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란 한 종류의 생물 중에서 어떤 개체가 변이를 일으켜 다른 종으로 변화하는 것을 말하며 이렇게 진화한 결과 한 종류에서 두 종류로 즉, 처음 종과 새로 생성된 종이 존재하게 되므로 종류가 다양해지고 체제가 복잡해지거나 단순하게 된다.
이런 진화론을 주장한 사람은 다윈 전에도 많았다. 대표적인 사람이 라마르크(Jean Baptiste Pierre Antoine de Monet Chevalier de Lamarck, 1744 ~ 1829, 프랑스의 식물학자, 동물철학 Philosophie Zoologique-용불용설), 다윈의 할아버지인 에라스무스 다윈(Erasmus Darwin, 1731 ~ 1802, Zoonomia-진화론, 영국, 박물학자), 맬서스(Thomas Robert Malthus, 1766 ~ 1834, 영국의 경제학자, 인구론 An Essay on the Principle of Population, 1798) 등이 있었지만 당시 사회적인 여건과 신학자들의 반대로 진화론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찰스 다윈(Charles R. Darwin, 1809 ~ 1882)의 진화론이 발표된 후 진화론은 생물학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의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찰스 다윈(Charles R. Darwin, 1809 ~ 1882)은 영국의 슈루스베리에서 태어나, 1825년 에든버러 대학 의학부에 입학하여 1827년에 중퇴하였으며, 1828 ~ 1831년 케임브리지 대학 신학부에서 공부를 하였다. 그러나 신학에는 별 관심이 없고 동식물채집이나 지질 조사에 관심을 가졌다.
1831년 다윈은 대학을 졸업한 뒤 학창 시절 스승인 식물학과 교수 헨슬로(John Stevens Henslow, 1796 ~ 1861, 영국, 식물학자, 지질학자)의 추천으로 해군 측량선 비글호를 타게 되었다. 1836년까지 남아메리카와 남태평양의 여러 섬을 돌아다니며, 지질과 동식물에 대하여 자세히 관찰하였다. 아르헨티나의 팜파스,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대형 화석 동물이 절멸한 원인과 현재 비슷한 생물의 존재에 의문을 가졌으며, 각 섬의 동물의 약간씩 다른 형태를 보고 지리적 변이에서 점진적으로 변화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진화를 확신하게 되었다.
5년간의 항해를 통해 수집한 다양한 자료는 이후 20여 년간 진행된 그의 연구에 토대가 되었다.
이후 다윈은 20여 년에 걸쳐 진화론을 입증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한다.
다윈은 1856년 진화론을 쓰기 시작하였으나, 창조론으로 대변되는 당시 사회 상황에서 20여 년에 걸친 연구에도 불구하고 그는 세상에 자신의 학설을 완성하여 발표할 수 없었다.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Alfred Russel Wallace, OM, FRS, 1823 ~1913, 영국의 자연주의자, 탐험가, 지리학자, 인류학자) 집안은 본데 가난하지 않았으나 아버지가 주식 투자를 잘못하여 집안이 파산 직전에 있었다. 월리스는 집안이 더욱 기울면서 초등학교를 중도에 자퇴하고 측량기사인 형의 조수로 일하면서 런던 기계공 학교에 진학하여 기계공학을 배워 측량기사가 되었다.
그는 레이세스터 대학 도서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1838년 토머스 로버트 맬서스(Thomas Robert Malthus, 1766 ~ 1834, 영국의 성직자, 인구통계학자, 정치경제학자)의 인구론(An Essay on the Principle of Population, 인구의 원리에 관한 에세이, 1798)같은 책들을 읽었다.
1844년 21세의 월리스는 19세의 생물학자인 헨리 월터 베이츠(Henry Walter Bates, 1825 ~1892, 잉글랜드의 박물학자)를 만났으며 그와 함께 곤충 채집을 하면서 생물학자가 되었다.
월리스가 진화론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1842년에 발표된 다윈의 비글호 항해기(The Voyage of the Beagle by Charles Darwin)를 읽으면서였다고 한다.
다윈의 비글호 항해기(The Voyage of the Beagle by Charles Darwin)와 1838년에 읽은 토머스 맬서스의 ‘인구론(An Essay on the Principle of Population, 인구의 원리에 관한 에세이, 1798)’이 20년 뒤 월리스 자신에게 진화론의 영감을 주었다고 했다.
1848년에는 베이츠와 함께 남아메리카의 아마존 우림(Amazon rainforest)을 탐험하면서 많은 생물 표본을 수집하였지만 귀국하던 배에 불이 나서 대부분 타버리고 일부의 기록물만 남았다.
월리스는 아마존 우림(Amazon rainforest) 탐험과 관련하여 기행문과 생물학 논문을 작성해서 출판했으며, 이를 통해 과학자들과 교류하였다. 이때 찰스 로버트 다윈도 만나게 되었다.
월리스는 1854년부터 1862년까지 8년간 생물 표본을 수집하여 판매하고 자연 연구를 하기 위해 다시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를 여행하면서 많은 생물 다양성을 체험하고 수많은 생물 표본을 채집했다.
인도네시아의 자바섬(Java, Jawa 자와 섬, Oriental realm, 동양구)과 순다 열도(Sunda Islands, Australasia, 오스트레일리아구) 사이, 그리고 보르네오 섬(Borneo, Oriental realm, 동양구)과 술라웨시 섬(Celebes, Australasia, 오스트레일리아구) 사이의 바다를 경계선으로 동양구(Oriental realm)와 오스트레일리아구(Australasia)의 동물분포에 있어서 차이가 크다는 것을 확인하였으며 이를 월리스선(Wallace line, 1859)이라고 하게 되었다(생물지리학(生物地理學, biogeography, biological geography)의 아버지).
더우기 오스트레일리아구의 생물이 동양구의 생물보다 진화가 덜 되었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 이유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말레이 제도(Malay Archipelago)에서 곤충 채집을 하던 월리스는 1858년 말라리아에 걸려 병석에 누워서 맬서스의 ‘인구론(An Essay on the Principle of Population, 인구의 원리에 관한 에세이, 1798)’의 주요 논리를 생각하던 중 문득 ‘변형과 적자생존(variation and the survival of the fittest)’에 대한 영감을 받았으며 이 영감으로부터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빨리 진화하는 종이 생존할 가능성이 많아져 신종으로 이어진다’라는 ‘변형과 적자생존(variation and the survival of the fittest)’의 진화 이론을 세우고 이를 정리해서 다윈에게 편지로 보냈다.
월리스는 자기가 연구한 분야가 진화 연구의 대가인 다윈과 같아 다윈이 논문을 검토해줄 것이라 생각하였으며 그래서 다윈에게 두 편의 편지를 보냈는데 두 번째 편지에 보낸 논문 제목은 '변종이 원래 유형에서 무제한적으로 멀어지는 경향에 관하여(On the Tendency of Varieties to Depart Indefinitely from the Original Type)'였다.
다윈은 윌리스가 보내 온 논문이 자기의 연구 내용과 똑같아 많은 고민을 하였으나, 친구인 후커(Joseph Dalton Hooker, 1817 ~ 1911, 영국, 식물학자)와 라이엘(Sir Charles Lyell, 1797 ~ 1875, 영국, 근대 지질학 창설, 지질학자)의 주선으로 다윈은 자기의 이론을 완성하여 1858년 7월 1일 영국 런던의 린네학회지(Journal of the proceedings of the Linnean Society of London)에 후배 A. R. 윌리스와 함께 공저 형식으로 ‘종의 변종 형성 경향과 자연선택에 의한 종과 변종의 영속에 대하여(On the Tendency of Species to form Varieties and on the perpetuation of Varieties and Species by Natural Means of Selection)’라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여기서 진화론, 다윈, 윌리스 관계를 알아보자. 사람들은 다윈이 윌리스의 논문을 보고 표절 혹은 가로챘다는 비판을 하고 있으며, 유명한 다윈이 아니었으면 윌리스의 논문은 세상에 빛을 보지도 못했을 거라고도 한다. 가난하고 학벌도 없는 윌리스는 다윈이 진화론에 관한 자료를 더 많이 가졌다는 것과 진화론 논문이 세상에 주목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 다윈 때문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그리고 윌리스가 논문을 다윈에게 보내오지 않았다면 소극적인 다윈은 창조론이 지배하는 사회에 진화론을 논문으로 발표하지도 않았을 것이란 역설도 있다.
월리스는 1872년부터 1876년까지 왕립학회에 소속되어 25편에 달하는 논문을 발표했으며 동남아시아 탐험으로 얻은 표본들을 판매하여 큰 부자가 되었다. 그러나, 철도 사업과 광산업에 투자했으나 실패하여 파산 상태가 되었다. 그 뒤 말년의 윌리스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 진화론을 발전시키는 논문도 발표하지 않았고 심령술, 골상학 등에 심취하였으며 그리고 창조론을 믿는 듯한 행동을 한 반면에 많은 후학들이 다윈을 추종함에 따라 진화론은 다윈 차지가 되었다.
그 뒤, 1859년 다윈은 그의 이론을 ‘종의 기원(The Origin of Species by natural selection)’이란 제목의 책으로 발표하여 진화론 사상 가장 중요한 고전이 되었다. 훗날 그의 이론은 ‘진화론’이라 불리며 생물학계의 한 분야가 되었다.
1859년에 간행된 종의 기원의 초판은 14장으로 구성되었으며 그 목차는 다음과 같다.
제1장 사육과 재배과정에서 발생하는 변이
다윈은 사육하고 재배하는 많은 종들은 선택적 교배를 통해 공통 조상으로부터 분화하였다고 주장한다.
제2장 자연 상태에서 발생하는 변이
다윈은 종(species)과 변종(variety) 간의 경계가 모호하여 특징이 뚜렷한 변종이 초기종(incipient species)이 되며 종은 단지 특징이 확실히 나타난 변종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제3장 생존경쟁
생존경쟁 형태들의 기술과 생존 경쟁과 자연 선택과의 관계를 기술하였다.
다윈은 변종이 종으로 변하는 과정을 설명하며 자연선택의 개념을 소개한다.
제4장 자연도태 또는 적자생존
자연선택의 원리가 인위 선택에도 같은 원리로 적용되며 사소한 변이도 자연선택으로 축적된다. 성 선택, 같은 종의 개체 사이에 행해지는 교배 등도 자연선택의 원리로 일어난다.
제5장 변이의 법칙
다윈은 유전되는 변이의 원인은 몰랐지만 환경적 조건에서 획득 형질로 변이가 발생할 수 있다고 보았다. 다윈은 선택에 의해 이러한 변이들이 세대가 지남에 따라 큰 차이로 변해갈 수 있음을 인식하였다.
제6장 학설의 난점
제7장 본능
제8장 잡종
제9장 불완전한 지질학적 기록
제10장 생물의 지질학적 천이
제11장 지리적 분포
제12장 지리적 분포(제11장에 이어)
제13장 생물의 서로 유연, 형태학, 발생학, 흔적 기관
제14장 요약과 결론
Appendix 자연선택설에 대한 여러 다른 의견들
6,7,8장은 자연선택 이론에 대한 반박들과 그에 대한 답변들을 제시한다.
다윈은 이 책의 초판(1859년)에서는 변이의 원인으로서 외적 조건을 제시했지만, 제6판(1872년)에서는 외적 조건은 생물의 본성에 비하면 부차적인 것이라고 주장을 바꾸었다.
제6판(1872년)에서는 1장 늘어 15장으로 되어 있다.
다윈의 종의 기원을 요약하면
자연계에서 생물의 여러 부분에 미소한 변이가 일어나고 그것이 여러 세대에 걸쳐 축적되는 동안에 진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 원인으로서 자연선택(自然選擇 ; 자연도태 自然淘汰)이라는 것이다.
생물의 다산성(多産性)으로 개체가 증가하면 동일한 요구를 가진 개체 간의 생존 경쟁 (生存競爭)이 일어나고 극히 작은 차이라도 개체의 생사를 결정한다.
환경에 대해 유리한 변이를 가진 개체가 생존하고(適者生存), 여러 세대를 거치는 사이에 유리한 변이가 축적되어 진화가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다윈의 진화론에서 말하는 중요 골자는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과 계통이다. 자연선택이란 자연환경에서 여러 가지 변이가 일어나고 환경이 변함에 따라 변한 환경에 적응한 형질을 가진 생물종은 살아남고(자연이 선택함), 적응하지 못한 형질을 가진 생물종은 도태된다는 것이다. 자연선택으로 변화한 환경에 적응하여 살아남은 개체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 종의 변화를 주도한다는 것이다.
다윈은 종의 분화를 계통으로 설명하는데 이것은 종의 분화를 나뭇가지가 생겨나가는 방식(계통수, 조상이 나무의 원줄기이고 근접하여 분지 한 가지일수록 최근에 분화한 종임)으로 설명했다.
이러한 종의 분화와 진화에 대한 이론의 핵심은 종의 유전자가 다양하다는 것을 근거로 하고 있다.
진화론을 발표할 당시에는 인간의 탄생이나 생물체 종의 분화에 대해 창조론이 그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으므로 다윈의 종의 기원은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창조론에서는 종을 고정, 불변의 것으로 보는데 반해 다윈의 종의 기원에서는 종을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모든 생명은 창조주에 의해 설계되었다는 당시의 믿음에 반하는 것이었다.
다윈은 적극적인 성격을 가지지 않았으므로 자신이 주장한 진화론이 정치 및 종교와 충돌하는 것을 피했다. ‘종의 기원’에서 사람이 침팬지와 같은 유인원의 조상으로부터 진화했다는 인간의 기원에 대한 문제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단지 종의 기원 끝 부분에 '인류의 기원과 역사는 재조명될 것이다’라고 표현했다.
진화론 수호에 앞장선 사람은 다윈보다는 헉슬리였다.
헉슬리가 진화론의 적극적인 수호자로서 활동한 가장 유명한 사건은 1860년 6월 30일 옥스퍼드대학에서 열린 영국학술협회 총회 모임이었다. 1천여 명의 방청객들이 모인 토론장에서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토론이 벌어졌다.
이 토론에 진화론의 지지자로는 30대의 헉슬리(Thomas H. Huxley 1825-1895)였고, 진화론의 반대자 대표로는 재담가로 잘 알려진 50대의 사무엘 윌버포스 대주교였다. 윌버포스 대주교는 생물학자 리차드 오웬(Sir Richard Owen, 1804 ~1892, 영국, 생물학자, 비교해부학자, 고생물학자)으로부터 사전 지식을 배워가지고 나와 다윈의 주장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였다.
관중들이 자신의 주장에 동의한다고 느낀 윌버포스는 연설을 마치면서 비꼬는 말투로 헉슬리에게 농담을 했다.
“원숭이의 자손이라면 당신 할아버지와 할머니 중 어느 쪽을 말하는 건가요?”
관중들의 폭소와 박수갈채가 이어졌지만 헉슬리는 태연하게 일어서서 다윈의 이론을 설명해 나갔다. 그러고는 마지막에 다음과 같은 말로 윌버포스의 농담을 맞받아쳤다.
“자기의 재능과 영향력을 과학적인 문제를 조롱하는 데 사용하는 인간보다는 차라리 원숭이를 할아버지로 택하겠소.”
이에 윌버포스는 당황한 나머지 자신의 마지막 발언 기회마저 포기하고 말았다. 헉슬리는 토론장에 참석한 대부분의 사람에게 진화론을 이해시키지는 못했지만, 이 논쟁으로 대중들에게 진화론을 어필하는 데는 성공했다.
다윈의 진화론은 종교가, 학자들에게 많은 반발을 받았기 때문에 종의 기원 출간 후 50년간은 암흑기였다.
그러나 세월이 지남에 따라 영국에서 차츰 다윈의 진화론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다른 종보다 뛰어난 개체로 특수 창조되었다는 창조론의 입장에서 인간도 하나의 동물 종으로 보는 관점으로 변화하는 등 인정을 받기에 이르렀다. 그 이유는 그 무렵 영국 산업자본주의의 근본 이념인 자유 경쟁 사상이 반영되어 적자생존 및 자연선택설이 일반 대중에게 환영을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현대에는 철학, 심리학, 의학, 경제학 등 대부분의 학문에서 진화론을 대입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을 정도로 다윈의 이론은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다윈의 자연선택설에 대해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윈의 진화론을 경쟁, 적자생존의 개념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당시 그가 발표한 이론은 동물과 인간 모두가 동등한 생명체로 환경에 적응하는 개체가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함축하고 있었다.
기린이 목이 길어지는 과정을 자연선택설로 설명한다. 기린이 목이 길어지는 과정을 보면 먼저 기린은 목의 길이가 긴 것과 짧은 것 등으로 다양한 변이가 일어난다. 기린이 같은 지역에서 개체수가 증가함에 따라 먹이 섭취가 중요하게 되었다. 그래서 개체가 과잉으로 증가하면 개체들 간에 경쟁이 일어나고 키가 큰 기린이 높은 곳의 먹이까지 먹을 수 있으므로 경쟁에 유리하여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다. 즉 개체가 과잉으로 증가함에 따라 키가 큰 것이 먹이를 얻기에 유리하여 적응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경쟁을 보면 기린의 능력이 뛰어난 즉 발달된 기린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키가 큰 기린이 살아남았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경쟁으로 능력이 발달된 생물이 적응되어 선택되는 경우가 많겠지만 단순히 환경변화에만 적응되어 살아남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 다윈의 진화론은 진보하는 것과 퇴화하는 것, 하등 수준과 고등 수준의 두 방향으로 진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즉 진화는 발달된 방향으로만 일어나는 진보가 아닌 적응이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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