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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미노비치(Michael Minovitch), 게리 플레드로(Gary Flandro)와 보이저 계획(Voyager Project)

진국 2024. 1. 10. 13:17

1957년 10월 4일 세계 최초로 소련이 스푸트니크(Sputnik)라는 인공위성을 발사하여 지구 둘레를 회전하는데 성공하였다. 미국도 뒤질세라 1957년 12월 6일에 첫 번째 인공위성 뱅가드(Vanguard)를 발사했지만 실패하고 1958년 1월 31일 익스플로러 1호(Explorer 1)를 성공적으로 발사하여 지구 들레를 회전하였다.
이렇게 소련과 미국의 우주 경쟁이 시작되었다.
지구를 돌던 인공위성에서 달 탐사와 행성탐사를 시작했다. 인류 최초의 행성 탐사선은 1960년 10월에 러시아(구 소련)에서 발사한 화성탐사선 마스 1호(Mars 1960A)였지만 발사에 실패하였으며, 미국은 최초의 금성 탐사선 매리너 1호(Mariner 1)를 1962년 7월에 발사하였지만 실패하고 1962년 8월에 금성 탐사선 매리너 2호(Mariner 2)가 처음으로 발사에 성공하여 금성에 접근하였다.
러시아(구 소련)에서 발사한 화성탐사선 마스 3호(Mars 3)는 1971년에 화성에 착륙하였다.
미국과 러시아의 행성 탐사는 지구에 가까운 금성과 화성에 집중하였다.
우주탐사 계획에는 오랜 기간 사전 준비를 하여야 한다. 나사(NASA)에서는 거리가 가까운 달과 금성, 화성의 탐사 계획과 기술이 완성되어 이를 실행하는 동안 다음에 실행할 거리가 먼 내행성과 외행성 탐사를 위한 계획과 기술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1925년에 독일의 월터 호먼(Walter Hohmann, 1880 ~ 1945, 우주공학, 최소 에너지 소비 궤도)은 지구가 태양을 도는 공전궤도와 탐험하려고 하는 행성의 공전궤도를 타원으로 연결하는 비행궤도를 만들어 비행하면 행성의 공전 에너지를 이용하므로 우주선을 최소의 에너지로 행성에 보낼 수 있다고 제안했었는데 이를 ‘호먼 궤도(Hohmann orbit)’라고 한다.
금성, 화성 등 가까운 행성 탐사에 ‘호먼 궤도’가 이용되었다.
1961년 여름 수학을 전공한 마이클 미노비치(Michael Minovitch, 1936 ~, 수학자, 천문학자, 발명가)라는 UCLA 대학원생이 NASA 부설 제트 추진 연구소(JPL,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 의해 운영)에서 인턴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가까운 행성과 달 탐사를 위해 인공위성 발사가 한창 진행 중인 때에 외로이 외행성(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탐사에 대한 연구를 하였다.
미노비치는 여러 외행성에 있어서 궤도 간의 관계를 계산하여 175년마다 행성들이 일렬로 정렬한다는 것을 발견하였으며 1970 년대 후반에 곧 그러한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을 찾아냈다. 여러 외행성을 하나의 우주선으로 탐사할 수 있는 호먼 궤도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주선이 먼 거리를 여행하는 데는 추진력을 내기 위한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데 우주선에 싣는 에너지양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 에너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미노비치는 수학적으로 삼체(삼체문제, Three Body Problem, 태양과 행성과 소행성 혹은 혜성 혹은 인공위성 - 뉴턴도 해결 못한 300년 동안의 천문학 난제로 풀지 못한다는 것이 증명되어 있었다. 케플러 법칙은 이체문제)의 운동 관계를 연구했다. 혜성이 태양 쪽으로 접근하여 돌아갈 때 혜성의 운동이 어떻게 변하는가를 알아내는 것이었다.
그래서 태양과 행성의 중력이 세 번째 물체인 혜성의 궤도에 미치는 영향을 정확히 계산하고자 하였다.
미노비치는 이 연구에 최신의 IBM7090 컴퓨터를 사용할 기회를 얻어 단 몇 개월 만에 중력 보조(Gravity Assist) 또는 스윙 바이(Swingby)라고 불리는 현상을 발견하였다. 그는 우주선을 행성 근처에 비스듬히 접근시키면 그 행성의 중력에 의하여 우주선이 끌려 들어가면서 속도가 빨라지고 방향을 바꾸어 빠져나올 때 행성의 중력에 의해 속력이 느려지지만 그 행성의 자전과 공전하는 에너지가 우주선에 더해져 우주선이 처음 속력보다 빨라지고 우주선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주선이 행성을 스치듯이 지나면서 방향을 바꾸면 행성에 의한 가속력 덕분에 더 먼 거리를 여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호먼 궤도보다 훨씬 큰 에너지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마이클 미노비치(Michael Minovitch)는 여러 외행성들이 175년마다 일렬로 정렬하는 때에 하나의 우주선으로 여러 외행성을 한 번에 텀사하는 계획을 세웠다. 우주선이 행성에 착륙하는 것이 아니라 행성을 스쳐지나면서 조사하는 것이며 한 행성을 스쳐지날 때마다 중력 보조(Gravity Assist, Swingby, 스윙 바이)로 에너지를 공급받아 다음 행성에 도달하고 또 에너지를 공급받아 다음 행성에 도달하게 하는 것이다.
여러 외행성 탐사에 외행성마다 각각의 우주선을 보내면 총 30 ~ 40년이 소요되지만 중력 보조를 이용하여 하나의 우주선으로 여러 행성을 한 번에 탐험하면 기간을 10년으로 단축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이클 미노 비치가 연구한 것은 탐사 기간과 소요예산을 획기적으로 줄여 외행성을 탐사할 수 있는 계획이었다.  
마이클 미노 비치(Michael Minovitch)는 1961년 여름 NASA 부설 제트 추진 연구소(JPL)에 그가 연구한 논문을 제출했지만 제트 추진 연구소의 궤도 연구 책임자는 불가능한 것이라 판단하여 기각하였다.
미노비치는 인턴 기간이 끝나 제트 추진 연구소를 떠났다. 시대를 앞선 마이클 미노 비치의 연구에 정확한 판단을 할 능력이 없는 관리자의 결정, 그것은 미노 비치에겐 큰 비극이었다.
그러나 그의 연구는 그 후 그랜드 투어(grand tour,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모두를 한 번에 탐사)의 시초가 되었다.
게리 아놀드 플레드로(Gary Arnold Flandro, 미국, 1934 ~, 수학자, 우주공학자, UTSI 교수, 1998년 나사 최고 성과 메달 수상)는 미국 유타 주 솔트레이크 시티에서 1934년에 태어났다.
1957년 유타 대학에서 기계 공학 학사 학위를 취득하고 캘리포니아 공과 대학에서 1960년에 항공 석사 학위와 1967년에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플레드로(Flandro)는 박사과정 중인 1964 년 NASA 부설 제트 추진 연구소(JPL,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 의해 운영)에 여름 인턴으로 채용되어 태양계에서 지구밖에 있는 외행성을 탐사하기 위한 궤도를 연구하였다.
수학자인 플레드로(Flandro)는 여러 외행성을 한 궤도로 호먼 궤도를 작성하기로 계획하고 태양계의 지구밖에 있는 외행성(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들의 공전 계도와 인공위성의 속력에 따른 그들 간의 배열 위치를 계산하던 중 인공위성의 지나가는 속도에 맞게 행성이 인공위성이 지나가는 궤도에 배열되는 희귀한 정렬이 176년 주기로 일어난다는 것을 재발견하였으며 1983년에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이 전갈자리에서 사수자리에 걸친 대략 50도 범위에 늘어선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따라서 1976년부터 1978년 사이에 탐사선을 쏘아 올리면, 이 네 행성을 모두 순서대로 스쳐 지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거리가 짧은 달이나 금성, 화성을 탐사하는 것이 아니라  수성이나 토성 등은 거리가 너무 멀어 우주선 자체의 추진력으로는 호먼 궤도를 이용해도 도달할 수 없었다. 그래서 우주선으로 거리가 먼 외행성으로 여행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는 방법의 연구가 필요했다. 그런데 1961년 나사 부설 제트추진연구소에서 인턴으로 근무했던 대학원생 마이클 미노비치가 제안한 행성의 인력을 이용하여 우주선의 새로운 추진력을 얻는 스윙 바이(Swingby) 또는‘중력 도움(Gravity Assist)’이라고도 불리는 현상에 주목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스윙 바이의 효과에 대해 의문에 싸여 있었다.
1965년 수학자인 플레드로(Flandro)는 계산으로 스윙 바이(Swingby)를 다시 증명했다.
미노비치의 연구를 인용한 그의 논문은 1966년에 출판되었다.
1965년 나사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 미국 국립 과학 학술원의 우주 과학위원회에 여러 가지의 외행성 탐사 계획이 제안되었다.
  제안된 여러 계획 중에서 플레드로(Flandro)가 계산하여 발표한 이론에서 유래한 그랜드 투어(grand tour,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모두를 한 번에 탐사) 계획은 각각의 외행성를 개별로 탐사하는 계획보다 훨씬 경제적이었다. 하나의 우주선이 스윙 바이(Swingby)로 지나는 여러 행성들의 중력장을 이용하고 여러 행성을 연속해서 한 번에 탐사하기 때문이다. 스윙 바이(Swingby)로 에너지를 공급받지 않고 각각의 우주선으로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을 직접 비행하는 데 30년이 걸리는 것에 비해, 여러 외행성 궤도에 맞추어 스윙 바이(Swingby)을 이용하면 8년에서 13년 이내에 모든 외행성을 조사할 수 있다. 스윙 바이(Swingby)로 속도를 높이고 궤도를 변경하여 비행시간을 줄이는 것이다. 그랜드 투어(grand tour)는 예산과 기간을 줄이는 획기적인 계획이었다.
그래서 1965년 미국 국립 과학 학술원의 우주 과학위원회는 논의하여 플레드로(Flandro)가 발표한 이론에서 유래한 그랜드 투어(grand tour,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모두를 한 번에 탐사)계획을 선정하여 받아들였다. 미국 대통령 정책자문 위원인 맥스웰 헌터(Maxwell Hunter, 1922 ~  2001, 비행체 엔지니어, 우주 과학위원회 회원)도 대통령에게 강력히 조언하여 정책으로 채택되도록 노력했다.
그리하여  메리너 11호와 12호는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을 탐사할 그랜드 투어(grand tour,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모두를 한 번에 탐사) 프로그램으로 예정되었다.
그랜드 투어(grand tour) 프로그램은 목성 이후의 행성들을 탐사하는 것이었다. 1976년부터 1978년 사이에 탐사선을 발사하면 외행성인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명왕성을 차례로 한 번에 탐사할 수 있는 176년 만에 한 번씩 찾아오는 절호의 기회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때 미국은 월남전쟁으로 나사의 예산이 삭감되자 1969년 일반 국민에게 별 인기가 없는 그랜드 투어(grand tour)를 실행할 매리너 11호와 12호 계획을 취소하였다.
1969년 7월 20일에는 일반 국민이 열광하는 달 탐사 프로그램인 아폴로 11호(Apollo 11)가 달에 착륙하여 암스트롱(Neil Armstrong)과 올드린(Edwin Aldrin, Jr.)이 인류 최초로 달에 첫걸음(moonwalk)을 내디뎠다.
1971년 마리너 9호는 화성 주위를 돌며 사진을 찍었으며, 1973년 최초로 스윙 바이를 적용한 매리너 10호는 금성과 수성을 돌며 사진을 찍었다.
외행성 탐사선인 파이어니어 10호와 파이어니어 11호가 1972년과 1973년에 각각 발사되어  ‘스윙 바이’를 실험한 결과 목성의 중력을 이용하여 탐사선의 비행 속도를 높이고 방향을 바꾸는 데에 성공하였으며 목성은 태양계 행성 중에서 질량이 가장 커서 스윙 바이를 적용시키기에 매우 적합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구체적으로 파이어니어 10호가 1973 년 12 월 목성을 지나갈 때 속도가 52,000 km / h에서 132,000 km / h로 증가했던 것이다.
‘스윙 바이(Swing By)’는 천체의 중력을 이용해 우주 로켓의 한계 속도를 끌어올리는 확실한 항법이란 것이 확인되었다.
1972년에 아폴로 계획 후속의 유인 우주선으로 일반 대중이 열광할 우주왕복선(宇宙往復船, space shuttle) 계획이 승인되었다.
그리고 적은 예산으로 많은 과학적 성과를 얻을 수 있는 그랜드 투어(grand tour,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모두를 한 번에 탐사) 계획도 다시 부활되었다.
그러나 그랜드 투어 계획은 예산 감축으로 축소 분리되어 1972년에 매리너 주피터-새턴(Mariner Jupiter-Saturn) 계획으로 변경되었다.
매리너 주피터-새턴(Mariner Jupiter-Saturn) 계획은 축소되어 2개의 행성인 목성과 토성만을 탐사하는 것이었다.
이 계획에 불만이고 그랜드 투어에 미련을 가진 제트추진연구소(JPL, Jet Propulsion Laboratory)의 프로그램 설계자들은 계획된 본 임무보다 더 많은 탐사를 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설계했다.
176년 주기로 행성이 일렬로 늘어서는 절호의 기회를 실패로 놓치지 않기 위해 두 개의 우주선을 제작하여 발사함으로써 하나가 실패해도 다른 우주선이 대체할 수 있도록 계획하였다.
매리너 주피터-새턴(Mariner Jupiter-Saturn)에는 각종 장치 제어와 통신 등을 가동하기 위한 에너지원으로는 플루토늄(plutonium) 방사성 동위 원소 발전기(RTG)를 탐재했다. 매리너 주피터-새턴(Mariner Jupiter-Saturn)은 외행성 탐사선이므로 태양에서 멀어질수록 태양빛이 점차 약해져 태양전지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카메라, 자력계, 플라즈마 하위 시스템(PLS), 행성 파장 천문학 실험기(PRA), 자외선 관찰(UVS), 디지털 테이프 기록기(초당 1.4 킬로비트의 정보만 기록할 수 있음), 자이로스코프 등 각종 관측 장비, 이들 장비를 제어하는 컴퓨터,  이들의 관측정보를 전송하는 거리가 너무나 멀어 큰 안테나를 부착한 전송 장비들이 탐재되었으며 지구에서 이 모든 장비를 제어할 수 있게 했다.
이들 장비는 영하 253도 등 우주의 특수한 환경 속에서도 작동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우주선은 버트 루탄(Burt Rutan, 1943 ~, 항공기 설계)이 설계한 루탄 보이저호였다.
마리너 주피터-새턴(Mariner Jupiter-Saturn) 계획의 대표는 나사(NASA) 수석 과학자 에드워드 스톤(Edward C. Stone, 1936 ~, 우주과학자) 박사가 맡았다.
1977년에 마리너 주피터-새턴(Mariner Jupiter-Saturn) 계획은 보이저(Voyager, 여행자)로 다시 이름이 변경되었다.
나사는 1977년 8월 20일 보이저 2호를, 이어 16일 후인 1977년 9월 5일 보이저 1호를 발사했다. 임무 수행 중 차질이 발생할 경우 보완하여 대비할 수 있도록 두 대를 제작하였으며 두 대를 같은 날 발사할 예정이었으나 보이저 1호가 발사 준비 중에 고장을 일으켜 보이저 2호 보다 늦게 발사되었던 것아다.
1977년 9월 5일에 발사된 보이저 1호는 보이저 2호보다 늦게 출발했지만 속력을 빨리하여 보이저 2호를 추월하여 탐사를 먼저 끝냈다. 보이저 1호는 1979년 목성을 통과해 1980년 토성에 도달했다. 이 행성들과 그 위성들에 관한 많은 자료와 사진을 전송했다. 1989년 본래 임무를 마친 뒤에는 태양계 밖으로 나가는 궤도에 진입했다.
보이저 탐사선은 행성들과 그 위성들에 대해 자세한 정보를 전송했다. 예를 들면 목성 주위의 여러 가지 구름 형태와 갈릴레오 위성 가운데 하나인 이오의 화산활동 등이다. 토성에는 알려진 고리 외에도 수천 개의 작은 고리들이 있었다. 이어 토성의 위성인  타이탄(공기와 유기체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어 관심이 가장 큰 위성이었음)에 근접하는 궤도를 돌면서 정보를 전송하였고 황도면에서 분리된 궤도에 들어감으로써 더 이상 행성을 탐사할 수 없게 되었다. 보이저 1호는 타이탄 위성 탐사를 위해 탐사 계획에서 천왕성과 명왕성을 제외하였던 것이다. 이것으로 보이저 1호의 행성 탐사 미션은 종료되었다.
2013년 태양계를 탈출하여 17 km/s의 속도로 태양계에서 멀어지고 있다.
1990년 태양계를 벗어나기 전 보이저 1호는 지구에서 보낸 지시에 따라 신호 전달에 6시간이 걸리는 61억 Km 거리의 명왕성 근처 우주 공간에서 카메라 방향을 돌려 지구를 찍었는데 60장의 사진을 조합하여 만들었다. 이 제안을 했던 칼 에드워드 세이건(Carl Edward Sagan, 1934 ∼ 1996, 천체물리학자, 코넬 대학교수, 과학 저술가)은 이 사진을 표지로 실은 저서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에서 우주 속 인류의 위치를 바라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 판단해서 제안했다고 한다. 칼 세이건은 나사의 유능한 연구원일 뿐만 아니라 공영방송 PBS와 합의하여 1980년 과학 다큐멘터리 '코스모스'를 제작 방영하는 등 과학 대중화에 힘을 기울였으며 천체 물리과 출신으로서는 상당히 인기영합적인 저술가였다.
2020년 보이저 1호는 약 222억 Km 떨어진 항성 사이(interstellar, 인터스텔라)을 비행하고 있다.
1977년 8월 20일에 발사된 보이저 2호는 1호보다 늦은 속력으로 비행하여, 1979년에 목성을, 1981년에는 토성을, 1986년에는 천왕성을, 1989년에는 해왕성을 통과했다.
보이저 2호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우주 탐사선이라고 불릴 만큼 많은 발견을 하였다.
네 개의 외행성인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을 차례로 방문하였고  이들 외행성들의 구조와 구성 물질, 고리를 조사했다. 목성의  위성인 이오, 유로파, 가니메데, 칼리스토의 정보와 토성의 타이탄(공기가 있어 유기체 존재 가능성 높음) 등 여러 위성에 대한 정보를 전송했다. 만약 보이저 1호가 타이탄 궤도에 들어가지 못하여 타이탄(공기와 유기체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어 관심이 가장 큰 위성이었음)에 관한 정보를 얻지 못하면 보이저 2호가 다시 타이탄 궤도에 들어갈 계획이었지만 보이저 1호가 성공함으로써 보이저 2호는 타이탄 궤도에 진입하지 않고 천왕성 해왕성을 탐사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해왕성과 천왕성의 온도는 모두 극저온인 59K이다.
천왕성에는 10개의 위성과 상당히 강한 자기장이 발견되었다.
해왕성을 근접 통과하면서 3개의 고리, 6개의 위성과 지구의 밴앨런대와 비슷한 강한 자기장 영역(zone)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이후로는 보이저호의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카메라 작동을 멈추었다고 한다.
보이저 2호는  2018년 태양계를 벗어났으며 2020년에는 전파속도로 17시간 거리인 약 185억 Km 떨어진 항성 사이(interstellar, 인터스텔라)에서 성간 탐사(Voyager Interstellar Mission , VIM)를 계속하고 있다.
보이저 2호는 플루토늄(plutonium) 방사성 동위 원소 발전기(RTG)의 발전량이 60% 감소되어 작동이 어려워지고 있으나 주기적으로 자료를 전송하고 있다.
많은 관측기구들이 수명이 다하거나 에너지 부족으로 기능이 멈추어도 여전히 성간 관측기구들이 작동하고 있으므로 에너지 부족으로 통신이 멈출 때까지 보이저호는 유용한 성간 정보를 보내올 것이다.
나사의 보이저 관리자들은  2027년경까지 보이저호가 작동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