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두법(인두 접종법, 우두 접종법)
김진국
천연두(天然痘, 痘瘡, 두창, 마마, Smallpox)는 모든 연령층에서 variola virus(smallpox virus)에 감염되는 전염병으로 치사율이 20 ~ 60%나 되는 무서운 병이다.
그런데 옛날부터 천연두(天然痘, Smallpox)를 한번 앓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이 병에 다시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옛날에도 건강한 사람에게 천연두 균을 감염시켜 천연두를 약하게 앓도록 하여 천연두에 다시 걸리지 않게 하곤 하였다. 그 결과 천연두에 걸리지 않은 사람도 있지만 천연두에 걸려 죽은 사람도 있었다. 이와 같이 천연두(天然痘, 마마 두)를 예방할 목적으로 백신(천연두 균이나 우두 균을 약화시킨 것)을 인체의 피부에 접종하는 것을 종두(種痘, vaccination)라 한다. 일반적으로 종두법(種痘法, vaccination, 백신)은 1796년에 에드워드 제너가 발견한 우두 균(우두바이러스, cowpox virus, 백시니아 바이러스, Vaccinia virus)을 이용한 인공 면역법(vaccination, 백신, 예방주사)을 말한다.
그리고 variolation은 인두 접종(人痘接種, variolation)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넓은 의미의 종두법(種痘法, variolation)은 천연두균을 이용한 인두 접종(人痘接種, variolation)이나 우두 균을 이용한 우두 접종(牛痘接種, vaccination)과 같은 천연두를 면역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접종하는 모두를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1. 인두(천연두) 접종법(variolation)
천연두(마마, 두창, smallpox)는 치사율이 높을 뿐만 아니라 살아남은 사람도 대부분은 골프공과 같은 흉한 흉터가 생긴다. 그리고 각막에 감염이 되어 실명하는 사람도 많았다. 천연두를 한번 앓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이 병에 다시 걸리지 않는다는 것은 18세기 이전부터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건강한 사람을 천연두 균에 감염시켜 천연두를 약하게 앓도록 하여 천연두에 걸리지 않게 하였는데 이것을 인두(천연두) 접종법(人痘接種法, variolation)이라 한다.
이와 같은 원시적인 종두는 일찍이 아시아, 아프리카, 인도 등지에서 일부 시행되었다.
이때의 종두 방법은 약하게 천연두를 앓은 사람들의 수포, 농, 딱지를 분말로 만들어 이를 다른 사람의 코나 피부를 통하여 주입하는 것이었다. 중국에서는 건강한 사람에게 소의 벼룩으로 만든 환약을 복용시켰다고 한다.
이 종두법(인두 종두법)은 1670년경에 무역상인(카리반)에 의해 오토만 제국으로 전래되었으며, 유럽은 18세기 초에 이스탄불에서 온 무역상들에 의해 전래되었다.
이어서 1721년 신대륙으로도 전파되었다.
이 방법의 부작용은 종두로 인해 천연두에 걸리는 것이었다. 부작용으로 천연두가 발생할 확률은 자연 발생하는 천연두 치사율의 1/10 이하였으므로 제너의 우두법이 확립될 때까지 일부 시행되었다.
제너도 8세에 종두(인두 접종)를 받았다.
이와 같이 약하게 천연두를 앓은 사람들의 수포, 농, 딱지를 분말로 만들어 이를 다른 사람의 코나 피부를 통하여 주입하는 것을 인두 접종법(人痘接種法, variolation)이라 한다.
2. 벤자민 제스티(Benjamin Jesty, 1736 ~ 1816))의 우두 접종법(Vaccination)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멕시코의 농촌에서는 사람이 약하게 우두(牛痘, cowpox, 소에서 발생하는 마마이며 증상은 천연두와 비슷하다)를 앓고 나면 치사율이 높은 천연두(天然痘, smallpox, 균 variola virus, smallpox virus)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 알려져 있었다.
1774년 영국의 돌셋 지방에 벤자민 제스티벤자민 제스티(Benjamin Jesty, 1736 ~ 1816)라는 농부가 살고 있었으며 그의 집에는 젖 짜는 여자가 두 명 있었다. 이들은 우두(牛痘, cowpox)를 앓은 적이 있었으며 천연두가 유행하는 동안에 천연두 환자들을 직접 간호하여도 감염되지 않았다. 이를 본 벤자민 제스티는 젖 짜는 여자들이 우두를 앓아 천연두에 대한 면역이 생겼다고 생각하였으며 그래서 인위적으로 사람에게 우두에 걸리게 하면 면역성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임신한 아내와 두 아들에게 종두(우두)를 시행하였다. 소의 유방에서 채취한 감염된 고름을 아내와 두 아들의 팔에 접종시켰다. 수일 후 두 아들은 우두를 약하게 앓다가 회복되었으나 아내는 심하게 앓게 되었다. 그 아내도 결국 회복되었으나 벤자민 제스티는 이로 인하여 주위 사람들로부터 심한 비난을 받았다.
그 후에도 벤자민 제스티는 다른 사람들에게 접종을 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벤자민 제스티가 우두를 접종한 첫 번째 사람이었다.
3. 에드워드 제너의 종두법(우두 접종법, Vaccination, jennerization)
에드워드 제너(Edward Jenner, 1749 ~ 1823)는 목사인 스티븐 제너(Stephen Jenner)의 세 번째로 태어났다.
13세 때 영국의 소드베리에서 7년간 외과의사인 다니엘 루들로우(Daniel Ludlow)의 수습생이 되었으며, 21세에 런던의 세인트 조지스 병원(St George's Hospital)으로 가서 존 헌터 의사(John Hunter, 1728 ~ 1793, 외과의사)의 지도를 받아 의사가 되었다. 헌터로부터 제너는 외과적 기술뿐만 아니라 의학에 과학적 탐구 방법을 이용하는 것을 배웠다.
1773년 24세에 고향에 돌아와 의사 개업을 하던 그는 농부들 사이에 떠돌던 우두에 걸린 사람은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듣게 되었다. 1788년에 제너는 농촌 생활 중에서 일어난 여러 사실로 보아 우두가 천연두를 예방하여 준다는 것을 확신하였다.
제너는 우두 환자의 화농 물질을 건강한 사람에게 접종을 하여 봄으로써 그의 가설을 검증할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1796년 5월 젖 짜는 여인에게서 우두가 발생하였다. 5월 14일 제너는 그 여자 손의 화농 물질을 채취하여 제임스 핍스라는 건강한 8세 소년의 팔에 반 인치 길이로 절개를 한 후 접종시켰다. 6주 후 제너는 천연두를 앓고 있는 다른 사람의 물집에서 내용물을 채취하여 그 소년의 팔에 접종을 하였으나 그 소년은 천연두에 걸리지 않았다. 그는 천연두 환자의 다른 여러 분비물이나 화농 물질을 이용하여 같은 과정을 수개월 후에 다시 시행하였으며 모두 같은 결과를 얻었다.
1796년 제너는 왕립학회에 이에 관한 논문을 제출하였으나 왕립학회는 이를 논문집에 게재하기를 거절하였으며 오히려 실험을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로 접종을 중단할 것을 경고하였다.
제너는 1798년 인접한 지역에서 우두가 발생한 사람을 찾아 실험을 다시 하였으며 우두를 접종한 사람은 천연두 균을 접종해도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같은 결과를 얻었다. 그리고 우두를 접종했을 때 우두에 걸려 고생을 덜하고 천연두를 예방할 수 있는 우두 접종의 적정량을 찾는 실험을 했다.
제너는 왕립학회가 자신의 논문을 인정해 주지 않음에 따라 추가 실험을 보충하는 등 총 23번의 실험을 하여 자비로 논문을 출판하였다.
제너의 논문에 대해 처음에는 비호의적이었으며 심한 비난도 있었지만 여러 의사들이 이 논문을 보고 우두 접종에 참여하여 효과를 입증하였다.
제너에 의해 천연두의 예방에 천연두 바이러스를 직접 접종하는 인두 접종법 대신에 병원성이 약한 우두 접종법(牛痘接種法, vaccination, 종두법 種痘法)이 확립되었다.
제너가 우두 접종을 처음으로 발견한 사람은 아니었으나 우두 접종이 천연두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임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고 우두 접종 방법을 개발한 사람이었다.
4. '백신(vaccine , Vakzin)' 용어 유래
면역에서 균이나 균의 독을 약하게 만든 것을 백신(Vaccines [vækˈsiːn] , 독일어 Vakzin [vaktsɪ́:n] 박친, 왁찐 ; 일본식 표기)이라 하고 백신을 접종하는 것을 '예방접종(vaccination)'이라 하는데 이 명칭은 파스퇴르가 붙였다.
파스퇴르(Louis Pasteur, 1822 ~ 1895)는 1880년 닭 콜레라균을 오래 방치하여 약화시킨 닭 콜레라균을 정상인 닭에 접종하여 면역을 생성케 하여 닭 콜레라를 예방하는 백신을 개발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은 예방법은 1796년에 에드워드 제너가 천연두에 우두(vaccinia)로 만든 것을 접종한 것이 백신의 시초이므로 우두(vaccinia)에서 유래한 백신(vaccine, Vakzin)이라는 용어를 붙인 것이다. 백신(vaccine, Vakzin)의 원조는 에드워드 제너가 개발한 우두 접종이라는 것이다.
5. 우리나라 우두 도입
우리나라의 인두 법은 1790년 박제가(1750 ~ 1805, 실학자, 규장각 검서관 특채, 무과 장원급제, 오위도총부 오위장, 영평 현감)가 처음 실시하였으며 제자인 이종인이 이어받아 연구하여 실시하고 인두 종법(人痘種法)의 전문서인 '시종통편(時種通編, 1817)'을 저술하였다.
그리고 정약용(1762 ~ 1836, 문과 급제, 실학자, 형조참의)이 저술한 의학서인 '마과회통(홍역 의서, 1798)'의 필사본에 인두 법과 우두법이 후에 추가 기술되어 있다.
지석영(池錫永, 1855 ~ 1935, 의사, 국어 학자, 독립협회 회원, 온순한 개화파, 1883년 문과급제, 승지, 동래부사, 1899년 관립의학교 초대 교장)은 유명한 한의사이며 역관인 박영선(朴英善)의 제자였다.
박영선(朴英善, 무과 급제)이 일본 수신사 김기수(金綺秀)를 수행하고 귀국하면서 종두귀감(種痘龜鑑)을 가져와 지석영에게 전해주었으며 이를 본 지석영은 우두를 접종하기 위해 1879년 부산에 있는 일본 병원인 제생의원(濟生醫院)과 일본 병사로부터 우드 접종법을 배우고 백신을 구입하여 접종했으나 구입한 백신이 금방 바닥이 났다. 그래서 우두 백신을 직접 제조하기로 결심하고 우두 백신 제조법을 알아내기 위해 1880년 일본 수신사 김홍집 수행원으로 따라가 일본 위생국 우두종계 소장인 기쿠치(Kikuchi)에게서 송아지를 이용하여 우두 백신 원료를 생성하는 방법과 우두 백신의 제조법 등을 완전히 배우고 돌아와 한국에서 계속 영구하여 '우두신설(牛痘新說, 1885)'을 저술하였다.
1923년에 조선총독부령으로 두 번씩 백신을 접종하던 것을 세 번으로 늘여 제1기는 생후 1년 이내, 제2기는 6세, 제3기는 12세로 강제하고 접종 연령 제한도 없애는 등 과도한 정책을 폈다(일본에서는 1 ~2회 접종).
해방 후 혼란하여 전 국민에게 우두가 시행되지 않아 1951년도에만 천연두에 4만여 명이 전염되어 1만여 명이 사망하였다.
우두법(牛痘法, vaccination)은 면역 물질을 소 마마(cowpox, 균 cowpox virus)를 앓는 소에게서 얻었지만 근래의 천연두 백신(smallpox vaccine)은 감염성 바키니아 바이러스(백시니아 바이러스 , Vaccinia virus)의 생바이러스로 만들어진다.
우두(vaccination)를 맞으면 손톱 크기 정도의 흉터가 생긴다. 1970년대까지는 우두를 위팔의 어깨 밑에 맞았다. 그런데 여성들은 노출이 유행하자 흉터가 드러나 흉하게 되었다. 그래서 우두 주사를 놓는 자리를 옮겨 어깨 위에 놓았으나 노출이 더욱 심해져 어깨까지 노출하려니 문제가 되었다.
1980년 세계 보건기구(WHO)는 천연두 균이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고 발표했다.
그래서 현재는 우두를 맞지 않는다(연구실에는 천연두 균을 보존 중이며 우두를 맞지 않아 면역이 없으므로 생화학무기로 이용될 위험성을 안고 있다. 그래서 2001년 천연두를 법정전염병으로 다시 지정하였다).
한번 우두 주사(vaccination)를 맞으면 3년 ~ 5년 혹은 10년 이상 동안 천연두를 예방할 수 있고(대략 95% 예방), 감염 시 백신 면역 접종을 해야 하며, 3일 이내에 백신 면역 접종을 시행해야 효과가 크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