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생식(有性生殖, sexual reproduction) 이론 확립 과정
유성생식(有性生殖, sexual reproduction) 이론 확립 과정(유성생식, 생식 과정에 대한 인식, 정자, 난자, 수정, 감수분열 발견)
김진국
1. 유성생식(有性生殖, sexual reproduction)
유성생식이란 자손을 생산하는 생식 방법의 하나이다.
암수의 구별이 있고 암컷의 생식세포인 난세포(난자)와 수컷의 생식세포인 정자가 수정하여 새로운 자손을 만드는 것이다.
유성생식을 알게 된 역사를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679년 안톤 판 레이우엔훅(Antonie van Leeuwenhoek, 레벤후크, 네덜란드, 1632 ~ 1723)이 정자를 발견하였으며 그보다 먼저 1627년 흐라프(Regnier de Graaf, 네덜란드, 1641 ~ 1673)가 포유류의 난소에서 흐라프 여포(Graafian follicle)를 발견하였으나 그때에 흐라프 여포는 포유류 암컷의 알(egg, 卵)이라고 생각했다. 생식세포가 아닌 달걀 같은 생명체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1828년에 카를 에른스트 폰 베어(Karl Ernst von Baer, 에스토니아, 1792 ~ 1876)가 포유류의 흐라프 여포(Graafian follicle, 성숙된 난포) 속에서 난자(卵子, ovum, 난모세포)를 처음으로 발견하였다.
1875년 헤르트비히(Wilhelm August Oskar Hertwig, 독, 1849 ~ 1922)는 최초로 성게에서 난자와 정자가 수정하는 것을 발견하였으며 1876년에는 성게의 수정한 알에서 정핵과 난핵이 융합하는 것을 발견하였으며 감수분열 현상을 제시했다.
1879년 발터 플레밍(Walther Flemming, 1843 ~ 1905, 독일)은 핵에서 염색되는 물질을 발견하였으며 이것이 세포 분열 과정에 꼬여서 염색체가 된다고 하였다.
1883년 에두아르 반 베네당(Edouard van Beneden, 벨기에, 1846 ~ 1910)이 염색체수가 반으로 되는 감수분열을 발견하였다. 이로써 감수분열로 염색체 수가 반으로 줄어든 난자와 정자가 합쳐져서 자손이 생성된다는 유성생식의 도그마가 확립되었던 것이다.
2. 생명체의 생식 방법 진화
지구상에서 유성생식으로 자손을 번식하기 시작한 때는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46억 년 전에 지구가 생성되었고 처음으로 생명체가 나타난 것은 38억 년 전이다. 처음 나타난 생명체는 원핵(핵막 등 막 구조가 없는 세포)의 단세포로 유전자가 두벌이 아니고 하나였다. 이들 생명체는 무성생식인 2분법으로 주로 번식했다. 유전자를 복제하여 무사 분열(방추사 생성 없이 세포막의 가운데 부분이 수축하여 핵과 세포질을 분리)하는 체세포 분열이 바로 생식인 것이다. 두 세포는 유전자가 같은 복제로 후손이 모두 똑같다.
한 종족의 유전자가 같을 경우 한 개체가 죽는 환경이 되면 한 종족 모두가 죽을 수 있으므로 종족보존에 불리하다. 그러므로 무성생식은 좋은 자손 번식방법이 아니다.
이들은 환경이 불리하면 두 마리가 합치는 접합을 하기도 한다. 이어서 나타난 진핵(핵막 등 막구조가 있는 세포)인 단세포 생물도 주로 2분법으로 번식하였다.
다음에 나타난 다세포 생물은 포자나 접합, 출아법으로 번식하였다.
10억 년 전쯤부터 접합이 발전되어 유성생식이 시작되었다.
유성생식을 하는 생명체는 염색체를 두벌(2n) 가지고 있다. 생식을 하기 위해서 두벌의 염색체를 가진 세포를 감수분열을 하여 염색체를 한 벌(n) 가지는 생식세포로 만든다. 이때 같은 작용을 하는 대립유전자(같은 작용을 하지만 조금 다름. 예를 들어 색을 나타내는 유전자지만 흰색을 나태는 것과 검은색을 나태는 것)를 가진 두 개의 상동염색체 중 한 개씩 선택하여 두 개의 세포로 나눔으로써 만들어지는 생식세포는 모두가 다르게 된다. 유성생식은 부와 모로부터 각각 다른 생식세포를 받아 수정되므로 형제간에도, 자매간에도 똑같을 수 없다. 이와 같이 유성생식은 서로 다른 개체의 유전자를 서로 섞어서 다양한 자손을 만드는 것이다. 자손이 다양하면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여 살아남을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유성생식은 발달된 생식 방법인 것이다.
3. 생식 과정에 대한 인식
동양이나 서양이나 옛날부터 생식을 농업에 비유해 남자는 여자라는 밭에 씨앗을 뿌려 자손을 생성한다고 생각했다. 종교, 사제, 무당, 토템에서 뿐만 아니라 학자, 일반인도 그렇게 생각했다. 한의학에서도 남자는 씨앗(종자), 여자는 밭이라 보고 있었으며 조선의 선조 때 유명한 정철(鄭澈, 1537 ~ 1594)은 송강가사에서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시니...'라고 읊고 있다.
서양에서 이와 같은 생식의 개념은 1679년 안톤 판 레이우엔훅(Antonie van Leeuwenhoek, 레벤후크, 1632 ~ 1723)의 정자 발견으로 더욱 굳어졌다.
안톤 판 레이우엔훅(Antonie van Leeuwenhoek, 레벤후크, 네덜란드)은 자신이 만든 현미경으로 여러 종류의 미생물을 발견하여 스케치로 남겼다. 그중에 정액 속에서 작은 올챙이처럼 생긴 정자를 관찰하였다. 최초로 생식세포의 하나인 정자(精子, sperm)를 발견한 것이었다.
레이우엔훅은 자신이 발견한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정액 속에 있는 이 작은 세포가 생명의 기원이라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은 남성의 정자 속에 아주 조그만 아기가 들어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렇게 정자를 생명의 기원이라고 생각하여 사람들은 전성설을 제시하였다. 전성설(preformation theory)이란 하나의 생식세포 안에 장차 완전한 개체로 될 모든 기관들이 있다는 것이다. 정자나 난자 속에 장차 생명으로 태어날 작은 개체들이 들어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더 나아가 일부 학자들은 정자의 머릿속에 작은 인간, 즉 호문쿨루스(Homunculus, 소인)가 들어 있다고 했다.
정자 속에 호문쿨루스가 들어 있고 호문쿨루스의 생식세포 속에 다시 그보다 더 작은 호문쿨루스가 들어 있을 것이고, 그것의 생식세포 속에는 더 작은 호문쿨루스가 들어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새로운 생명의 탄생에는 남성의 정액만이 유일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그 후 거의 200여 년 동안 믿어왔다.
1627년 흐라프(Regnier de Graaf, 네덜란드, 1641 ~ 1673)는 포유류의 난소 속에 난원세포를 둘러 보호하여 양분을 공급하는 세포 군인 흐라프 여포(Graafian follicle, 흐라프 난포, 포상 여포, 포상난포)를 발견하여 1627년 출판된 『 De Mulierum Organis Generatione Inservientibus 』라는 책에 그려 놓았다. 그러나 그때에 흐라프 여포는 포유류 암컷의 알(egg, 卵)이라고 생각했다. 생식세포가 아닌 달걀 같은 생명체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1694년 카메라리우스(Camerarius, R.J, 독, 1665 ∼ 1721)는 식물의 암수를 확인하고 수정 현상도 발견하였다.
그리고 현재 성을 나타내는 ♂(남성, male), ♀(여성, female) 기호는 린네가 처음 사용하였다.
이들 기호는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한 것으로 ♂(남성, male) 기호는 전쟁의 신인 에일레스(마르스)를 의미하며 창 모양을 나타낸 것이다. ♀(여성, female) 기호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비너스)를 의미하며 거울 모양을 나타낸 것이다.
이들 기호는 천문학에서 화성(Mars, ♂), 금성(venus, ♀)에 먼저 사용하고 있던 것이다. 중세의 천문학 책에 행성을 이들 기호로 나타내고 있는데 처음 사용한 사람의 기록은 없다. 중세의 천문학자는 점성술사이므로 전쟁과 사랑을 별과 관련시켜 놓은 것이다.
4. 난자, 수정, 염색체 그리고 감수분열의 발견
1828년에 카를 에른스트 폰 베어(Karl Ernst von Baer, 에스토니아, 1792 ~ 1876)는 포유류의 흐라프 여포(Graafian follicle, 성숙된 난포) 속에서 난자(卵子, ovum, 난모세포)를 발견하였다.
인간의 난자(난모세포)는 1928년에 에드가 앨런(Edgar Allen , 미국, 1892 ~ 1943)에 의해 최초로 묘사되었다.
1842년 네겔리(Karl Wilhelm von Nageli, 스위스, 1817 ~ 1891)가 처음으로 세포가 분열할 때 세포 안에 실 모양의 물체가 보인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1866년에 아우구스트 바이스만(August Weismann, 독, 1834 ~ 1914)이 생식질 설을 주장, 생식세포에 유전 물질이 있다는 설이다.
1875년 헤르트비히(Wilhelm August Oskar Hertwig, 독, 1849 ~ 1922)는 최초로 성게에서 난자와 정자가 수정하는 것을 발견했다. 성게의 번식을 연구하던 중 정자가 난자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관찰했다.
1876년에 헤르트비히는 성게의 수정한 알에서 정핵과 난 핵이 융합하는 것을 발견하였다. 성게 난자는 투명하여 관찰이 가능하였다. 그리고 감수분열 현상을 제시했다.
1877년에 헤르트비히는 극체(極體)의 형성이 알세포의 불균등한 세포분열로 형성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1879년 발터 플레밍(Walther Flemming, 독, 1843 ~ 1915)은 세포의 핵이 실(絲, 사)과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실 같은 구조는 염료에 잘 염색되므로 현미경으로 관찰할 수 있어 1888년 발데이어(Wilhelm von Waldeyer, 독, 1836 ~ 1921)가 염색체(染色體, chromosome)라고 명명했다.
1882년에 플레밍(Walther Flemming, 독, 1843 ~ 1915)이 체세포 분열(體細胞分裂, somatic cell division)을 관찰하고 이름을 붙였다. 베네당, 바이스만 등도 체세포 분열을 동시대에 관찰하였다.
염색체가 종렬(縱裂) 하였다가 방추사에 끌려 염색체가 분리되어 이동하는 세포분열의 과정을 발견하였다. 이렇게 끌려 이동된 염색체들이 2개의 딸핵이 되며 딸핵의 염색체 수는 분열 전 세포의 염색체 수와 같다는 것을 관찰함으로써 세포분열은 핵 물질이 2배로 복제되어 일어난다는 것을 입증하였다.
염색체수가 반으로 되는 감수분열(減數分裂, meiosis)은 1883년에 에두아르 반 베네당(Edouard van Beneden, 벨기에, 1846 ~ 1910)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는데 말의 회충을 소재로 하여 수정 전의 세포는 염색체 수가 절반인 것을 관찰하였던 것이다.
1887년에 베네덴은 감수분열을 하여 체세포 염색체 수의 절반이 된 난자와 정자가 융합하여 수정란을 (접합자) 형성한다는 것을 밝혔다.
헤르트비히(Oskar Wilhelm August Hertwig, 독, 1849 ~ 1922 )는 1890년에 난자나 정자가 형성될 때 일어나는 감수분열의 의미를 발견하였다. 부와 모로부터 감수분열 없이 염색체를 모두 받아 수정된다면 자손의 세포는 염색체 수가 배가되므로 자손으로 내려갈수록 세포의 염색체 수가 증가해야 하지만 부모나 자손의 세포는 염색체 수가 같다. 감수분열의 의미는 부모와 자손의 세포에 같은 수의 염색체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정자와 난자의 염색체 수가 부모 세포의 반으로 줄어들어야 하는 것이다.
이로써 감수분열로 염색체 수가 반으로 줄어든 난자와 정자가 합쳐져서 자손이 생성된다는 유성생식의 도그마(dogma)가 확립되었던 것이다.
감수분열(meiosis)이라는 용어는 1905년 코니케(Koernicke)와 1906년 판텔(Pantel)과 드시네티(De Sinety)에 의해 명명되었다.
1891년 헤르만 헨킹(Hermann Henking, 독, 1858 ~ 1942)이 별 노린재(Pyrrhocoris apterus, 성염색채 XO형)의 정모세포 분열 중에 특별히 행동하는 염색체를 발견하고 그 의미를 알지 못해서 X염색체라고 명명했다. 1901년 클래런스 맥클렁(Clarence Erwin McClung, 미, 1870 ~ 1946)은 X 염색체가 성결정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밝혔다. 메뚜기를 연구한 결과 메뚜기 정자 중 절반에만 X 염색체가 존재하는 것을 발견하였다.
1903년 서턴(Walter Stanborough Sutton, 미, 1877 ~ 1916)은 대립 유전자는 상동 염색체 위에 존재하며, 염색체를 통해 자손으로 전달된다(서턴의 염색체설(染色體說, chromosome theory).
1905년 네티 마리아 스티븐스(Nettie Maria Stevens, 미, 1861 ~ 1912)이 갈색 거저리(Mealworm, 밀웜, Tenebrio molitor, 갈색 딱정벌레)에서 Y염색체를 발견하였으며 성별에 관여한다는 것을 밝혔다.
1926년에 모건(Thomas Hunt Morgan, 미, 1866 ~ 1945)은 대립 유전자는 상동 염색체의 같은 위치에 존재한다(모건의 유전자설(遺傳子說, theory of gene).
1952년 허시(Alfred Day Hershey, 미, 1908 ∼ 1997)가 조수인 마사 코레즈 체이스(Martha Cowles Chase, 1927 ~ 2003)와 함께 박테리오파지를 이용하여 DNA가 유전물질임을 증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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