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sugar, sucrose, 분자식 C12H22O11)은 사탕수수(sugar cane), 사탕무(sugar beet) 등을 압착하여 분리한 즙(vesou)을 정제하여 고체로 만든 것이며 포도당(glucose, C6H12O6)과 과당(fructose, C6H12O6)이 글리코시드 결합(α-1,2-glycosidic bond)으로 된 이당류(disaccharide)로 탄수화물의 일종이다.
카르보닐기(carbonyl group, >C=O, −C(=O)− , 탄소와 산소 사이에 이중결합을 가진 기, 알데히드기와 케톤기에 있음)를 가진 당을 환원당이라 한다. 그런데 설탕은 비환원당이다. 설탕은 포도당과 과당이 결합된 이당인데 두 단당이 서로 헤미아세탈 상의 OH기끼리 결합하여 설탕을 형성한다. 반응성이 강한 단당의 헤미아세탈 OH는 수용액 중에서 알데히드 구조가 되어 환원성을 나타내지만 설탕(sucrose, 포도당 C-1과 과당 C -2위치에서 글리코시드 결합)은 포도당의 헤미아세탈과 과당의 헤미아세탈위치에서 글리코시드 결합하여 헤미아세탈이 사라지고 고정되어 카르보닐기(>C=O, −C(=O)−)가 없어짐(반응성이 강한 헤미아세탈의 OH기가 없어짐)에 따라 비환원당이 된다.
설탕은 환원성이 있는 헤미아세탈 상의 OH기끼리 결합하였으므로 수용액 중에서 환원성을 나타내지 않는 것이다.
수크로오스(sucrose, 설탕, 雪糖)이라는 용어는 1857년 윌리엄 밀러(William Allen Miller, 1817 ~ 1870, 영국)가 프랑스어 sucre(sugar)와 일반적인 화학 접미사 -ose를 합성하여 처음으로 사용하였으며 사카로스(saccharose)는 일반적인 당을 나타내는 용어로 설탕을 의미하며 1860년 피에르 베르텔로(Pierre Berthelot, 1827 ~ 1907, 프랑스, 화학자)가 처음 사용하였다.
우리가 사용하는 설탕이라는 용어는 희고 고운 눈(雪)과 같은 당이라는 설당(雪糖, sucrose)에서 왔는데, 그 발음이 와전되어 설탕이 되었으며 사탕수수에서 생산된다고 자당(蔗糖, sucrose, saccharose, 蔗 사탕수수 자)이라고도 한다.
설탕(雪糖, sucrose)은 감미료로 이용되며 당도는 100 브릭스(Brix)이며 당도를 정하는 기준 물질이다.
용액 100g에 설탕 1g이 녹아 있는 당도를 1 브릭스(Brix, 무게 백분율 w/w %)라 한다.
열대 고수익 작물인 사탕수수는 재배와 가공에 많은 인력이 필요하였으므로 인도, 아시아에서 전파되어 유럽과 아프리카에서 재배되다가 신대륙의 발견과 더불어 서인도 지역으로 전파되었고 흑인노예를 수입하여 대규모 농장인 플랜테이션(plantation)이 되었다. 그리고 제국들이 삼각무역(세나라 사이의 무역, 예, 유럽의 국가가 아프리카에 무기나 화약을 싣고 가서 그것으로 노예를 산 뒤, 북미대륙이나 서인도제도에 노예를 팔고 그 돈으로 그곳 물품을 사서 돌아오는 무역)으로 많은 부가 창출됨에 따라 초기에는 스페인의 카리브 지역, 포르투갈의 브라질, 이어서 네덜란드의 바베이도스에서 버진 제도까지, 여기에 프랑스, 영국이 가담하였으며 대영제국이 부를 창출하는 중요 무역물품이 되었다.
설탕 주요 생산국가는 1위 인도, 2위 브라질, 3위 태국, 4위 중국, 5위 미국이며 그 외에 인도네시아, 쿠바 등의 카리브해 국가, 하와이, 대만, 오스트레일리아, 프랑스, 독일, 영국, 푸에르토리코, 멕시코 등이다.
1. 사탕수수 설탕(설당 雪糖, 사당 砂糖, 자당 蔗糖, cane sugar)
가. 사탕수수(sugar cane)
사탕수수(sugar cane)는 외떡잎식물 벼목 화본과 사탕수수 속 사탕수수 종이며 열대지방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사탕수수의 학명은 Saccharum officinarum이다.
동남아, 인도 등 열대 지방의 여러 곳에 자생지가 있다.
사탕수수의 높이는 2 ∼ 6m이고 줄기는 무리 지어 곧게 자라며 가지를 치지 않는다.
줄기에는 20 ∼ 30개의 마디가 있고 마디 사이의 길이는 약 20cm이다.
잎은 어긋나며 길이는 70cm 정도이고 나비는 1.5 ∼ 5cm이다. 줄기를 감싸는 잎집이 있다.
가을이 되면 줄기 끝에 원추꽃차례로 꽃이 피는데 꽃색은 잿빛을 띤 흰색이다.
꽃이삭은 원뿔형이고 길이 59 ∼ 60cm이며 수많은 작은 이삭의 꽃이 달린다. 작은 이삭의 꽃은 1개의 양성화이다. 꽃에는 3개의 수술과 2개로 갈라진 1개의 암술이 있다.
줄기에는 설탕의 원료가 되는 설탕(sucrose, 수크로오스)이 10 ∼ 20% 정도 들어 있다.
사탕수수 줄기에 들어 있는 당분은 결정체와 비결정체로 구분할 수 있다.
결정체는 사탕수수당(cane sugar)이라고 하며 쉽게 결정을 이루어 설탕이 된다. 비결정체는 주로 포도당(glucose)과 과당(fructose)으로 되어 있는데 결정이 되지 않고 액체상태로 있는 환원당이다.
나. 사탕수수 설탕의 역사
사탕수수는 기원전 약 8,000년경에 동남아시아의 뉴기니 섬의 파푸아 인들이 Saccharum officinarum 종을 돼지 사료로 재배하였고, 타이완과 중국 남부의 오스트로네시아(Austronesia, 아프리카의 마다가스카르, 말레이반도를 포함한 동남아시아, 타이완, 태평양에 있는 하와이, 이스터 섬에 이르는 지역)인들도 Saccharum sinense 종을 돼지 사료로 쓰기 위해 재배하였다.
그 후 단맛이 강한 사탕수수 종이 발견됨에 따라 사람들은 사탕수수의 줄기를 씹어서 사탕수수즙을 먹었다.
약 3,000년 전 Saccharum officinarum 종은 오스트로네시아(Austronesia) 상인들에 의해 인도, 중국으로 전해졌으며 Saccharum officinarum 종과 인도에서 유래한 Saccharum barberi 종, 또 중국 남부에서 유래한 Saccharum sinense 종들이 교배되어서 서남아시아와 유럽의 지중해까지 전해졌다.
약 2,000년 전 인도에서 사탕수수를 압착하여 만든 사탕수수액으로부터 설탕 알갱이를 만드는 제조 방법이 개발되었다.
BC 510년 다리우스 1세(Darius, BC 550 ~ BC 486, 재위 BC 522 ~ BC 486,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황제)의 인도 원정으로 설탕이 페르시아에 알려졌으며 BC 327년 알렉산드로스 대왕(Alexandros the Great, BC 356 ~ BC 323, 마케도니아 왕 재위 BC 336 ∼ BC 323) 시대에 인도 원정군의 장군 니아르코스(Nearchus, Nearchos, BC 360 ~ BC 300)는 인도 원정에서 돌아온 후 “인도에서는 벌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갈대의 줄기에서 꿀을 만들고 있다”라고 기록하였다.
BC 3세기경에는 설탕 제조법이 중국에 전파되었다.
1세기 초반에 설탕 결정 알갱이를 정제하는 방법이 개선되었으며 굽타 제국(Gupta Empire, 350년경) 시기에 설탕을 결정화했다는 기록이 있다.
초기 설탕 제조 방법은 사탕수수를 갈거나 두드려 사탕수수액을 짜내어 끓이거나 햇볕에 말려 모래알 같은 덩어리로 만드는 것이다(사탕, 사당, 沙糖, 砂糖).
"sugar(설탕)"이란 단어는 산스크리트어 "sharkara(자갈 gravel, 모래 sand)"에서 유래되었다.
인도에서 발명된 설탕은 중국으로 수출되고 이슬람에 의해 서남아시아와 유럽으로도 수출되었다.
AD 1세기경 로마의 의사 페다니우스 디오스코리데스(Pedanius Dioscorides, AD 40 ~ 90, 그리스, 약리학의 아버지)는 인도와 예멘에는 갈대에서 생성되는 사카론(sakcharon, 설탕)이라는 소금처럼 딱딱한 꿀이 있다고 기록하였다.
1세기경 고대 로마의 그리스인과 로마인들은 인도의 설탕을 수입하여 약으로 사용하였다.
6세기에는 사탕수수 경작과 설탕 제조 방법이 페르시아에까지 전파되었다.
발달된 설탕 정제 기술의 기원은 페르시아의 호라산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이며 베네치아에서는 사탕수수액을 원시적으로 정제하여 사탕과 같은 형태의 설탕을 생산하였다.
사탕수수를 갈거나 두드려 사탕수수액을 짜낸 다음 석회(수산화칼슘, Ca(OH)2)와 이산화탄소를 첨가하여 탄산화(CaCO3)하여 불순물을 제거한다(탄산화는 사탕수수액의 불순물을 고체로 만들어 쉽게 제거할 수 있도록 함).
불순물을 제거한 사탕수수액을 끓이거나 햇볕에 말려 설탕을 결정화하였다.
이슬람이 페르시아에서 가져온 사탕수수 경작법과 설탕 제조 방법은 이슬람의 영토 확장에 의해 지중해까지 전파되었다. 특히 무함마드(Muhammad, 마호메트, 570 ~ 632)가 창설한 이슬람이 636년 경에 사산왕조의 페르시아(226 ~ 651)를 정복하면서 발견한 사탕수수와 설탕 제조법을 이슬람(아랍)으로 가져왔으며, 다시 710년 정복 지역인 이집트에 전해져 설탕 제조법을 더욱 발전시켰으며 이어서 이슬람의 우마야 왕조는 모로코를 거쳐 지중해를 건너 755년에 스페인 남부에 전파하였다.
중국은 7세기 승려들에 의해 설탕 제조 방법이 도입되었으며 설탕을 "자갈 설탕(gravel sugar)"이라는 뜻으로 "砂糖(사당, 사탕)"이라 하였다.
남아시아, 중동, 중국에서는 설탕이 요리 및 디저트의 필수품이 되었다.
중세 아랍인들은 열대성 기후 지역에 제당소(製糖所, sugar mill)와 대규모 플랜테이션을 세웠다. 설탕 제조공정에는 많은 양의 물과 열이 필요하였므로 인공적인 관개시설을 이용하여 많은 제당소(製糖所, sugar mill)를 건설하였던 것이다.
9세기 사탕수수는 시칠리아, 레반트(Levant), 동부 지중해의 섬들, 키프로스 등 남부 유럽과 아프리카 동부 해안을 따라 잔지바르(Zanzibar, 탄자니아)까지 광범위하게 재배되었다.
10세기 초에는 스페인 남부에 위치한 알안달루스(Al-Andalus, 이슬람이 지배한 이베리아반도 지역)가 설탕 생산의 주요 중심지였다.
이렇게 아랍인들이 생산한 설탕(사카론, sakcharon)은 유럽 전역으로 수출되었다. 유럽에 수입된 설탕은 귀족들이 향신료로 사용하였으며 값이 매우 비쌌다.
그리고 12세기 십자군에 참가한 프랑스 군인들이 예루살렘에서 "달콤한 소금"을 접한 후 설탕을 유럽으로 가지고 들어와 설탕의 달콤함을 프랑스에 널리 전파하였다.
12세기 초에 베네치아는 티레(Tyre, 레바논) 부근의 일부 마을에 사탕수수를 재배하여 유럽으로 설탕을 수출하였다.
유럽에서는 설탕을 제과, 제빵, 그리고 고기나 짭짤한 음식에 넣는 양념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14 ~ 15세기 영국에 수입된 설탕 가격은 인도에서 수입된 향신료 값과 같을 만큼 비쌌다.
포르투갈의 엔히크(Dom Henrique, 엔리케, 1394 ~ 1460, 항해 왕자) 왕자는 1425년에 마데이라 제도(Madeira Islands, 아프리카 북서부 대서양)에 사탕수수를 전파했으며, 스페인 사람들은 카나리아 제도(Canary Islands, 아프리카 북서부)를 정복하여 그들에게 사탕수수를 전파했다. 그 결과 지중해 지역에서 독점하던 설탕 무역이 크게 변화되었던 것이다.
사탕수수 재배와 설탕 제조에는 많은 인력이 필요로 하는 노동집약형 산업이다.
그래서 설탕 농장주들은 흑해 지역에서나 아프리카에서 노예들을 데려와서 이용했다.
1493년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 1451 ~ 1506)는 그의 두 번째 서인도 항해에서 사탕수수 종자를 신대륙의 히스파니올라 섬(Hispaniola)으로 가져갔으며 1501년에 첫 설탕 수확을 하였다. 1520년대에 많은 제당소(製糖所, sugar mill)가 쿠바와 자메이카에 건설되었다.
포르투갈인들은 사탕수수 종자를 브라질로 가져갔다. 산타카타리나 섬(Santa Catarina Island), 데메라라(Demarara, 남미 북동부 해안에 있는 가이아나 Guianas에 있는 지역), 수리남의 북쪽 해안 등에 사탕수수 재배 농장과 제당소(製糖所, sugar mill)가 수없이 많이 건설되었다(1540년대).
이렇게 16세기 초부터 쿠바 등의 서인도 제도, 브라질, 멕시코, 인도양의 섬들, 인도네시아, 필리핀, 오세아니아까지 사탕수수 재배 지역이 확대되었다. 아메리카에서는 현지인들은 천연두 등으로 수가 줄어들어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사서 데려와 노동력으로 이용하였다.
16세기 유럽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나자 설탕의 수요가 급격히 증가되었다.
수도원에서 초의 재료인 밀랍을 생산하기 위해 양봉을 하였으므로 꿀이 많이 생산되어 공급되었으나 종교개혁으로 수도원이 개혁의 대상이 되어 폐쇄되면서 꿀의 공급이 줄어 설탕을 사용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설탕 정제 기술은 16세기말에 독일에 전파되었고, 그 후 네덜란드인들이 정제소를 시작하여 유럽 시장을 장악했다.
1625년 이후에 네덜란드인들은 남아메리카에서 카리브해 섬에 사탕수수를 들여와 바베이도스(Barbados)에서 버진 제도(Virgin Islands)까지 사탕수수를 재배했다.
네덜란드는 서인도 제도의 '설탕 섬’이라고 불리던 앤틸리스 제도(Antilles)에 사탕수수를 재배하여 유럽 도시들의 항구에 위치한 제당 공장에 사탕수수를 공급했다.
베네수엘라 북동쪽 소 앤틸리스 제도(Antilles)에 위치한 바베이도스에서는 1688년 시작된 바베이도스 축제가 지금도 이어져오고 있는데 고된 사탕수수 노동자들이 사탕수수 수확이 끝났음을 축하는 축제라고 한다.
17세기에 들어서자 유럽인들은 식생활이 변화되어 잼, 사탕, 차, 커피, 코코아, 가공식품 등 달콤한 식품들을 훨씬 더 많이 섭취하기 시작했다. 중국에서는 차에 설탕을 넣지 않았으나 유럽 선원들은 인도에서 차에 설탕을 넣는 것을 보고 유럽에 전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커피와 차에 설탕을 넣어서 마시는 문화가 발전되고 단맛을 즐기는 식생활로 변함에 따라 설탕의 이용 범위는 점점 넓어져 폭발적으로 설탕 수요량이 많아져 18세기 초에는 설탕은 모든 유럽 수입품의 5분의 1을 차지했다.
그리고 18세기 후반에 유럽에서 사용되는 설탕의 5분의 4는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인 서인도 제도에서 공급되었다.
설탕 제조 방법 개선의 필요성은 산업혁명의 기계화를 앞당기는데 일조를 하였다.
17세기에서 19세기까지 설탕 생산에 증기기관 등 기계를 이용하는 방법으로 개선하였다.
1768년 자메이카에서 처음으로 증기기관을 이용하여 제당소(製糖所, sugar mill)에 동력을 공급했으며, 발생하는 증기로 열처리 공정에서 불을 때는 것을 대체하였다.
1813년 에드워드 찰스 하워드(Edward Charles Howard, 1774 ~ 1816, 영국, 화학자, 철 운석 성분 분석)는 밀폐된 용기에서 증기로 사탕수수액을 가열하고 일부 진공 상태로 만들어 설탕을 결정시키는 설탕 정제 방법을 발명했다.
1852년 데이비드 웨스턴(William Renny Watson, 1838 ~ 1900, 영국, 기계공학자)은 원심분리기를 사용하여 조당(粗糖, 원당 原糖, raw sugar)으로부터 설탕을 분리하였다.
1834 ~ 1843년경에 노버트 릴리외(Norbert Rillieux, 1806 ~ 1894, 화학 기술자, 발명가, 프랑스 출신 미국)에 의해 설계된 다중효용 증발기(multiple-effect evaporator)는 연속된 저온도의 진공 솥을 사용하여 연료 효율성을 더욱 향상했다.
다. 사탕수수 설탕(砂糖雪糖, cane sugar) 제조 과정
사탕수수나 사탕무를 가공해 황설탕을 만드는 곳을 제당소(製糖所, sugar mill)라 한다. 황설탕을 백설탕으로 정제하는 곳을 설탕 정제소(sugar refinery)라고 하는데, 대부분 제당소(製糖所, sugar mill)가 정제소(sugar refinery)를 겸한다.
사탕수수 줄기를 압착하여 짜 낸 사탕수수액(원료당)에 석회수로 유기산을 중화하여 온도를 95도 정도로 올려 석회 염, 응고한 알부민, 지방, 왁스, 검 따위로 흡착시킨 뒤 탄산가스를 주입해 이들 불순한 부유물을 침전시켜 제거한다.
이렇게 정화된 설탕 함량 13%의 당액을 진공펌프로 증발시키고 끓여서 농축하여 설탕 함량 65%의 즙을 만든다.
즙에 결정핵으로 작용할 설탕가루를 넣어 결정화시킨 것을 원심 분리하여 결정화된 설탕과 액체를 분리한다. 분리된 설탕 결정을 조당(粗糖, 원당 原糖, raw sugar)이라하며 조당(粗糖, 원당 原糖, raw sugar)을 다시 정제하여 순수한 백색 설탕(정제당, refined sugar)으로 만든다.
그리고 원심분리로 설탕 결정과 분리된 액체 찌꺼기를 보통 당밀(糖蜜, molasses)이라고 한다.
설탕을 분리하고 남은 당밀(糖蜜, molasses)에는 수분 20 ~ 30%, 당분 60 ~ 70%(수크로오스 20 ~ 30%, 환원당 30 ~ 50%), 회분 5 ~ 10%, 기타 5%이다. 당밀은 과자나 잼 등의 식품원료로 쓰이며 알코올 발효에도 이용된다
2. 사탕무 설탕(beet sugar)
가. 사탕무(sugar beet)
사탕무(sugar beet)는 쌍떡잎식물 중심자목 명아주과 Beta속 사탕무 종이고 학명은 Beta vulgaris var. saccharifera이며 한해살이 또는 두 해 살이 풀이다.
원산지는 동부 지중해, 중앙아시아이며 일본,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미국, 폴란드, 이탈리아 등에 분포한다.
감채(甘菜)라고도 한다.
잎은 타원형이고 뿌리 모양은 중국 무와 비슷하며 뿌리의 당분 함량은 15 ∼ 20%이다. 씨를 뿌리고 1년째에 뿌리가 굵어져 설탕(sucrose, 수크로오스)을 축적하고 열매를 맺는다.
꽃은 작고 꽃잎은 없으며, 연한 녹색을 띤다. 꽃받침은 열매가 성숙함에 따라 서로 엉켜 한 덩어리가 되어 구과(球果)를 형성한다. 한 구과 속에는 1 ∼ 5개의 종자가 들어 있어 다배(多胚) 씨앗이 된다. 꽃받침과 수술은 5개이고 암술은 1개인데 수술이 먼저 성숙한다. 일반적으로 자가 불임이지만 자가수정을 하는 계통도 있다.
서늘한 기후에 적합하며 생육기간이 길다.
수확기는 보통 10월 하순이며, 수확은 줄기 부분의 첫 잎이 나온 위치에서 뿌리 부분과 줄기 부분을 구분하여 자르는데, 이 작업을 토핑(topping)이라 한다.
사탕무는 기온이 낮은 지방에서도 재배가 가능하므로 온대지방에서도 사탕무를 재배하여 설탕을 생산하게 되었으며 현재 북위 35 ∼ 65°의 광범위한 지역에서 재배된다. 사탕무 설탕 생산량은 세계 설탕 생산량의 30% 정도이며 세계 1위의 사탕무 설탕 생산국은 프랑스이다.
한국에서 사탕무를 시험 재배하였으나 경제성이 낮았다.
나. 사탕무 설탕(beet sugar, 甛菜糖, 첨채당) 제조
사탕무를 이용한 설탕 제조 과정은 사탕수수와는 달리 압착하지 않고 물에 용해시켜 농축한다.
사탕무는 즙을 내어서 제당 원료로 쓰고, 제당의 부산물은 사료로 이용한다.
다. 사탕무 설탕(甛菜糖, 첨채당, beet sugar) 역사
1575년 올리비에 드 세르(Olivier de Serres, 1539~1619, 농학자, 프랑스)가 사탕무를 설탕의 원료라고 주장했으나 주목받지 못했다.
1747년에 안드레아스 마르크그라프(Andreas Sigismund Marggraf, 1709 ~ 1782, 독일, 화학자)가 사탕무 뿌리에서 설탕(sucrose, 수크로오스)의 존재를 확인했으며 마르크그라프의 제자인 프란츠 아샤르(Franz Achard, 1753 ~ 1821, 독일)는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1797년~ 1840년)의 후원하에 슐레지엔의 쿠네른(오늘날 폴란드의 코나리)에 사탕무 가공 공장을 처음으로 건설했으나 수익이 나지 않아 실패했다.
그 후 프랑스의 나폴레옹 1세 때인 1811년 말 뱅자맹 들레세르(Benjamin Delessert, 1773 ~ 1847, 프랑스)는 쟝 밥티스트 케루엘(Jean Baptiste Quéruel 1779 ~ 1845)을 고용하여 쟝 밥티스트 케루엘이 개발한 사탕무에서 설탕을 산업적으로 추출하는 방법을 이용하여 파시(Passy, 당시엔 파리 외곽)에 설립한 제당 공장에서 처음으로 사탕무 설탕을 대량으로 생산했다. 이때 영국이 트라팔가 해전(1805)에서 승리하여 영국 해군이 프랑스를 포위하자 나폴레옹이 역으로 영국을 경제적으로 고립시키기 위해 영국과 프랑스가 지배하는 모든 나라 사이에 무역을 금지하는 대륙 봉쇄령을 내림에 따라 사탕수수를 수입할 수 없었던 프랑스에서 사탕무를 이용하여 설탕을 생산하여 공급한 공로로 뱅자맹 들레세르는 나폴레옹 1세로부터 막대한 지원을 포상으로 받았다.
3. 설탕의 종류
가. 원당(原糖, 粗糖 조당, raw sugar)
원당(原糖, 粗糖 조당, raw sugar)은 사탕수수의 원산지에서 사탕수수를 압착하여 얻은 원료당을 원심분리기로 분리한 황갈색의 설탕이다. 비정제당(unrefined sugar)이라고도 한다.
데메라라 설탕(demerara sugar)은 조당(粗糖)이며 조당(원당)을 부분적으로 정제한 설탕으로 입자가 크고 황갈색이다.
데메라라 설탕(demerara sugar)은 가이아나(Guyana)의 데메라라(Demarara)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나. 정제당(refined sugar)
정제당(refined sugar)은 조당(粗糖, 원당 原糖, raw sugar)을 용해하여 재결정하는 등의 정제 과정을 거쳐서 만든 설탕이다.
1) 백설탕(白雪糖, 精白糖 정백당, 上白糖 상백당, white sugar, granulated sugar 그래뉴당)
조당(粗糖, 원당 原糖, raw sugar)을 여과 등의 물리적 방법과 화학적 방법으로 완전히 정제하여 만든 입자가 작은 고순도(99.9%)의 설탕이다. 백색이고 단맛만 있어 요리를 할 때 재료가 가지는 고유한 빛깔과 맛을 변질시키지 않는다(0.24 ~ 0.6mm).
그래뉴당(granulated sugar, 백설탕)은 음식 조리나 음료 등 식품의 제조에 많이 쓰인다(0.6mm).
2) 노란 설탕(황설탕, 中白糖, 중백당, white brown sugar)
노란 설탕은 원료당에서 조당(粗糖, 원당 原糖, raw sugar)을 만드는 과정에서 열에 의해 캐러멜화(Caramelization) 등과 같은 작용으로 갈변이 일어나 색이 변화한 당이 설탕에 섞여 있는 당으로 정제가 완전하지 못해 생성된 것이다. 노란색이고 조당(粗糖, 원당 原糖, raw sugar)맛이 나지만 백설탕과 거의 차이가 없다.
현재는 정제기술의 발달로 완전히 정제된 백설탕을 먼저 생산한 다음 다시 당밀을 약간 혼합하여 황설탕을 제조한다.
3) 흑설탕(三溫糖, 삼온당, dark brown sugar)
가) 흑설탕(三溫糖, 삼온당)
흑설탕은 원료당에서 당밀을 분리하고 조당(粗糖, 원당 原糖, raw sugar)을 만들 때 당밀이 덜 분리되어 설탕에 당밀이 남아서 섞여 있는 것이며 그래서 흑설탕은 비정제 설탕이며 당도는 90% 정도이고 무기질이 함유되어 있다. 입자가 곱고 당밀 성분이 남아 있어 맛이 강하다.
현재는 정제기술의 발달로 백설탕을 먼저 생산한 다음 다시 당밀을 약간 혼합하여 흑설탕을 제조한다.
나) 흑설탕
흑설탕(三溫糖, 삼온당)이 건강에 좋다고 알려지자 백설탕에 검은색의 캐러멜(설탕을 170 °C로 천천히 가열하여 생성) 색소를 혼합한 설탕을 흑설탕이라고 명명하여 유통되고 있다고 한다.
4) 쌍백당(雙白糖, large crystal sugar)
쌍백당은 그래뉴당(0.6mm)보다는 당도가 낮지만 매우 높은 편이고 입자는 800 ~ 1,500μm(0.8 ~ 1.5mm)로 굵다. 제과, 제빵, 솜사탕 등에 사용된다.
다. 경지백당(plantation sugar)
경지백당(plantation sugar)은 원산지에서 사탕수수를 압착하여 만든 원료당에서 당밀을 제거한 조당을 제조할 뿐만 아니라 조당을 정제하는 과정까지 하여 완성한 설탕이다. 사탕무로 제조하는 설탕은 모두 경지백당(plantation sugar)이다.
일반적인 정제당은 재배지에서 원료당을 결정상의 조당으로 만들어 각국 소비지의 정제공장으로 보내면 정제공장에서 정제, 결정 공정을 거쳐 정제당으로 만들지만 경지백당은 산지에서 결정상의 조당을 만들지 않고 당즙을 일관공정으로 정제하여 당도 98도 이상의 백당을 만들며 원당 생산국에서 주로 소비한다.
* 비 효소적 갈변 반응(non-enzymatic browning reaction)
A. 캐러멜화(caramelization)
당을 높은 온도(170℃)로 가열하면 당이 분해하여 갈색으로 변하는 반응이다. 과당(fructose, 프럭토스)은 110℃, 포도당(glucose, 글루코스)과 설탕(sucrose, 수크로스)은 160℃ 이상에서 캐러멜화가 일어난다.
캐러멜화는 당에 열이 가해지면 물이 제거된 다음 열분해 되고 이성체화, 극화되어 다시 큰 분자로 합성된다. 예를 들어 difructose anhydride(DFA, 디프룩토오스 무수화물)는 탈수된 단당류로부터 생성된다. 합성된 큰 분자는 갈색을 나타내고 작은 분자는 냄새를 낸다.
B. 아미노카르보닐 반응(aminocarbonyl reaction, 메일라드 반응, 마이 아드 반응, Maillard reaction)
환원당의 카보닐기(carbonyl group, >C=O, −C(=O)− , 탄소와 산소 사이에 이중결합을 가진 기, 알데히드기와 케톤기에 있음.)와 아미노산의 아미노기(amino gruop, -NH2)는 가열(170∼180℃)되면 화학반응을 일으켜 멜라노이딘(melanoidin, 갈색 색소)이 생성된다.
* 설탕 결정 입자 크기(Crystal size)에 따른 분류
A. 분말 설탕(분당, 分糖, Powdered sugar, confectioners' sugar)
일반 결정 설탕을 분쇄하여 체로 친 고운 설탕으로 디저트, 파티스리, 아이스크림, 앙트르메 제조에 많이 사용되고 각종 유제품, 음료, 크레이프 등에 첨가하는 용도로도 이용된다.
a. 3X 0.2mm
b. 6X 0.1mm
c. 10X 0.06mm
B. 과립당(顆粒糖, granulated sugar)
원당을 결정화하여 얻은 고운 입자의 일반 설탕으로 잼이나 과일젤리, 제과 장식용으로 사용된다.
a. 캐스터 슈거(caster sugar) 0.35 mm
b. 백설탕(白雪糖, 과립당, Granulated sugar) 일반 0.6 mm, 우리나라 0.24~ 0.6 mm
c. 쌍백당(雙白糖, large crystal sugar) 0.8 ~1.5mm
d. sanding sugar 1 ~ 3 mm
C. 각설탕(角雪糖, sugar cubes, sugar lumps, loaf sugar)
모양이 보통 육면체이며 1 변의 길이가 18㎜인 보통형과 15㎜인 소형이 있다.
그래뉴당의 포화 용액에 고운 그래뉴당 가루를 넣고 일정한 습기를 가한 다음 회전식 성형기에 넣고 압축하면 그래뉴당이 그래뉴당 가루에 달라붙어 큰 육면체 덩어리가 된다.
(일본 분류 용어, soft sugar 0.25 mm 이하, hard sugar 0.25 mm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