나 몸에는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논문을 영국의 실험 병리학 간행물인, “British Journal of Experimental Pathology”에 발표하였다.
플레밍 팀은 최선을 다해 노력을 했으나 기술적인 한계로 페니실륨 노타툼(Penicillium notatum)에서 순수한 페니실린을 추출하는데 실패했다.
플레밍 팀은 페니실린의 항균 지속 시간이 너무 짧아 항균 효과가 미약했고 또 다른 종류의 항균제인 설폰아마이드계 약물(sulfonamide)이 발견되면서 페니실린에 관한 사람들의 관심이 멀어짐에 따라 페니실린에 대한 논문을 네 편 가량 발표하고는 연구를 포기하고 말았다.
그 후 1930년 영국 셰필드에서 플레밍의 제자인 세실 조지 페인(Cecil George Paine, 1905 ~ 1994, 병리학자)이 사람에게 페니실린을 처음 적용하여 치료에 성공하였다.
세실 조지 페인은 신생아 안염(新生兒眼炎, ophthalmia neonatorum, 눈병) 환자에게 가공하지 않은 천연 페니실린을 투여하여 성공적으로 치료하였지만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3. 게르하르트 도마크의 설파제 발견
세균을 죽이거나 성장을 억제하는 물질 중에 인간이 합성한 화학물질을 항균제라 하며 항균제의 효시는 설파제(설폰아미드 기, sulfonamide, SO2NH-R를 가진 합성 살균제)이다.
독일의 게르하르트 도마크(Gerhard Domagk, 1895 ~ 1964)는 파울 에를리히(Paul Ehrlich, 1854 ~ 1915, 세균학자, 화학자, 면역학자, 측쇄설 sidechain theory, 면역 연구로 1908년 메치니코프와 공동으로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의 화학요법(chemotherapy) 이론에서 영감을 얻어 옷을 염색하는 염료는 단백질에 잘 결합하므로 세균의 단백질에 결합하여 세균을 죽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러 염색약 중에서 세균을 죽이는 염색약을 찾는 실험을 했다.
게르하르트 도마크(Gerhard Domagk, 1895 ~ 1964)가 세균을 죽이는 염색약을 찾던 실험을 하던 중이던 1931년 도마크 실험실 소속의 프리츠 미츠시(Fritz Mietzsch, 1896 ~ 1958)와 요세프 클라러(Josef Klarer, 1898 ~ 1953)는 도마크의 연구를 위해 술폰아미드기(sulfonamide, SO2NH-R)를 가지면 섬유에 대한 부착력이 향상된다는 20여 년 전의 논문을 기반으로 KL 695 염료(항박테리아 효능이 약했음)에 수소 기 대신에 술폰아미드 기를 가진 아조 염료인 프론토질 루브륨(prontosil rubrum, Sulfonamidochrysoidine, KL-730)을 합성하였다.
1932년 게르하르트 도마크(Gerhard Domagk, 1895 ~ 1964)는 이들이 합성한 프론토질 루브륨(prontosil rubrum은 상표명, Sulfonamidochrysoidine, KL-730)은 술폰아미드 기를 가졌기 때문에 이 염료가 박테리아의 세포벽에 더 잘 붙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프론토질 루브륨(prontosil rubrum, Sulfonamidochrysoidine, KI-730)을 세균의 일종인 연쇄상 구균(Streptococci)에 감염된 쥐에 주사한 결과 치료가 되었다.
이 실험 결과를 재직하고 있는 염료 회사(Bayer, 바이엘)에 알렸다.
바이엘 회사는 이에 대한 특허 신청은 했으나 개발을 진전시키지 않았다.
도마크는 3년 동안 프론토질 루브륨의 박테리아에 대한 특성을 더 연구하여 연쇄상구균(Streptococcus)과 포도상구균(Staphylococcus)에 의한 질병을 성공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1935년 12월 4일 도마크 어린 딸(Hildegard)이 바늘에 손을 찔려 Streptococci septicaemia에 감염되었다. 그 당시에는 이 균에 감염되면 죽었다.
이에 도마크는 정부의 허가를 얻어 딸에게 프론토질(prontosil, Sulfonamidochrysoidine, KL-730)을 투여한 결과 매우 빨리 회복되었다. 이 결과를 의약계가 받아들여 확인한 결과 효능이 인정되었다.
설파제는 세균의 엽산 합성을 차단하여 세균의 번식을 차단하며 요로 감염증, 장티푸스, 임질, 말라리아 등에 유용하다. 설파제는 인간이 합성한 화학물질의 항균제인 것이다.
1940년 프론토질(prontosil, Sulfonamidochrysoidine, KL-730)이 몸의 소장에서 분해되어 설파닐아마이드(sulfanilamide)로 변화되어 작용한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생명활동에는 엽산이 필수적인데 세균은 스스로 엽산을 합성하고 사람은 엽산을 합성할 능력이 없어 음식물로 섭취하여 살아간다.
세균이 엽산을 합성하는 중간 과정에는 파라아미노벤조산(para-aminobenzoic acid, PABA)이 이용된다.
설파제의 설폰아미드를 세균에 투여하면 설파닐아마이드(sulfanilamide) 작용기와 파라아미노벤조산(para-aminobenzoic acid, PABA)이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 엽산 합성에 필요한 효소에 PABA 대신 설파닐아마이드(sulfanilamide) 작용기가 결합하여 엽산의 생성을 방해하는 것이다.
1939년에 노벨 생리의학상 수여가 결정되었으나 게르하르트 도마크(Gerhard Domagk, 1895 ~ 1964)는 히틀러 지시로 수상을 거부했으며 그 뒤 1947년에 수상금 없이 금메달을 수상하였다.
바이엘은 프론토질을 처음 특허 등록할 때에 약효가 있다는 것을 등록하지 않았고 프론토질은 여러 변이 물질이 쉽게 생산되어 바이엘에 큰 이익을 주지는 못하였지만 1960년대까지 생산되었다.
4. 페니실린 추출
1935년 영국 옥스퍼드 대학 병리학 교실 주임인 하워드 월터 플로리(Howard Walter Florey, 호주, 1898 ~ 1968)는 히틀러를 피해 영국으로 망명해 온 독일 화학자 유태인 에른스트 보리스 체인(Ernst Boris Chain, 독, 1906~ 1979)을 옥스퍼드대 연구원으로 채용했다. 1937년 이들은 라이소자임(lysozyme)을 추출하여 정제하는 연구를 하였다. 이들은 라이소자임(lysozyme)을 연구하던 중 플레밍의 페니실린 논문을 보고 관심을 가졌다.
1938년 플로리와 체인은 플레밍의 페니실린 논문에서 밝힌 페니실린의 항균 효과를 박테리아 배양균으로 검증하고 플레밍 팀이 못한 페니실린을 추출하는 연구를 시작했다. 런던대학의 플레밍 팀보다 생화학을 전공한 옥스퍼드대 이들의 물질 정제 기술이 뛰어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들은 플레밍이 발견한 페니실륨 노타툼(Penicillium notatum)을 사용하였으며 페니실륨 노타툼(Penicillium notatum)은 1923년 벨기에 미생물학자 필리베르트 비오르가 발견하여 명명한 종인 페니실륨 루벤스(Penicillium rubens)에 속한다.
그들의 페니실린 연구는 1939년, 미국 록펠러재단으로부터 신약 개발이란 연구 제목으로 25,000달러를 지원받으면서 더욱 활발히 진행되어 페니실린을 분리하였다.
많은 양의 페니실린을 분리할 수 없었던 체인(E.B.Chain)과 플로리(H.Florey)는 생화학자 노먼 히틀리(Norman Heatley, 1911 ~ 2004) 등 여러 명을 연구에 동참시켰다.
1940년 노먼 히틀리는 페니실륨 노타툼(Penicillium notatum)에서 순수한 페니실린을 대량 분리하는 방법을 개발하였다. 충분한 양의 페니실린을 확보한 히틀리는 페니실린 효능 검증 실험을 하였다. 10마리의 쥐에 치사량의 포도상 구균을 주사한 후 그중 절반은 페니실린을 주사하고 나머지는 주사하지 않았다. 그런데 페니실린을 주사하지 않은 쥐는 모두 죽고 주사한 쥐는 모두 살아남았다.
오늘날에는 동물실험에 모르모트를 사용한다. 페니실린은 모르모트에게 독약이다. 따라서 당시에 쥐가 아니라 모르모트를 실험용으로 사용했더라면 페니실린의 효능은 밝혀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람에게 페니실린을 처음 임상실험을 한 것은 1940년 옥스퍼드 대학에서였다. 경찰인 알버트 알렉산더(Albert Alexander)는 면도 칼에 베여서 곪았는데, 연쇄상 구균(Streptococcus)과 포도상 구균(Staphylococcus)에 의해 급성 패혈증으로 번지고 있는 상태였다. 당시의 급성 패혈증은 치명적인 병이었다. 그때 가장 효과적이라고 여겼던 설파제(Sulpha drugs)로 치료해 보았지만 차도가 없었다. 환자가 며칠밖에 살지 못한다는 절망적인 상황이 됨에 따라 플로리와 체인은 페니실린을 실험해도 좋다는 허가를 받았다.
페니실린을 주사한 후 24시간이 지나자 환자가 회복되면서 곪은 상처 부위가 줄어들었다. 그러나 히틀리가 페니실륨 노타툼(Penicillium notatum)에서 추출한 페니실린의 양이 너무 적어서 곧 바닥이 났다. 그들은 알렉산더의 오줌으로부터 극소량의 페니실린을 추출하여 다시 혈관에 주사했다. 그러자 환자는 조금 더 회복되는 기미를 보였다. 그러나 회수 량은 점점 줄어들었고, 결국 경찰관은 사망하고 말았다.
1941년에 플로리와 체인은 페니실린의 양을 충분히 확보하여 한 젊은이의 생명을 구함으로써 세균 감염을 치료하는 페니실린의 효능이 입증되었다.
페니실린은 그램 양성 세균(세포벽이 두꺼워 염색약 그램에 염색되는 세균)의 세포벽 생성을 억제하여 번식을 못 하게 하며 동물은 세포벽이 없으므로 해가 없다.
숙주에는 해가 없는 항생제가 개발된 것이다.
이렇게 페니실린의 효능은 입증되었지만 문제는 많은 양의 페니실린을 생산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환자 한 사람을 치료하는 데는 5~10그램의 페니실린이 필요한데 푸른곰팡이 100리터에서 1그램의 페니실린을 생산할 수 있을 뿐이었다.
플로리와 체인은 페니실린을 대량 생산하는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영국 정부에 연구비를 신청했으나 독일과 제2차 세계대전 중이어서 재정적 여유가 없었으므로 거절당하고 영국 기업에서도 거절당했다.
그래서 체인과 플로리는 영국에서 페니실린 생산을 포기하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 정부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발생하는 수많은 부상병을 치료하기 위해 페니실린에 관심을 가졌다.
* 페니실린 배양과 추출 과정
A) 귤, 멜론 등을 이용한 액체배지에 푸른곰팡이 중 페니실륨 노타툼(Penicillium notatum)를 배양(培養, culture)하며 배양 중에 스트레스를 주어야 penicillin이 생성된다.
B) 배양액을 회전 진공 여과기(rotary vacuum filter)로 균사(菌絲, hypha)를 분리해 낸다.
C) amyl acetate나 butyl acetate를 페니실린 추출 용제로 사용하여 균사에서 페니실린을 산성 형태로 만들어 원심분리기로 분리한다.
D) 활성탄(activated carbon)으로 불순(impurities)을 제거한다.
E) 용매와 페니실린 혼합용액에 sodium acetate나 potassium acetate를 첨가하여 페니실린 용해도를 낮추어 나트륨염, 칼륨염 형태로 crystallization(결정화, 結晶化) 한다.
F) 무수 I-propanol, butanol, ethanol을 혼합한 휘발 용매(volatile solvent)를 이용하여 sodium acetate, potassium acetate를 제거하고 무수 용매(anhydrous solvent)로 세척, 건조하며 여러 번 재결정하여 순도를 높인다.
5. 페니실린 대량 생산
1941년 결국 미국 화이자 제약회사(Pfizer Inc., 1849년 Charles Pfizer와 Charles Erhardt가 화학회사로 설립)가 플로리와 카인의 제안을 받아들여 이들에게 연구비를 대고 생산에 들어갔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이라 부상병을 치료하기 위한 페니실린의 대량 생산이 영국과 미국 모두에게 최대의 관심사가 되었다.
플로리가 미국을 방문하여 영국의 페니실린 추출 방법과 제조 방법을 전수하였다.
미국 화이자 제약회사는 페니실린을 대량으로 생산하기 위해 페니실륨 노타툼(Penicillium notatum)을 배양할 수 있는 방법을 찾던 중 시트르산을 대량 생산하는 방법인 배양 탱크를 사용해서 성공하였고 생산량도 5배나 증산되었다. 그래서 페니실륨 노타툼(Penicillium notatum)을 배양할 수 있는 큰 배양 탱크들이 필요했다. 당시에 미국에서는 주류 판매금지법이 시행됨에 따라 술을 발효시킬 때 사용했던 큰 발효 탱크들이 남아돌아 쉽게 배양 탱크는 해결되었다.
일리노이 주 피오리아에 있는 미국 농무성(美國農務部, United States Department of Agriculture, USDA)의 연구소인 국립 농업 활용 연구 센터(National Center for Agricultural Utilization Research, NCAUR, 북부 농학연구소, Northern Regional Research Laboratory, NRRL)에서는 폐 옥수수 전분 이용 분야를 연구하고 있었는데 여기서 앤드루 모이어(Andrew J. Moyer) 박사는 푸른 곰팡이를 배양하는 배지를 여러 가지로 바꾸어 보던 중 옥수수 전분을 걸러내고 난 알칼리성 폐 옥수수 전분 액을 배지로 사용하면 페니실린을 20배나 많이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오늘날까지 아미노산이나 항생제를 생산하는 발효산업에서 설탕을 만들고 남은 당밀 액, 폐 옥수수 전분 액을 사용하는 계기가 되었다.
기적의 약 페니실린을 개발하여 돈을 가장 많이 번 사람은 노벨상을 받은 플레밍이나 플로리, 체인이 아니라 폐 옥수수 전분 액으로 특허를 받은 모이어 박사였다.
페니실린 실용화의 또 한 사람의 공로자는 미국의 가정주부인 메리 헌트(Mary K. Hunt, Mary Hunt Stevens, Mouldy Mary) 여사다. 플레밍이 발견한 푸른곰팡이 종류는 페니실린 생산량이 너무 적어서 이용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미국 농무성의 피오리아 연구소는 페니실린을 더 많이 생산할 수 있는 새로운 종을 찾기 위해 누구에게나 개방하여 푸른 곰팡이를 수집하고 있었다. 메리 헌트 여사는 새로운 푸른 곰팡이를 찾기 위해 열성적으로 노력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메리 헌트 여사는 시장에서 과일을 사던 중에 썩은 캔털루프(Cantaloupe, 멜론의 일종)에 피어 있는 푸른 곰팡이를 발견했다. 피오리아 연구소는 이 푸른 곰팡이를 Penicillium chrysogenum(Penicillium rubens, NRRL 1951, cantaloupe)라 명명하였으며 이 곰팡이 종은 플레밍이 발견한 Penicillium notatum보다 20배나 많은 페니실린을 생산하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미국의 제약회사들은 100리터에서 1그램을 생산하던 페니실린을 몇 천 배나 많이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2차 세계대전의 부상병 치료를 위해 페니실린의 대량 공급이 절실하던 당시에 미국의 19개 제약회사가 페니실린을 생산했다.
이렇게 대량 생산된 페니실린은 1943년부터 2차 세계대전의 노르망디 상륙작전(Normandy Invasion) 등에서 많은 사람을 살렸다.
1944년부터는 민간인에게 사용되어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미국의 제약회사들이 페니실린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였고 생산량이 많은 새로운 균주를 찾아냄에 따라 특허권도 미국 제약회사들이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영국은 50년 동안이나 미국에 막대한 특허료를 지불하면서 수입하게 되었다.
6. 페니실린의 작용과 합성
페니실린은 푸른 곰팡이(Penicillium notatum와 Penicillium chrysogenum)에서 찾은 베타-락탐(β-lactam)계열의 항생제로 분자식이 R-C9H11N2O4S이다.
페니실린의 베타-락탐 일부분이 펩티도글리칸 분자를 연결하는 트랜스펩티데이스(transpeptidase)와 결합하여 펩티도글리칸 분자 간의 연결을 방해함으로써 세포벽을 약화시킨다.
6-아미노페니실란산(6-aminopenicillanic acid)은 페니실린의 공통 활성 핵으로 페니실린 합성의 중간체(intermediate)로 이용된다.
페니실린은 여러 종류가 있으며 모든 페니실린은 6-아미노페니실란산에서 (6R)-아미노 치환기를 갖는 반합성 페니실린(semisynthetic penicillins, 세균의 베타-락탐 고리를 끊는 베타-락타메이스 β-lactamase의 작용을 억제하는 등의 기능을 가짐)으로 합성하여 사용한다.
1949년 도로시 호지킨(Dorothy Hodgkin, 1910 ~ 1994)이 X선 분석법으로 페니실린의 구조를 밝혔다.
그 뒤 페니실린 합성 방법이 개발되었다.
1956년에 미국의 시한(John Sheehan, 1915 ~ 1992)는 6-아미노페니실린산(6-Aminopenicillanic acid, 6-APA)을 최초로 합성하였다.
영국의 토마스 비참(Thomas Beecham, 1820 ~ 1907)이 설립한 제약회사 비참(Beecham group plc)에서 1957년에 6-APA을 생산 가능한 새로운 방법으로 합성하였다.
7. 플레밍의 수상
1945년에 플레밍, 플로리와 체인 세 사람은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하였다. 이처럼 노벨상을 받은 플레밍, 플로리, 체인 박사의 영광 뒤에는 노먼 히틀리, 모이어, 메리 헌트 등의 열성적인 노력이 있었다.
플레밍(Alexander Fleming)은 세균(박테리아) 감염 치료제인 항생제(페니실린)를 처음 발견한 공로로 노벨 생리의학 상뿐만 아니라 영국 여왕의 작위, 세계 여행 중에 25개의 명예학위, 15개 도시의 명예시민 자격증 등 총 140여 개의 영예를 안았다.
* 라이소자임 구조 연구
• 1937년 에드워드 아브라함(Edward Penley Abraham, 1913 ~ 1999, 영국) 등은 난백 속에 있는 라이소자임(lysozyme)을 결정했다.
• 1965년 데이비드 필립스(David Chilton Phillips, 1924 ~ 1999, 영국)가 X-선으로 라이소자임(lysozyme) 3차 구조를 밝혔는데 단백질 효소로서는 3차 구조가 처음 밝혀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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