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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茶, tea), 커피(Coffee) 그리고 코코아(cocoa)

진국 2022. 1. 11. 03:00

차(茶, tea), 커피(Coffee), 코코아(cocoa)는 세계 3대 음료이다.

1. 차(茶, tea)

가. 차(茶, tea)의 역사

차는 음료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BC 2737년 염제 신농씨(炎帝 神農氏, 삼황오제 三皇五帝 시기)가 데리고 다니던 장서(獐鼠, 노루와 쥐)가 파두(巴豆, purging croton 퍼징 크로톤, Croton tiglium L. 크로톤 티글리움, 독성이 강해 설사를 일으키는 콩의 일종)를 먹고 설사병에 걸렸는데 차나무 잎에서 떨어지는 이슬을 먹고 해독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지금 까지 남아있는 명확한 기록으로는 기원전 59년에 작성된 '동약(僮約)'이라는 노예 계약서이다. 이 기록은 전한(前漢)의 선제(宣帝, BC 57 ~ BC 2) 때 왕포(王褒, BC 90 ~ BC 51)라는 선비가 작성한 계약문서로 사 온 종이 해야 할 일이 기록되어 있는데 차를 사 오는 일과 손님에게 차를 끓여 대접하는 일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전한 시대에 이미 차가 거래되고 있었고, 차를 끓여 손님을 대접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동진(東晋) 시대의 상거(常璩, 291 ~ 361)가 쓴 화양국지(華陽國志, 고대부터 4세기까지 파, 촉, 한중 등 중국 서남부 지역의 역사서)에는 주나라 무왕(周 武王, ? ~ BC 1043) 때 중국 남방 파촉(巴蜀,  쓰촨 성) 지역에 향기 나는 차가 있다는 것과 주나라 무왕에게 파촉 지역의 차를 공납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차나무는 중국의 서남부 지역인 윈난성(운남성), 구이저우성(귀주성), 쓰촨성(사천성), 미얀마, 인도 등지가 원산지이다. 아열대인 이 지방은 추위에 민감한 차나무가 생장하기에 알맞다.
차는 추운 지방에서는 겨울철에 찻잎이 낙엽으로 떨어지므로 봄에 차로 사용할 수 있는 잎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윈난성 린창시 봉경현에서 수령이 3200년 된 야생 대차수(野生大茶樹, wild arboreous tea plant, 사람이 차로 이용하는 자연 번식된 야생 차 교목)가 발견되었다.
당나라의 문인 육우(陸羽, 출생 미상 ~ 804, 당나라, 후베이성)가 780년에 기록한 세계 최초의 차 전문서적 다경(茶經)에 의해 차가 티베트, 우리나라, 일본 등 중국의 주변 국가에 알려지게  되었다.
중국은 당나라 시대를 거치면서 차가 널리 사용되었다.
우리나라는 661년 금관가야의 시조 수로왕 제사에 차를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차는 신라 선덕여왕(재위 632 ~ 647, 신라 27대 왕) 때부터 있었지만 흥덕왕(신라 42대 왕, 재위 826 ∼ 836) 3년(828년)에 당나라에 다녀온 대렴(大廉, 김대렴 金大廉)이 차 씨를 가져왔다는 기록이 있다.
우리나라는 기후가 차 생산에 맞지 않아 남부의 일부 지방에서 생산되어 상류 귀족층과 절에서만 주로 사용되었으며 평민들은 생수의 질이 좋아 차를 이용할 필요성이 없었다. 더욱이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유교의 영향으로 일부 특수층을 제외한 평민은 물론 귀족층에도 차문화가 없어지고 술 문화가 더욱 성행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어디에도 차를 마실 수 있는 길거리 찻집은 없었으며 주막과 기생문화만이 있었던 것이다.
일본에는 당나라 유학승 사이초(最澄, 767 ~ 822)가 805년에 차 씨앗을 들여와 히요시다원(日吉茶園)을 만들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하며 12세기 초에 유학승 에이사이(榮西 1141∼1215)가 중국에서 많은 양의 차 씨앗을 들여와 차나무 재배가 본격화되었다고 한다.
인도는 기원전 300 ~ 200년경부터 인더스에서 자국 기원의 차나무에서 생산한 차를 마셔왔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아라비아에서는 9세기에 이미 무역상에 의해 중국차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널리 이용되지 않았다.
이렇게 아시아 전역으로 전파된 차는 마침내 16세기에 이르러 유럽에까지 전파되었다.
유럽 사람들에게 중국차를 처음 소개한 인물은 베네치아의 저술가인 G. 라무시오(Giovanni Battista Ramusio, 1487 ~ 1557)였다. 그의 사후(1559)에 출간된 세 권의 저서 항해와 여행(Navigationi e Viaggi)에서 라무시오는 중국에서는 어디에서나 차를 마신다고 기록했다.
16세기 대항해 시대에 중국의 차가 말라카(Malacca)와 인도를 거쳐 유럽에 전해졌다.
  네덜란드가 스페인과의 독립전쟁에서 휴전한 1609년경부터 세계의 제해권이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네덜란드와 영국으로 넘어가면서 중국의 차는 먼저 네덜란드인에 의해 1610년부터 본격적으로 유럽에 전파되기 시작했다. 네덜란드와 영국 두 나라의 동인도회사는 동양의 차를 유럽 각국으로 운반하였으며 동남아시아 식민지에서 차나무를 재배하기도 했다.
먼저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는 1609에 일본에 상관을 설치하여 1610년에는 일본차를, 1637년에는 중국차를 유럽으로 실어갔다.  영국에는 1630년대 중반에, 독일에는 1635년에, 프랑스에는 1648년에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를 통하여 차가 전파되었다.
처음에는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가 1610년 일본 녹차를 인도네시아의 자바(바타비아)를 거쳐 유럽에 수출하였지만 1650년경부터는 영국이 중국차를 주로 공급하였다.
그 시절 차는 긴 항해를 하는 선원들의 필수품이었다. 선원들은 오랜 항해로 신선한 채소의 공급이 어려워 비타민C 결핍으로 발생되는 괴혈병으로 고생하였는데 차로 해결하였던 것이다.
1658년에 런던에서 차를 사고팔았다는 기록이 있다.
러시아에는 1567년 명(明) 나라를 방문한 코사크 족장(Cossack Atamans, 코사크 아타만) 페트로프(Petrov)와 얄리셰프(Yallyshev)가 중국의 차를 처음 접하고 소개했다. 그 후 중국차는 청(淸) 나라 태조의 사신에 의하여 1618년 모스크바의 미카엘 1세(Czar Michael I, 미하일 1세 표도르비치, 재위 1613  ~ 1645)에게 전했으며 그 후 대상들에 의해 수입되었다.
유럽에는 16세기에 차보다 먼저 커피가 전파되었다.
영국에서도 커피를 즐겨 마셨다. 17세기말에는 런던에 약 2천여 개의 커피하우스가 있었다. 그런데 프랑스와는 달리 영국의 커피하우스에는 성인 남자들만 출입하였으므로 여자들은 불만이었다.
초기의 커피는 대부분 오스만 제국에서 수입되었지만 18세기말에 네덜란드가 실론(스리랑카)을 점령한 후부터는 실론에서 재배한 커피를 마셨다. 그 후 실론의 커피나무에 병이 들자 인기가 높아진 차나무로 대치되어 커피 공급이 어려워졌다.
더욱이 영국에서는 커피가 여자와 아이들에게 해롭다는 소문이 퍼져 커피하우스는 남자의 전유물이 되었다. 그래서 후에 커피하우스는 선원들이나 가는 칙칙한 장소라는 고정관념이 생겼으며 중국으로부터 차가 수입되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커피의 인기는 하락했던 것이다.
그때 커피하우스에서는 홍차도 팔았으며 홍차에 설탕을 넣기도 했다.
러시아는 중국과 네르친스크 조약(1689) 및 캬흐타 조약(1727)을 체결하고, 낙타로 중국의 차나무를 수입하여 1847년에 그루지야에서 첫 차나무 재배에 성공했다.
미국에는 17세기 중엽 네덜란드 출신 이민자들이 뉴암스테르담에 정착하면서 차가 전파되었다.
영국에서 특별히 차문화가 널리 퍼진 것은 영국의 찰스 2세(Charles II, 1630 ~ 1685)가 스페인에 합병된 포르투갈의 케서린 공주(Catherine, 1638 ~ 1705, 카타리나, 결혼지참금으로 인도 봄베이와 모로코의 탕헤르를 가져간 것으로 유명함)와 1661년에 결혼하였는데 영국으로 시집온 케서린 공주는 afternoon tea time을 열어 귀족사회에서 차문화를 확산시킨 것이었다.
이때에는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었다. 유럽에서는 중국 문화를 동경하여 중국풍(中國風, Sinicism 영,  sinisant 프)으로 꾸민 집에서 중국 비단으로 만든 옷을 입고 중국 차를 끓여서 중국 도자기로 마시는 것이 귀족들 사이에 유행하는 풍속이었던 것이다.
커피와는 달리 홍차는 모든 사람이 즐겨 마시게 되었고 그래서 남녀 모두 출입 가능한 플레저 가든(Pleasure garden)이라는 티파티 장소도 생겨났다.
차나무는 중국 남부, 인도, 미얀마 등 여러 나라에서 자생하고 있었지만 중국이 차 음료를 처음 개발하였고 일찍부터 차문화가 국내에 널리 퍼져 대량 소비가 일어나 수요가 폭증함에 따라 필요한 양을 대량 생산하는 체계와 유통경로가 갖추어졌으며 더욱이 중국은 일찍이 중국 국내뿐만 아니라 주변국에 수출까지 하였다.
유럽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대부분의 차가 생산되고 구입할 수 있는 집산지가 있는 중국으로부터 수많은 양의 차를 수입하였던 것이다.
중국은 차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알고 차나무가 외국으로 반출되는 것을 차단했으므로 영국은 필요한 차를 중국으로부터 수입해야만 했다.
홍차는 영국의 산업혁명으로 노동시간이 늘어난 노동자들의 각성제로 쓰였던 것이다.
영국은 점차적으로 차문화가 노동자와 농민 등 하층민에 까지 일반화되어 하루에 5~6회 이상 티 타임(tea time, early tea(bed tea), breakfast tea, eleven tea, mid day tea, afternoon tea, evening tea, after dinner tea, night tea 등)을 가지게 되었다. 초기엔 차에 과세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찻값이 높지 않아 임금이 낮은 노동자 등 하층민까지도 차를 애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영국은 차 수요량이 점점 늘어나 어마 어마한 양의 차를 수입하였으므로 결국에는 무역에 있어서 크게 적자를 보게 되었던 것이다.
영국은 그때 산업혁명으로 대량 생산하여 유럽에서 인기를 끌었던 모직, 면직 제품을 중국에 수출하고자 했으나 중국은 개항한 항구인 광동으로만 무역을 제한했기 때문에 이들 제품의 중국 수요가 거의 없어 무역역조 현상이 심화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영국은 중국에 수출할 새로운 품목을 찾던 중 아편으로 선정하고 인도에서 1757년의 플라시 전투 이후부터 뱅갈 지방(방글라데시와 그 남쪽)에 양귀비를 대량으로 재배하여 생산한 아편을 중국에 밀수출하는 삼각무역(영국은 인도에 면화 제품 수출, 인도는 중국에 아편을, 중국은 영국에 차 수출)을 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1839년 임칙서(林則徐, 欽差大臣 흠차대신, 황제를 대리하는 대신)를 보내어 아편 밀수를 본격적으로 단속하였다.
이에 불만을 가진 영국이 1841년 1차, 1857년 2차 아편전쟁을 일으켜 난징조약(1842)과 베이징조약(1860)의 불평등 조약을 맺어 홍콩을 정령하고 배상금을 받았으며 중국을 개방시켰다.
아편전쟁 전까지는 중국의 국내법이 국제법이었을 정도로 세계 최고의 대국이었으나 아편전쟁으로 중국이 세계 열강의 먹이가 되어 무너졌던 것이다.
그리고 영국은 플라시 전투(1757) 후 인도 동북부와 실론 등에 차를 재배하여 산업혁명으로 늘어난 차 수요를 충당하려고 시도했다.
영국 동인도회사의 브루스(Bruce) 형제 중 형 로버트 브루스(Robert Bruce, 1789 ~ 1824, 무기 상인, 용병)가 1823년에 아쌈 지방에서 고차수(古茶樹)를 발견하였다.
다음 해엔 동생인 찰스 알렉산더 브루스(Charles Alexander Bruce, 1793 ~ 1871, 해군장교, 탐험가,  아삼차의 아버지)가 아쌈지역에서 고차수(古茶樹)를 발견하였다.
1823년 로버트 브루스(Robert Bruce)는 싱포족(Singhpo)으로부터 홍차묘목과 종자를 얻어 아삼주 정원에 심었다. 로버트 브루스가 사망하자 동생인 찰스 알렉산더 브루스는 형의 일기를 보고  싱포족(Singhpo)으로부터 홍차묘목과 종자를 얻어 재배하여 유명한 아쌈 홍차(Assam tea)종을 개발하였다.
그리고 영국의 동인도회사는 중국의 우수한 홍차묘목을 밀반출하여 인도에서 재배하여 홍차를 생산할 계획을 세웠으며 찰스 알렉산더 브루스(Charles Alexander Bruce, 1793 ~ 1871, 아삼차의 아버지)의 지휘에 따라 로버트 포춘(Robert Fortune)이 1848 ~ 1851년에 중국에서 밀반출한 홍차묘목을 인도 아쌈에서 재배하는 데 성공하였고 아치볼드 캠벨(Archibald Campbell) 박사가 홍차나무 종자를 발아시켜 대량증식에 성공하여 유명한 다르질링 홍차(Darjeeling tea)를 생산하게 되었으며 대량의 홍차를 영국으로 수출하게 되었다.
인도에서 차나무 재배면적이 점점 늘어나 현재는 인도가 세계 최대의 차 생산국이 되었다.
동남아시아 지역의 차 재배는 유럽인의 식민지 시대에 시작된 것이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는 1823년에 일본에 살던 P. F. 시볼드(Philipp Franz Balthasar von Siebold, 1796 ~ 1866, 생물학자, 네덜란드)로 하여금 일본의 차나무 씨앗을 수입하게 하여 재배하였던 것이다.
미국에서는 영국과 마찬가지로 차를 애용하였으나 보스턴 차 사건(1773) 이후 영국에 대한 저항운동의 일환(一環)으로 영국의 동인도회사가 공급하는 차 대신 중남미의 값싼 커피를 이용하는 사람이  많아졌던 것이다.
편리하게 Tea를 사용하게 하는 티백(Tea bag, Tea-leaf holder)은 미국 여성인 로버타 C. 로슨(Roberta C. Lawson)과 메리 몰라렌(Mary Molaren)이 1901년에 발명하였다.

나. 차(茶, 다)와 Tea의 어원

차(茶, 다)는 차와 다로 다르게 불리는데 광조우(廣東省, 광둥성, 중국 남부의 마카오와 홍콩 인접한 성)의 광둥어(廣東語)로는 '차(Cha)', 푸젠성(福建省, Fujian, 중국의 남동부, 타이완 해협에 면하는 성)의  항구도시 샤먼(厦門) 지방의 방언 ‘테(Te)’이다.
그래서 푸젠어(福建語)로는 '테(Te)'로 불리고 광둥성과 북경 등에서는 ‘차(Cha)’로 불린 데서 기원한다.
동남아에서 활발히 무역한 네덜란드는 푸젠성의 테(Te)를 사용하였으므로 유럽에 Tea로 전해졌으며 포르투갈은 광둥성의 영향으로 유럽에 Cha로 전하였다.
유럽으로의 차 수입을 네덜란드가 주로 하다가 영국이 이어받았으므로 영어 Tea로 통용된 것이다.

다. 차나무의 생물학적 분류

종자식물 문 (Spermatophyta)
쌍자엽(雙子葉) 식물 강 (Dicotyledones)
물레나무 목(Guttiferales)
산차나무과 (Theaceae)
동백나무속(Camellia)
차종(sinensis)
차나무(茶)는 학명이 Camellia sinensis L.이며 아열대 상록이고 활엽 관목(작은 교목)이다. 100여 종의 변종이 있다.

라. 음료수 '차(茶, Tea)'

차(茶, Tea)는  차나무과(Theaceae)에 속하는 다년생 상록 식물인 차나무(Camellia sinensis L.)의 어린잎(葉)이나 순(筍)을 재료로 하여 만든 기호음료이다.
차의 특성은 일반적으로 커피보다는 타닌과 카페인이 약간 많이 함유되어 있다. 녹차의 경우 타닌에는 카테킨(catechin), 플라보놀(flavonol), 로이코 안토시안(leuco anthocyan), 페놀 카본산(phenol carbonic acid) 등이 있지만 가장 많은 것은 카테킨 유도체이다.

마. 차 제조

1) 차 원료

차는 새싹(新茶)을 따서 원료로 하지만 새싹 중의 각종 성분은 성숙에 따라 변화되어 타닌, 아미노산, 카페인 등의 성분은 감소하고 당, 전분, 섬유 등의 성분은 증가한다. 일반적으로 이른 시기의 싹의 어린 부분을 원료로 한 차는 품질이 좋고 경화 엽이 혼합된 것은 품질이 떨어진다.

2) 제조 방법

차의 제조 방법은 나라와 품종 그리고 사람에 따라 많이 다르지만 제조방법을 대략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가) 위조(萎凋, 시들기, wilting, withering)
찻잎을 햇빛에 약 살청 시키는 것이다.

나) 살청(殺靑, fixation, 익히기)
찻잎에 열을 가하여 잎의 산화효소(폴리페놀옥시다아제, poly phenol oxydase)를 불 활성화시켜 발효를 막고 고유의 녹색을 유지시키는 것이다. 가열 방법은 굽기, 덖기, 볶기, 찌기 등의 방법이 있다.
(1) 요청(搖靑, shaking and bruising) : 대나무 통에 넣고 흔들어서 마찰시키는 살청이다.
(2) 초청(炒靑, stir-fry) : 솥에서 볶아 살청 하는 것이다.
(3) 증청(蒸靑, Steaming) : 수증기로 쪄서 살청 하는 것이다.
(4) 홍청(烘靑) : 열풍이나 밀폐된 방에 불을 때어 건조하면서 살청 하는 것이다.
(5) 배청(焙靑) : 불에 쬐여서 살청 하는 것이다.
(6) 쇄청(晒靑) : 햇볕에 바래어 살청 하는 것이다.
(7) 양청(凉靑, cooling) : 그늘에 말리면서 살청 하는 것이다.

*가열 조리법 우리말 용어
열을 이용하는 조리법 중에 불 위에서 고형의 식재료에 열을 가하면서 이리저리 자주 저어 익히는 것을 볶는다(roast, tease, parch, pester, scorch)라고 하고 볶는 방법 중에 타지 않을 정도로 수분만 날려 숨을 죽이는 것을 덖는다(roast, parch)라고 한다.
물기가 많은 액체나 반액체 식재료를 끓여 익히고 수분을 날려 진하게 하는 것을 다린다거나 조린다고 하는데 이것은 지지다는 것을 달리 이르는 말이며 기름 두른 번철에 재료를 넓게 펴고 간간이 뒤집어 익히는 걸 부친다고 하는데 이것도 지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갈치나 꽁치에 약간의 물을 넣고 지져서 물이 기의 남지 않은 것을 졸임이라 하고 물이 조금 많이 남은 상태를 찌게라 하며 이와는 달리 물을 많이 넣고 끓인 것을 국(탕)이라 하는 것이다.
그 외에도 물을 끓여 고형의 식재료를 데치고 삶아 건져내 사용하는 방법과 끓이고 우려내어 국물까지 사용하는 방법이 있으며 떡과 같이 증기로 찌는 방법 등 가열하는 조리법이 많이 있다.

다) 유념(揉捻, 비비기, kneading, rolling, shaping)
찻잎을 비벼서 찻잎 각 부분의 수분함량을 균일하게 하고 세포조직을 적당히 파괴하여 포함된 성분이 물에 잘 우러나게 하고 잎을 말아서 주름지게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식물에는 타감작용(Allelopathy, 주변 식물의 생장억제 물질 분비)’이 있어 찻잎을 비벼서 자극을 주면 다른 생물의 공격을 받은 것처럼 차 잎에 방어물질인 방향물질, 폴리페놀 등의 화학물질 생성이 증가된다.
* 단유(團揉, 포유 包揉)
유념의 한 종류로 솥에 덖은 부초(釜炒) 찻잎을 면으로 된 천, 또는 주머니에 싸서 눌러 주면서 손으로 비벼내어 구상 또는 반구 상으로 되게 비비기를 반복하는 것을 말한다.

라) 숙성(熟成, aging)
찻잎을 숙성(발효, 띄우기)시키는 것이다.

마) 건조(乾燥, drying)
찻잎의 수분 제거(말리기) 등의 과정이다.

바. 차의 종류

차의 종류는 일반적으로 가공 방법과 발효상태에 따라 녹차(綠茶, green tea, 발효시키지 않은 찻잎을 사용하여 만듦), 백차(白茶, White tea, 솜털이 덮인 차의 어린싹을 위조(萎凋)와 건조과정으로 만듦, 5 ~ 15% 발효), 황차(黃茶, Yellow tea, 반발효차, 후발효차, 10  ~ 25% 발효), 청차(青茶, Blue Tea, 우롱차 烏龍茶 Oolong tea, 반발효차, 15 ~ 70% 발효), 홍차(紅茶, black tea, 75 ~ 95% 발효), 흑차(黑茶, dark tea, 후발효차, 80 ~ 90% 발효, 보이차 普洱茶 푸얼차 Pu'er tea)로 나눈다.

1) 발효 정도에 따른 차의 종류

가) 불발효차(不醱酵茶)
찻잎을 발효시키지 않고 엽록소를 그대로 보존시킨 차(茶)이다. 녹차(綠茶, green tea)가 여기에 속한다.

나) 반발효차(半醱酵茶, semifermented tea)
  반쯤(20 ~ 70%)만 발효시킨 차(茶)로 반고차(般苦茶), 포종차(包種茶, pouchong tea, 방향이 강함), 황차(黃茶, Yellow tea, 황차의 제조과정에서 가볍게 발효시키는 것을 민황 悶黃이라 함), 오룡차(烏龍茶, 우롱차, oolong tea)가 있다.
우롱차(烏龍茶, oolong tea)는 푸젠성, 광둥성, 타이완 등에서 생산되며 청차(青茶, Blue Tea)라고도 한다.

다) 발효차(醱酵茶, fermented tea)
차엽의 성분은 성숙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변화되어 타닌, 아미노산, 카페인 등의 성분은 점차 감소하고, 당, 전분 등은 증가한다.
완전히 발효(醱酵) 시킨 차(茶)로 홍차(紅茶, black tea)가 여기에 속한다. 홍차가 발효되면 찻잎 중에 함유된 폴리페놀 산화효소(polyphenol oxidase), 과산화효소(peroxidase) 등의 산화효소와 산소에 의해 카테킨(Catechin)이 오르토퀴논(orthoquinone)으로 변화되고 테아플라빈(theaflavin), 테오피진(theopyzine) 등의 산화중합물이 생성되어 미생물의 침입을 막는다.

*미생물 발효차(微生物醱酵茶, 후발효차 後醱酵茶)

차의 가장 오래된 형태의 하나이다. 후발효차(後醱酵茶)인 담금차(漬物茶, 침채차, 沈菜茶)는 주로 혐기성 발효로 행해지고 보이차(普洱茶, 푸얼차 Pu'er tea, 누룩곰팡이, 바실러스(Bacillus, 간균의 일종) 등에 의해 발효 - 운남성 보이현 普洱縣이 흑차의 집산지)와 같이 차엽의 퇴적으로 발효가 일어나는 후발효차(後醱酵茶)는 주로 곰팡이에 의한 호기성 발효로 이루어진다.

*black tea(홍차, 紅茶, black tea)와 red tea(rooibos tea, 루이보스 차)

홍차(紅茶)를 영어로 black tea라고 하는 것은 차 원료가 검은색이므로 black tea라 하는 것이고 우리는 우러난 차의 색이 붉어 홍차라고 한다.
그런데 영어로 red tea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타운 서쪽에 위치한 450m 이상 고산지대에서 주로 자라는 루이보스라는 침엽수의 잎으로 만든 차이다. 케이프 지방에 이주한 네덜란드인들이 black tea 값이 비싸 홍차 대용품으로 원주민이 먼저 이용하던 루이보스 차(rooibos tea)를 이용했다.

2) 형태상 분류

가) 엽차(葉茶)
찻잎을 볶거나 쪄서 말린 것을 더운물에 우려 마시는 차이다.

나) 말차(抹茶)
엽차로 만든 것을 다시 가루로 만들어 놓았다가 물에 우려 마시는 차이다.

다) 단차(團茶)
차엽을 쪄서 절구에 넣고 찧은 다음  다식판 같은 모형판에 넣어 모양을 낸 후 햇볕에 말려 고체화한 것이다. 단차 중에 동전(銅錢) 모양의 전차(錢茶), 떡 모양의 병차(餠茶)가 있다. 단차는 가루로 빻아서 이용하거나 덩어리를 그대로 물에 우려서 이용한다.

3) 채취시기에 따른 분류

찻잎을 음력 섣달에 채엽한 차를 납차(臘茶), 춘분 전후 술날(戌日) 이전에 채엽한 차를 사전차(社前茶)라 한다. 화전차(火前茶)는 한식 이전에, 화후차(火後茶)는 한식 이후에 채엽한 차이다. 기화차(騎火茶)는 한식 때 채엽한 차를 말하며 우전차(雨前茶)는 곡우 이전에 우후차(雨後茶)는 곡우 이후에 채엽한 차이고 입하차(立夏茶)는 입하(5월 5 ∼ 6일) 때에 채엽해서 만든 차이며 소춘차(小春茶)는 입동(立冬)에 채엽한 차이다.
일반적으로는 4월 말이나 5월 초 그해 처음 채엽해서 만든 차을 맏물차(첫물차, 1번 차), 그 후 6월경에 다시 돋아난 잎을 채엽한 차를 두물차(2번 차), 그 후 7월경 다시 돋아난 잎을 채엽한 차를 세물차(3번 차)라 한다.

4) 기타 차
  
차의 종류는 이외에도 찻잎의 형태, 생산지, 품종, 제조방법 등에 따라 수 없이 많은 종류가 있다.

가) 죽로차(竹露茶)
대숲에서 자란 차나무에서 대 이슬을 맞고 자란 차엽으로 만든 차이다.

나) 작설차(雀舌茶)
찻잎의 크기가 참새의 혓바닥 크기의 작은 어린잎으로 만든 차이다.

다) 응조차(鷹爪茶)
매의 발톱을 닮은 차엽으로 만든 차이다.

라) 맥과차(麥顆茶)
차엽이 보리 낱알 크기일 때 채취하여 만든 차이다.

마) 설록차(雪綠茶)
눈이 녹지 않은 이른 봄에 차엽을 채취하여 만든 차이다.

바) 원후차(猿候茶)
중국에서 원숭가 벼랑에 있는 차나무나 큰 차나무에 올라가서 따온 차엽으로 만든 차이다.
  
사. 차의 성분

1) 카페인(caffeine)

카페인은 1819년 룽게(Friedlieb Ferdinand Runge, 1794 ~ 1867, 화학자, 독일)가 커피콩에서 처음 발견했으며 찻잎에서는 1827년 오드리(Oudry, 영국)가 발견했다.
카페인(caffeine)은 식물체를 방어하는 물질이다.
카페인은 색깔과 냄새가 없으며 약간 쓴맛을 낸다. 차는 커피와는 달리 카페인으로 인한 부작용이 생기지 않는다. 그것은 카페인이 타닌과 쉽게 결합해 크림을 형성하여 저온에서는 잘 녹지 않아 체내 흡수 속도가 느리기 때문이다.
카페인은 흥분작용을 일으키고 잠을 쫓아 정신활동을 높이는 각성효과가 있으며 기억력. 판단력. 지구력 등을 증강시키고 두통 억제, 이뇨작용이 있다.

2) 타닌(tannin, 카테킨 Catechin, 폴리페놀 polyphenol)

헨리 브라코낫(Henri Braconnot, 1780 ~ 1855, 프랑스)이 1831년 탄닌의 종류인 엘라직산(ellagic acid), 갈릭산(gallic acid), 피로갈릭산(pyrogallic acid, pyrogallol, 피로갈롤)을 처음 발견하였다.
타닌(tannin)은 식물체에서 방어작용을 하는 물질이다.
차에 들어있는 타닌은 차의 색깔과 향기, 맛을 좌우하는 주요 성분이다.
타닌은 산화가 잘되고 결정화가 어려우며 6종류의 카테킨(catechin)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유리형(遊離型) 카테킨은 약한 떫은맛과 강한 쓴맛을 낸다.
타닌은 유독성 물질을 배출시키거나 해독하는 해독작용(解毒作用), 단백질과 결합하여 응고시켜 병원균을 죽게 하는 살균작용(殺菌作用), 지혈작용(止血作用), 소염작용(疏髥作用)등이 있다.

3) 단백질

차에는 단백질이 20 ∼ 30% 함유되어 있다. 그중에서 단순 단백질(simple protein)은 알부민, 글로불린, 글루텔린 등이 들어 있으며 아미노산은 10여 종이 있고 그중 테아닌(theanine)이 60%를 차지한다. 테아닌(theanine)은 독특한 감칠맛을 내는 성분으로 그 함유량이 많을수록 고급차이다. 그밖에 신맛을 내는 글루탐산(glutamic acid)과 아스파트산(aspartic acid), 쓴맛을 내는 아르기닌(arginine) 등의 필수 아미노산이 들어 있다.

4) 비타민

차는 일찍이 긴 항해를 하는 선원들에게 결핍되기 쉬운 비타민 C의 공습원으로 이용되었다.
녹차에 들어 있는 비타민 C는 찻잎을 찌거나 볶는 과정에서 비타민 C를 파괴하는 효소가 불 활성화되기 때문에 매우 안정되어 뜨거운 물을 부어도 잘 파괴되지 않고 카페인이나 타닌, 당질 등이 산화되는 것을 막아줌으로써 비타민의 작용이 유지된다. 그러나 비타민 C는 열, 빛, 물, 산소 등에 쉽게 파괴되므로 발효차인 홍차와 오룡차는 발효과정에서 환원형의 비타민 C가 산화형으로 변화되므로 비타민 C의 공급원이 될 수 없다.

5) 당(糖)

찻잎에는 자당(蔗糖, 설탕), 포도당, 과당 등이 극소량 들어있어 차의 단맛을 더해 준다.

6) 무기염류

차에는 무기염류가 5∼7% 들어 있으며 그중에서 칼륨이 50%이고  인산이 15%이다. 그 외에 칼슘, 마그네슘, 철, 망간, 구리, 나트륨, 아연 등이 있다. 이 성분들은 찻잎을 우려내거나 끓였을 때 일부만 침출 된다.

7) 기타

테오필린(theophylline, 1,3-디메틸크산틴 1,3-dimethylxanthine, 잔틴계), 테오브로마인(theobromine)

* 세계의 차 생산국 순위

1위가  중국(20%)이고  인도, 일본, 미국,  브라질 순이다.

* 차 소비국 순위

1위 중국이고 인도, 일본, 미국, 브라질 순이다.

*  1인당 차 소비량 순위

1위 튀르키예이고 아일랜드, 영국, 러시아, 모로코 순이다.

2. 커피(coffee)

커피나무(coffee tree)의 열매(Cherry)를 수확한 다음 열매(Cherry) 속에 들어있는 종자인 생두(Green Bean)를 분리하여 볶아 원두(Coffee Bean)를 만든다. 원두(Coffee Bean)를 곱게 분쇄하여 만든 가루를 물로 그 성분을 추출하여 만든 음료를 커피라 한다.

가. 커피나무(coffee tree)

커피나무는 식물계(Plantae)
피자식물 문(Angiospermae)
쌍떡잎식물 강(Dicotyledoneae)
꼭두서니과(Rubiaceae)
커피나무속(Coffea)
커피나무종(arabica, canephora, liberica)에 속하며 학명은 Coffea arabica L.이다.
커피 속의 식물은 아프리카와 아시아 열대지방에 약 40종이 자라지만 흔히 코페아 아라비카(Coffea arabica)와 코페아 카네포라(Coffea canephora)를 커피 2대 원종이라고 한다.
세계에서 재배되는 커피나무는 아라비카종이 약 70%이고 그 외에 카네포라종과 변종, 교배종 등이 있다.
커피콩을 생산하는 아라비카종을 다른 종과 구별할 때는 아라비아 커피 나무라고 한다. 이 종의 변종에는 모카(var. mokka)를 비롯하여 많은 품종이 있다.
아라비아 커피나무(Coffea arabica, 아라비카) 외에 현재 재배되고 있는 커피나무는 카네포라 커피나무(Coffea canephora  = 로부스타 커피나무, Coffea robusta), 리베리아 커피나무(Coffea liberica) 등이 있다.
(Coffea arabica L. = mocha coffee,
Coffea arabica L. var. maragogipe robusta  
= Coffea canephora,  
Coffea canephora var. nganda,
Coffea canephora var. canephora)
상업적 커피로 이용되는 커피콩의 종류에는 아라비카(arabicas coffee), 로부스타(robustas coffee), 리베리카(libericas coffee) 3종류이다.
그중 아라비카(arabicas coffee)는 생산량이 70%로 가장 많고 해발 1,000 ~ 2,000m 이상의 서늘한 고지대에서 주로 생산되며 단위 면적당 수확량이 적어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싸다. 아라비카는 카페인 함량이 낮고 향이 우수하고 다양하며 단맛과 신맛, 감칠맛 등 맛도 다양하여 커피 전문점의 원두(roasted bean)로 많이 이용된다.
로부스타(robustas coffee)는 생산량이 30%이며 해발 600m 이하의 낮은 지역에서 생산되고 병충해에 강하므로 재배하기 쉬워 대량생산이 가능하므로 상대적으로 값이 헐하다.
로부스타는 카페인 함량이 높고 쓴맛이 강하며 풍미가 떨어지는 편이지만 값이 헐하여 믹스커피(mix coffee) 같은 인스턴트커피(instant coffee)에 많이 쓰인다.
리베리카(libericas coffee)는 아프리카의 서부 라이베리아(Liberia)에서 처음 재배가 시작되었고 생산량이 3% 미만으로 적고 향이 약하고 쓴맛이 강하며 병충해에 강해 다른 종을 접붙이는 대목(臺木, understock)으로 이용된다.
생산량이 적어 희귀성이 있다.

나. 커피 어원

커피라는 단어의 어원은 커피가 처음 발견되었다는 에티오피아의 지명 카파(kappa)에서 유래하였다는 설과, ‘힘, 강함’을 뜻하는 아랍어 카와(kahwa)에서 유래되었다는 설 등이 있다.
아랍어 카와(kahwa)는 와인의 한 종류를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와인과 비슷한 각성효과가 있는 커피도 카와(kahwa)라고 불렸다는 것이다. 아랍어 카와(kahwa)는 오스만 튀르크에서 카베(kahve)로 변하였고, 이를 받아들인 유럽에서는 이탈리아 caffe, 프랑스 cafe, 독일 Kaffee, 영국 coffee로 되었다.
에티오피아에서는 "분나(Bunna)"라고 한다.

다. 커피 역사

커피의 원산지는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이다. 600 ~ 800년 경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 사는 양치기 칼디(Kaldi)가 염소를 방목하던 중 흥분하여 신경질적으로 행동하는 염소를 보게 되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한 양치기가 이 염소를 관찰해 보니 빨간색 열매를 입속에 넣고 씹는 것이었다.  양치기는 이 열매가 사람에게 어떤 작용을 할 것인가를 알아보기 위해 먹었더니 정신이 맑아지고 기분이 상쾌해지며 전신에 기운이 솟았다고 한다.
이렇게 발견된 커피는 종교 수행자들의 피곤함을 덜어주는 데만 쓰였다고 한다.
에티오피아에서는 9세기부터 고지대에서 커피를 재배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에티오피아의 커피는 11세기경에 아프리카인들에 의해 홍해를 건너 아라비아반도 남단의 예멘으로 전달되어 재배되면서 음료로 개발되었다.  아랍인들은 커피 열매 속에 있는 씨앗을 분리해 가루로 만들었으며, 이 가루를 물과 섞어서 마셨다고 한다.
그 후 14세기에 이르러 아랍인들은 커피 열매를 불에 살짝 볶으면 더 맛이 좋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이때부터 지금 우리가 마시는 커피와 같은 방식으로 커피 가루를 걸러 마시기 시작했다.
예멘은 에티오피아와 가깝고 예멘의 무하(al-Mukha, Mocha, 모카) 항은 인도양에서 홍해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어 커피 무역의 중심 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다.
15세기에 들어와 커피는 이슬람 문화권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음료가 되었고 아랍인들은 커피 무역에 대한 독점권을 유지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발아가 불가능하도록 커피 알갱이의 껍질을 반드시 벗겨서 수출하였으며, 커피나무나 알갱이 자체로의 수출은 금지했다.
이슬람 성직자들은 커피의 신경을 자극하는 성질 때문에 커피를 좋게 생각하지 않아 1511년에는 맘루크 왕조(1250 ~ 1517, 이집트, 이슬람) 시절 메카의 보수적인 이슬람 총독에 의해 금지되었다. 하지만 이 음료는 1475년경 메카에 널리 보급되어 공공장소에 커피숍이 열렸다.
특히 그리스인과 지식인 사이에서의 인기를 꺾을 수 없었고 결국 오스만 튀르크 술탄 셀림 1세(Selim I, 재위 1512 ~ 1520)에 의해 커피 금지령이 폐지되었다. 카이로에서도 비슷한 금지령이 1532년에 세워졌고, 커피숍과 커피 창고들이 파괴되었다. 하지만 이후 1554년 이스탄불(콘스탄티노플)에는 세계 최초 카페인 키바 한(Cafe Kiva Han)이 문을 열었다.

라. 커피 전파

커피는 이슬람에서 유럽으로 전파되었다.
오스만 제국의 커피는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거쳐 1615년 유럽으로 수출되었으며 베네치아는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수입한 커피로 많은 카페 부티크(커피숍)가 생겨나 커피가 일상화되었다.
이어서 네덜란드의 동인도 회사가 유럽에 커피를 공급하였다.
1600년대로 들어서면서 재배지가 아라비아 밖으로 전파되기 시작했다.
바바 부단(Baba Budan)이라는 무슬림 순례자가 씨앗 일곱 개를 몰래 가지고 나가 인도 남부 마이소르의 산악지대에서 커피 경작에 성공한 것이다.
이어서 1616년 네덜란드인들은  커피의 중요성을 알고 메카를 경유하여 커피나무를 몰래 네덜란드로 가져왔다.
그리고 그때 유럽에서 커피의 전파가 급속도로 일어난 계기가 있었다.
유럽인들은 처음에 커피를 ‘이교도의 음료’라며 배척하였다. 그러나 커피가 유행하기 시작하자 교황 클레멘스 8세(재위 1592 ∼ 1605)에게 커피 음료를 금지시켜 줄 것을 탄원했으나 클레멘스 8세가 커피를 마셔 본 후 커피 맛에 반해 커피에 세례를 준(?) 이후로, 커피는 귀족과 상인들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1650년 영국 런던 옥스퍼드에 아르메니아인이 처음 커피하우스를 개점한 이래 수많은 커피하우스가 생겨났으며 프랑스 파리에서는 영국에서 커피하우스를 열었다 쫓겨난 아르메니아인이 1672년에 카페를 열었다.
그리고 1683년 오스만 제국이 오스트리아의 빈을 침공하면서 벌어진 빈 전투(Battle of Vienna, 1683) 중에 오스만 제국 군에 포위된 빈에서 머물다가 오스트리아 군에 가담한 무역 상인 프란츠 콜스키츠키(Jerzy Franciszek Kulczycki, 1640 ~ 1694, 폴란드 귀족, 외교관, 무역회사의 투르키예 지점에 근무한 경력이 있음)가 투르키예 (오스만 제국) 노래를 자연스럽게 불러 투르키예(오스만 제국)인 처럼 행동하여 투르키예군(오스만 제국)을 속이고 포위를 뚫고 나와  지원군이 대군으로 도착한 사실과 지원군과 정보를 교환하고 돌아옴으로써 항복하려던 오스트리아군이 지원군과 더불어 결사 항전하여 오스만 제국 군에 승리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되자 상과 특전을 받고 시민들의 영웅이 되었으며 오스만 제국 군이 남겨두고 간 전리품 중에서 많은 양의 커피를 하사받았다. 이것으로 1683년 빈에서 커피 전문점을 열었는데 손님이 끊어지지 않았다. 오스트리아에 비엔나커피 붐을 일으켜 유럽의 유행을 가져왔던 것이다.
이때에 지금처럼 커피에 우유를 넣거나 달게 먹는 방식이 시작됐었다고 한다.
베네치아에서는 1720년에 플로리아노 프란체스코니 (Floriano Francesconi)에 의해  알라 베네치아 트리온판테(Alla Venezia Trionfante, 베네치아의 승리)라는 이름으로 개점한 카페가 "플로리안(Florian, Floriano)"으로  변경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카페 플로리안(Caffe Florian)에는 괴테, 나폴레옹, 바이런, 카를로 골도니, 마르셀 프루스트, 찰스 디킨스  카사노바 등도 방문하였다 한다.
커피는 아라비아의 와인이라는 이름으로 와인과 맥주로 술에 찌든 유럽에 소개되면서 프랑스, 영국 등 유럽인들을 각성하게 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던 것이다.
네덜란드인들은 1613년에 몰래 가져와 재배한 커피나무의 씨앗을 1690년경에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의 자바 섬(Java I., 자와 섬, Jawa I.)과 실론(Ceylon, 스리랑카)에 심어 인도네시아와 실론에서 커피 재배에 성공하였으며, 이 커피를 유럽으로 수출하였다.
그 결과 17세기 말부터는 프랑스, 영국 등에서 상류층 사람들이 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마시는 습관을 갖게 된 것이다.
그 후 1714년 네덜란드 인들이 작은 커피나무를 프랑스의 루이 14세에게 선물로 기증하자 프랑스는 1720년경 커피나무를 식물원에서 재배하여 번식시켰으며 그 씨앗을 식민지인 열대지역으로 보내면서 서아프리카에 위치한 기니(Guinea), 카리브해의 서인도제도인 마르티니크 섬(Martinique I.), 기아나(Guiana), 쿠바, 아이티  등과 멕시코(중앙아메리카) 등에서 커피 생산이 본격화되었다. 특히 마르티니크 섬에 근무하던 프랑스 해군 장교 가브리엘 드 클리외(De Clieu)가 프랑스에서 휴가를 마치고 2그루의 커피나무를  천신만고 끝에 프랑스 식민지 마르티니크 섬으로 가져가서 심은 것이 서인도 제도의 커피 재배의 시초라는 것이다.
브라질의 커피 전파는 1727년 포르투갈 왕의 커피나무 씨앗을 구하라는 명령을 받은 프란시스코 데 멜로 팔레타(Francisco de Melo Palheta, 1670 ~ 1750, 식민지 관료)가 프랑스와 네덜란드 간에 일어난 기니(Guinea, 서아프리카에 위치)의 분쟁을 조정해 달라는 초청으로 기니에 갔다가 프랑스 총독 부인이 준 꽃다발에 커피나무 씨앗을 숨겨서 몰래 가져와 브라질의 파라(Para) 주에 심어 커피 플랜테이션 농장이 만들어짐에 따라 커피가 재배되기 시작하였다(총독부인과 염문설).
나폴레옹의 포르투갈 침공으로 브라질로 건너간 포르투갈의 주앙 6세가 그동안 봉쇄하였던 항구를 개방함에 따라 미국 노예무역 상인들이 브라질에 노예를 공급하고 싼값의 커피를 미국으로 대량 수입해 갔다.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한 1822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생산되었으며 현재는 세계 1위 생산국이다.
멕시코에서는 프랑스로부터 1720년대에 커피나무가 들어와 1790년부터 커피를 경작하기 시작하였고, 북부지역은 커피 존(Coffee Zone, 남북 위도 25도 사이 지역)을 벗어나기 때문에 남부 지방에서만 커피가 경작된다. 멕시코는 대량의 커피 소비 국가인 미국에 접해 있어 지리적으로 수출이 용이하였으므로 많이 생산되어 세계 6대 생산국가이다.
콜롬비아(Colombia)에는 1800년대 초에 유럽 선교사들을 통해 커피 경작이 시작되었으며 1900년 경에는 한때 세계 최대 커피 생산국이었으나 현재는 브라질, 베트남에 이어 3위이며 커피 품질은 세계 최고이다.
1750년경에는 이미 커피는 다섯 대륙의 열대지방(북위 25 도와 남위 25도 사이 지역)에서 재배되었다.
상류층을 중심으로 유행하던 커피는 이제 유럽의 하층민들에게 기운을 북돋아 주는 마약과도 같은 음료가 되었고, 술독에 빠져 있던 유럽을 깨우며 사회적, 지적 자극제가 되기도 했다.
영국에서는 17세기 말 약 2천여 개의 커피 하우스(카페)가 생겨났다고 한다.  이와 같이 영국인들은 17 ~ 18세기 중반까지 커피를 즐겨 마셨다. 이때 커피는 대부분 오스만 제국에서 수입되었다.
영국 사람들은 18세기 말에 네덜란드의 실론(스리랑카)을 점령한 후에는 실론에서 재배한 커피를 마셨다. 그 후 실론의 커피나무에 병이 들자 인기가 높아진 차 나무로 대치되어 커피 공급이 어려워졌다.
그런데 영국에서는 커피가 여자와 아이들에게 해롭다는 소문이 퍼져 커피하우스(카페)는 남자의 전유물이었다. 그래서 후에 커피하우스는 선원들이나 모이는 칙칙한 장소라는 고정관념이 생긴다.
미국은 1770년까지 밀무역 상인들이 네덜란드 상선과 거래하여 차를 공급하였으나 영국이 밀무역을 금지하고 동인도 회사에 차 독점권을 주었으며 동인도 회사는 세금을 붙여 공급하였다. 이에 불만을 가진 밀무역 상인들이 주동이 되어 보스턴 항구에 정박 중인 동인도회사 배에 실린 차를 바다에 버렸는데 이를 보스턴 차 사건(1773)이라 한다. 이 사건에 영국이 가혹하게 대처함에 따라 영국에 대한 미국 식민지인들의 저항이 거세게 일어났으며 독립전쟁의 기폭제가 되었다. 식민지인들은 영국에 대한 저항의 일환으로 차 불매운동을 하였으며 차 대용으로 중남미에서 저렴하게 공급되는 커피를 마셨던 것이다.
차 대신에 커피를 마시게 됨에 따라 커피를 드립(drip) 식으로 묽게 하여 차와 비슷하게 하여 마시게 되었다. 그 뒤 압축 증기로 추출하는 에스프레소에 뜨거운 물을 더하여 커피 농도를 묽게 하고 양을 많게 하여 마시는 미국식 커피가 탄생하게 되었다. 이를 카페 아메리카노(caffe Americano)라 한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미국인들이 이렇게 커피를 마시는 방식을 보고 카페 아메리카노(Caffe Americano)라고 이름을 붙였으며 미국인처럼 마시는 커피라는 의미로 약간 비하하는 용어라는 것이다.
프랑스 식민지인 아이티에서는 사탕수수가 대량 재배되었을 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커피 문화가 유입되어 커피도 대량으로 생산되었다. 그래서 미국은 커피를 아이티로부터 싼값으로 대량 공급받았으며 그 후 아이티에서 프랑스에 반기를 든 흑인들의 폭동으로 커피 농장이 파괴되어 커피 공급이 어렵게 되자 미국의 노예무역 상인들은 브라질에 노예를 공급하고 대량의 커피를 들여왔던 것이다.
미국은 공업이 발달됨에 따라 많은  노동자들이 생겨나고 이들이 각성제로 커피를 이용함에 따라 커피의 수요는 점점 많아졌던 것이다.
베트남에는 1857년 프랑스 선교사에 의해 커피가 전파되었으나 산업이 아닌 남부의 가톨릭교회를 중심으로 재배되었다. 1975년부터 국가 산업으로 채택하고 넓은 지역에 재배함에 따라 생산량이 급속도로 증가하여 최근에는 브라질에 이어 세계 2위의 커피 생산국이다.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커피를 베트남으로부터 수입한다.

마. 커피 성분

커피의 가장 중요한 성분은 다당류, 지질, 유기 아미노산, 단백질, 무기질, 카페인, 타닌, 클로로겐산(Chlorogenic acid, 폴리페놀의 일종, 위장 자극), 트리고넬린(trigonelline) 등이다.

1) 카페인(caffeine)

카페인은 1819년 룽게(Friedlieb Ferdinand Runge, 1794 ~ 1867, 화학자, 독일)가 커피콩에서 처음 발견했다.
커피에는 카페인이 1%가량 들어 있다.
카페인은 신경 흥분작용을 일으키고 잠을 쫓아 정신활동을 높이는 각성효과가 있으며 기억력. 판단력. 지구력 등을 증강시키고 두통을 억제, 이뇨작용이 있다. 차와는 달리 커피에 있는 카페인은 흡수력이 높다.

2) 타닌(tannin, 카테킨 Catechin, 폴리페놀 polyphenol)

헨리 브라코낫(Henri Braconnot, 1780 ~ 1855, 프랑스)이 1831년 탄닌의 종류인 엘라직산(ellagic acid), 갈릭산(gallic acid), 피로갈릭산(pyrogallic acid, pyrogallol, 피로갈롤)을 처음 발견하였다.
타닌(tannin)은 식물체에서 방어작용을 하는 물질이다.
커피에 3 ~ 5% 들어있는 타닌은 쓴맛을 낸다.
타닌은 유독성 물질을 배출시키거나 해독하는 해독작용(解毒作用), 단백질과 결합하여 응고시켜 병원균을 죽게 하는 살균작용(殺菌作用), 지혈작용(止血作用), 소염작용(疏髥作用)이 있다.

바. 인스턴트커피 제조

인스턴트커피는 추출한 커피 원액의 수분을 제거하고 고체 가루로 만드는 것이다.
인스턴트커피는 1901년 사토리 가토(Satori Gato, 화학자, 일본계 미국)에 의해 처음 발명되었다. 그런데 커피 액을 뜨거운 바람으로 건조함에 따라 커피 맛과 향이 사라져 좋지 않았다.
1938년 스위스 네슬레사의 연구원 막스모게달러(Max Morgenthaler)가 분무건조(spray drying) 기법을 발명함에 따라  ‘Nescafe’라는 상품명으로 현대의 품질과 비슷한 인스턴트커피를 출시하였다.
1965년 이후에는 커피 액을 얼린 후 압력을 극도로 낮추면 얼음이 액체 상태를 거치지 않고 바로 기체(수증기)로 변해 제거되고 커피는 바싹 마른 얇은  조각으로 되는 동결건조법을 적용하여 생산한다.
인스턴트커피 제조하는 증기 건조 방식(Spray Dried Process)과 냉동 건조 방식(Freeze Dried Process)은 다음과 같다.

1) 증기 건조 방식(Spray Dried Process)
생두에 있는 이물질과 돌을 제거 → Screen 분리막으로 각 사이즈별로  원두 분리 → 저장탱크(사일로, silo)에 저장 → 배합 → 배전(焙煎, 볶음, roasting) → 분쇄(grinding) → Coffee Oil 추출 → 냉각 →  액체 재료를 열풍 속에 분무시켜 미세한 입자로 건조(분무 건조, spray drying) → 완제품

2) 냉동 건조 방식(Freeze Dried Process) 
생두에 있는 이물질과 돌을 제거 → Screen 분리막으로 각 사이즈별로  원두 분리 → 저장탱크(사일로, silo)에 저장 → 배합 → 배전(焙煎, 볶음, roasting) → 분쇄(grinding) → Coffee Oil 추출 → 농축액으로 만듦 → 냉동 → -5℃ 이하로 냉동하여 고체 상태로 만듦 → 분쇄하여 가루로 만듦→ Screen 분리막으로 분리 → 완제품

* 1회용 커피 커피 믹스(coffee mix)

커피 믹스(coffee mix)는 우리나라 동서식품이 1976년 세계 최초로 개발한 1회용 인스턴트커피이다.
튜브에 커피, 설탕, 커피 화이트너(커피 크리머) 등을 섞어서 1회분을 포장한 것으로 더운물에 타서 마실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즉석커피 제품이다. 
1968년 우리나라의 동서식품은 '맥심'(Maxim, 미국 크래프트 푸즈 그룹의 커피 브랜드, Kraft Foods Group, Inc.))이라는 상표로 인스턴트커피를 출시하였다.
동서식품은 지분 50%와 맥심과 맥스웰하우스의 상표가 크래프트푸즈사의 소유이고 동서식품의 커피 판권은 국내로 제한되어 있어 커피 믹스를 수출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일부 맥심 커피는 수출이 허용되었음).
커피 믹스의 수출은 남양유업이 2011년에 처음 시작하였다.

* 커피 생산국 순위

세계 1위 브라질,  2위 베트남, 3위 콜롬비아, 4위 인도네시아, 5위 에티오피아, 6위 온두라스, 7위 인도, 8위 우간다

* 국가별 1인당 커피 연간 소비량

네덜란드: 8.3kg, 핀란드: 7.8kg, 스웨덴: 7.6kg, 노르웨이: 5.5kg, 캐나다: 5.5kg, 레바논: 5.3kg, 독일: 5.2kg, 브라질: 5.1kg, 카타르: 5.0kg, 스위스: 4.8kg, 이탈리아: 4.7kg, 에스토니아: 4.3kg, 포르투갈: 4.0kg, 미국: 3.5k, 프랑스: 3.4kg, 한국:1.8kg

3. 코코아(cocoa)

카카오나무(cacao tree, cocoa tree, Theobroma cacao  L.)는 중, 남 아메리카의 아마존 열대우림이 원산지이며 적도 남북 약 20° 정도 내의 더운 지역에서 자란다.
카카오나무는 쌍떡잎식물, 아욱 목, 벽오동 나무과, 카카오 속의 카카오 종으로 상록교목이다.
카카오 나무(cacao tree, cocoa tree)의 학명은 Theobroma cacao L.(Theobroma, 신들의 음식)이며 스웨덴의 자연과학자 칼 폰 린네(Carl von Linné, 1707 ~ 1778, 식물학자)가 붙였다.
카카오나무의 열매 하나에는 20 ~ 50개의 종자(씨)가 들어있는데 이 종자를 카카오 콩(Cacao Bean)이라 한다.
카카오 콩(Cacao Bean)을 얼려 껍데기를 제거하거나 건조, 발효, 로스팅 한 뒤 껍질을 제거한 알맹이를 카카오 닙스(Cacao Nibs)라 한다.
코코아(cocoa)는 카카오 닙스에서 cocoa butter를 제거하고 말린 다음 가루로 만든 것이며 멕시코 Caca에서 온 말이다.
카카오의 카카(caca)는 고대 멕시코의 아스테카어로 ‘쓴 즙’을 뜻한다. 여기에 ‘액체’를 뜻하는 아틀(atl)이 붙어 카카하틀(cacahuatl)이 되고, 약칭하여 카카오라 불렀다.
카카오 콩(Cacao Bean)을 볶아(Roaster) 탈지하고 분말화한 것을 코코아라 하며 코코아에 우유, 설탕, 향료 등을 넣어 혼합한 식품을 초콜릿이라 하는 것이다.

가. 코코아와 초콜릿 역사

코코아(cocoa) 식용의 역사는 기원전 1900년 멕시코에서 시작되었다.
아메리카 대륙 발견 이전부터 원주민이었던 인디언은 카카오 열매를 으깨어 음료로 이용하였는데, 거기에 바닐라(멕시코 원산 난초과의 덩굴식물이며 열매인 꼬투리를 이용하여 바닐라 향을 생산, Vanilla planifolia, Vanilla tahitensis)를 가미하여 풍미를 내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 1450 ~ 1506)는 아메리카 대륙의 네 번째 항해에서 1502년 카카오 콩을 처음 접했다. 원주민으로 부터 탈취한 커다란 토종 카누에서 카카오 콩을 발견했다. 그의 아들 페르디난드는 원주민들이 아몬드라고 부르는 콩을 매우 소중히 여겼다고 한다. 그러나 콜럼버스가 카카오 열매를 스페인으로 가져왔지만 사용법을 몰라 별 관심을 끌지 못했다.
1519년 몬테수마 왕은 에스파냐의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Hernan Cortes)에게 쇼콜라틀(xocolatl)이라는 음료를 대접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때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설탕(슈크로오스)이 생산되지 않아 단맛이 없는 음료수였을 것이다.
초콜릿(chocolate)은 고대 멕시코의 음료인 쇼콜라틀(xocolatl)에서 유래한 용어로 카카오콩(Cacao Bean)을 볶아 만든 가루에 우유, 설탕, 향료 따위를 섞어 만든 식품이다.
스페인이 아즈텍을 정복한 후에 수사들이 초콜릿을 들여와 스페인 궁정에 음료로 소개하면서 카카오는 스페인에 관심을 끌게 되었던 것이다.
1528년에 아즈텍을 정복한 스페인의 콩키스타도르인 에르난 코르테스(Hernán Cortés, 1485 ~ 1547)가 카카오의 활용법을 깨닫고 유럽에 대량으로 가져와 전파했다.
스페인이 아즈텍을 정복한 후 초콜릿은 유럽으로 수입되었다. 처음에 스페인 사람들은 쓴맛이 있어서 복통과 같은 질병을 치료하는 약으로 사용했다.
그 후 코코아 음료에 꿀과 설탕을 첨가하면서 초콜릿음료는 궁정에서 가장 좋아하는 음료가 되었으며 처음에는 주로 부유층이 마셨다.
1620년경 스페인은 수백만 파운드의 카카오 콩(Cacao Bean)을 수입하였으며 스페인의 예수회는 카카오(Cacao tree) 농장을 만들어 생산한 카카오를 외국과 교역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것을 예측하고는 포교하는 중남미의 열대 지방마다 카카오 농장을 건설했다.
1679년에는 카카오 콩을 갈아서 초콜릿 파우더를 만들었다.
1687년 아일랜드의 한스 슬로운(Hans Sloane, 1660 ~ 1753 의사)이 자메이카 사람들이 우유와 초콜릿을 섞어 마시는 것을 보고 런던에 우유 초콜릿(milk chocolate)을 소개했다.
1729년 영국 브리스톨에서 월터 처치먼(Walter Churchman, ~ 1741)이 엔진을 이용한 최초의 기계식 코코아 분쇄기를 발명했다.
1776년 제임스 와트(James Watt, 1736 ~ 1819)에 의해 상업용 증기기관이 발명되면서 코코아는 대량생산이 가능해졌으며 그 후 약 100년 내에 초콜릿은 유럽 전역에서 생산되고 소비되는 기호 식품이 되었다.
1815년 네덜란드 화학자 콘라드 요하네스 반 허튼(Coenraad van Houten  1801 ~ 1887)은 초콜릿에 알칼리성 염을 첨가하여 쓴맛을 줄였다.
1819년 정제되고 고형화된 초콜릿(chocolate)은 스위스의 꼬르쉬에르(Corsier)에서 프랑수아 루이 까이에(François-Louis Cailler, 1796 ~ 1852)에 의해 처음 생산되었으며 기계화되었다.
1828년 네덜란드의 반 호텐(Coenraad Johannes van Houten, 1801 ~ 1887)은 카카오 매스(cacao mass)를 압착해 코코아 버터(cocoa butter)를 짜내고 물에 녹는 분말을 제조하였으며 분말에 설탕을 혼합하고 이를 고형화하여 초콜릿을 만들어냄으로써 기업화를 이루게 되었으며 분말 코코아와 초콜릿은 각국으로 전파되었다.
1842년 영국에서 초콜릿 케이크(chocolate cake)가 처음으로 만들어졌으며 1847년 판 초콜릿(solid chocolate) 제품이 출시되었다.
1870년 프랑스의 므니에(Jean-Antoine Brutus Menier, 1795  ~ 1853)가 누아지엘(Noisiel)에 초콜릿 공장을 세워 초콜릿(chocolate)을 대중화시켰다.
1875년 경에는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등의 열강에 의해 경작지가 서아프리카로 확대되어 코트디부아르(기니)는 프랑스, 가나는 영국의 식민지로 경영되었다.
1876년에는 스위스의 다니엘 피터스(Daniel Peters, 1836  ~  1919)는 헨리 네슬레(앙리 네슬레 Henri Nestlé, 1814 ~ 1890)가 개발한 분유를 첨가한 판 초콜릿(solid chocolate)을 만들어 현재의 밀크 초콜릿 산업이 시작되었다.
1901년 스위스의 로돌프 린트(Rodolphe Lindt, née Rudolf Lindt, 1855 ~ 1909)는 카카오 매스에 설탕, 우유를 등을 넣어 교반(攪拌, agitation, 혼합하여 균일화하는 것), 정련(精練, scouring, 문질러 닦음) 하는 과정인 카카오 매스의 콘칭 기법(conching, 초콜릿을 90도로 수 시간 동안 가열하면서 저어주어 문질러서 입자를 작게 만듬)을 개발하였다.
스위스는 현대에도 유명한 초콜릿(chocolate)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이 많이 있다.

나. 코코아(cocoa) 제조

현대에는 카카오 콩(Cacao Bean)을 볶아(Roaster) 껍질을 제거한 카카오 닙스(Cacao Nibs)를 갈아 액화하여 액체 형태의 순수한 초콜릿인 카카오 매스(cacao mass), 초콜릿 리큐어(Chocolate liquor), 카카오 페이스트(Cacao Paste, 분말)로 만든다. 카카오 매스(cacao mass)는 카카오 콩을 볶아 껍데기와 배아를 제거하고 남은 배유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고체나 반고체 상채의 카카오 매스(cacao mass)를 초콜릿 리큐어(Chocolate liquor)라 하고 카카오 매스(cacao mass)를 분말로 만든 것이 카카오 페이스트(Cacao paste)이다. 
카카오 매스(cacao mass)를 압착하여 코코아 버터(cocoa butter)를 반 이상 제거하고 고운 분말로 만든 것이 코코아(cocoa)이다.
코코아(cocoa) 종류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A. 천연 코코아(natural cocoa)는 코코아 콩을 가루로 만들어 볶은 것이다.
B. 더치 프로세스 코코아(dutch process cocoa)는 볶은 코코아가루를 포타시움(potassium)용액에 처리하여 산성을 중화시킨 것이다.
C. 다크 코코아(dark cocoa)는 더치 프로세스(dutch process)를 매우 강하게 처리한  것이다.

다. 코코아 성분

카카오 매스(cacao mass)는 차나 커피에 비해 지질함량이 높지만 코코아는 cocoa butter을 분리하였으므로 지방 함량(10 ~ 25%)이 적고, 단백질은 20%, 탄수화물은 35% 정도를 함유한다.  그 외에 카페인(caffeine), 타닌(tannin, 카테킨, 폴리페놀 polyphenol), 테오블로마인(theobromine), 리날로올(linalool) 등이 있다.
코코아의 향기는 주로 리날로올(linalool)에 의해 발생하며 색은 타닌(tannin)에 의해 나타난다.
코코아에는 카페인(caffeine)이 적고, 카페인과 구조가 흡사한 테오브로마인(theobromine)이 약 1.8% 들어 있으며 카페인에 비해 온화한 자극성과 흥분작용을 하며 쓴맛을 나타낸다.
타닌((tannin, 카테킨, 폴리페놀polyphenol)은 항산화 작용을 한다.

라. 초콜릿(chocolate)

초콜릿(chocolate)은 카카오 닙스(Cacao Nibs)를 으깨어 만든 반죽(paste, 페이스트)에 우유(milk), 카카오 버터, 설탕, 향료 등을 첨가하여 굳힌 것이다

1) 초콜릿(chocolate) 제조과정

카카오 콩을 열풍으로 볶고 껍질을 분리하여 카카오 닙스(Cacao Nibs)를 만든다.
카카오 닙스(Cacao Nibs)를 으깨어 반죽(paste, 페이스트)처럼 만든 카카오 매스(cacao mass, chocolate liquor, cocoa liquor)에 설탕, 우유, 카카오 버터, 향료를 교반기에 넣어 균일하게 혼합하여 고온에 일주일 이상 놓아둔다. 이렇게 고온에 놓아두면 지방 분자들이 초콜릿 입자 사이의 미세 구멍으로 확산되어 분포되고 적절한 결정화를 이루어 부드럽고 맛있는 초콜릿이 된다.
초콜릿(chocolate) 제조 공정은 다음과 같다.
A. 블렌딩(blending)
카카오 페이스트(Cacao paste)에 다양한 양의 카카오 버터, 설탕, 우유 등 여러 가지 첨가물을 넣어 혼합한다.
B. 콘칭(Conching)
콘칭 전의 초콜릿은 고르지 않고 거친 식감을 가지고 있다.
콘체(conche) 내부에 롤러가 있어 그라인더 역할을 한다. 정제되고 혼합된 초콜릿 덩어리는 마찰열에 의해 액체 상태로 유지된다.  이 콘칭 과정은으로 코코아와 설탕 입자를 매우 작게 만들어 부드러운 촉감이 되게 한다.
콘칭 공정의 시간에 따라 초콜릿의 부드러움과 품질을 결정한다.
C. 템퍼링(tempering)
초콜릿을 구성하는 성분은 각기 성질이 달라 혼합하면 균일하게 되지 않는다.
초콜릿을 균일한 광택과 깔끔한 식감을 만들기 위해 초코릿에 들어있는 카카오 버터를 안정적으로 굳히는 작업이 템퍼링 과정이다.
녹인 초콜릿을 거품기 등으로 저어 공기를 빼주고 데우는 과정이다.
이렇게 만든 원료 초콜릿을 틀에 넣어 성형한다.

2) 초콜릿(chocolate) 종류

(1) 다크초콜릿(dark chocolate)
카카오 매스의 함량이 35% 이상인 것에 우유를 넣지 않고 설탕, 카카오 버터 17% 등을 넣어 만든 것이다.
(2) 밀크 초콜릿(milk chocolate)
카카오 매스의 함량을 줄이고 유지방분( 14 ~ 20%)을 늘려 혼합하여 만든 것이다.
(3) 화이트 초콜릿(white chocolate)
카카오 매스를 넣지 않고 카카오 버터(20% 이상), 설탕, 우유 및 유지방분(20%)을 섞어 만든 것이다.
(4) 컬러 초콜릿(color chocolate)
화이트 초콜릿에 유성 색소를 넣어 만든 것이다.

마. 코코아 생산국과 수입국

코코아는 열대지방인 서아프리카의 코트디부아르와 가나에서 70% 이상 생산되며 그 외에 카메룬, 에쿠아도르, 벨기에 등의 순서로 생산량이 많다.
카카오 경작 농민들은 아직 대기업에 종속되어 착취당하고 있다.
코코아 수입국은 네덜란드, 독일, 미국, 말레이시아, 벨기에 등의 순서로 수입량이 많다.